그 날 택시를 타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더라면
언페이스풀(Unfaithful), 2002
연 출: 에드리안 레인
캐스트: 리차드 기어, 다이안 레인, 올리비에 마르티네즈
헐리웃 VER. 사랑과 전쟁
추천이 많기에 2002년 작품인 언페이스풀을 뒤늦게 보았다. 제목부터 헐리웃 버전의 사랑과 전쟁임을 암시하고 있다.
지루한 일상탈출법: 불륜 / 준비물: 이국적 미남
일단 여주인공 코니와 불륜남과의 만남은 위와 같이 바람이 부는 날 구태의연하게도 길에서 부딪혀서 이루어진다.
아들의 학교 준비물을 사러 뉴욕 인근 시외에 있는 집에서 뉴욕으로 외출나온 여주. 길에서 오늘 처음 만난 남자가 자기 집에 올라오라는데 스스럼 없이 잘 따라 올라간다.
미남은 세상살기 참 편하지요.
영화 초반 부부의 대화는 10년차다운 편안함을 자랑한다.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부부지만, 서로 각자의 대화만 하는 부부 사이를 아들이 신나게 떠들며 건너다니고,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대화를 하고.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이 극에 달해 있을 즈음, 길에서 미남을 줍줍한 여주. 게다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것들과는 모든 면에서 거리가 먼 남자다. 먼 이국 프랑스에서 온 데다 한량처럼 예술하는 작가. 마치 영화같은 설정이다. 아무리 2000년대 초반이고 영화라지만, 음, 원하는 상황을 만드는 게 너무 쉽다. 하지만 영화 밖 현실도 늘 의외로 쉬우니까 패스.
트렌치 코트가 잘 어울리고 예쁘네욘 :)
외간남자 집에서 아까 넘어지면서 다친 무릎을 응급처치하고 책을 빌려준다든가 하는 수작에 넘어가는 중인 코니.
코니는 잊히지 않는 프랑스 불륜남에게 전화를 걸게 되고 불륜남의 아파트를 재방문한다. 코트를 받아준다고 하면서 목 뒤를 살짝 터치하는 등 뻔한 수작질에 술술술 잘도 넘어가는 코니. 못난이가 하면 끼부리는 것도 수작부리는 거고 이국적인 프랑스 남자가 하면 수작질조차 설레는 일탈의 전주곡일 수 있는 건가요. 아무튼.
두 번째 만남만에 불륜 시작. 불륜남과 함께 하다가 좁은 뉴욕 시내에서 친구들을 마주치는 등 아찔한 상황 속에서도, 불륜남과 다투고 불륜남이 바람을 피워도 이 불륜을 멈출 수가 없는 코니. 이 사랑을 멈출 수가 없어욘.
(많은 스포일러가 있음)
꼬리가 길면 밟힌다. 좁디 좁은 뉴욕시에서 너무 보란듯이 사랑하다보니 남편 회사 동료도 목격하고. 시내 외출이 잦은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하던 남편 에드워드는 결국 불륜남을 찾아간다.
거대한 잘못과 사건 자체보다 기분 나쁜, 사소한 무심함
가끔 권태로울지언정 신실한 믿음과 함께해온 10년차 부부. 에드워드는 연적 앞에서 다 큰 남자가 까보일 수 있는 가장 나약한 부탁의 무기, 눈물을 선보인다.
불륜남을 찾아간 에드워드는 매우 혼란스러워보일 지언정 침착하고 젠틀했다. 에드워드 생각에는 부부에게 매우 의미있는 물건이었을 스노우볼을 불륜남집에서 목격하기 전까지는.
역시 인간의 갈등에서는, 매우 큰 사건이라 하더라도 사건(불륜) 자체보다 그 사건을 마주하는 당사자들의 사소한 태도(남편이 애정의 증표처럼 여기는 물건을 불륜남에게 주는 무심함)가 문제가 된다. 인간은 보통 감당하기 힘든 큰 비밀을 알게 되거나 큰 절망을 줄 법한 사건과 마주쳤을 때 그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에서 파생된 작은 행위들, 사소한 말투에서 영향을 받는다. 사건 자체를 맞닥뜨렸을 때는 믿기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덤덤하다가도 사소한 무심함, 사과 속에서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죄책감 등을 발견할 때 야마가 돈다. 어쩌면 그 사소함에서, 익숙한 일상이 변할 수 있음을 그제야 실감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덜덜덜......코니 뉘가 어떻게 나한테!
이성을 잃은 에드워드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결국 사랑과 전쟁의 결말이 다 그렇듯 극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가정집에서 벌어진 갈등은 형법상의 영역까지 ! 번져간다.
실종자의 집에서 코니의 쪽지가 발견되었기에 집에는 경찰이 들이닥친다. 잘 유기한 줄 알았던 시체는 왜 영화 속에서는 늘 발견되는 것인지. 물에 빠뜨려도 늘 뭍에 쓸려와 발견되고, 버려진 쓸모없는 땅에 파묻었는데도 꼭 삽차가 가서 파헤치고 있고, 땅을 파던 노동자 A씨는 꼭 "어? b씨! 이리와봐! 여기 이상한 것이 있어!"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
IT IS NOT MEANT TO BE
아니 이 분이 자상한 남편두고 복에 겨웠네 겨웠어 라고 하면 아직 못 겪어봐서 그렇다고 하려나, 물론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어찌할 수는 없다. 마음의 소리를 거부하기는 힘들고 그것이 호르몬의 작용에서 오는 마음의 소리라고 해서 비난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마음의 소리를 따라 일리걸 영역의 선을 넘는 것을 억누를 자신이 없다면 결혼 제도권 자체로 넘어와서도 안 되었던 것. 앞으로 몇 십년 동안 이 사람 외의 사람과 사랑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았으면서 결혼을 해서는 안되었다.
영화 끝에도 나오지만 너는 그 아파트에 따라 올라가는 순간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대충 알고 있었고, 남자의 호의에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택시를 잡아타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어야 했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일도 아니었고 그 새로운 만남이 운명이었을 지언정 거부할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그 날 어떻게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바로 돌아왔더라면, 그 아파트에 올라가지 않았다면, 아니면 최소한 그 남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