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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an 06. 2017

잉글리쉬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

Too much love will killl you

"비장미가 과도하지만 20년 후에도 유효한 가슴앓이"                                                                                                                                                                                                                                                                                





일찍이 이조년이 '다정가(이화에 월백하고)'의 종장에서 읊었듯

다정은 병이고,

더 나아가면 민폐다.

Too much love will killl your friends.

-And your husband,

-And even your lover.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무려 20년 전 영화다.



20주년을 맞아 재개봉한 이 영화는 원래 시대극이기 때문에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2016년에 어울린다.

영화의 주배경이 되는 사막은 100% 아날로그 촬영이기 때문에 아날로그 사막풍광을 상공에서 담은 그림을 스크린으로 본다는 것 만으로도 관람료가 아깝지 않다.



사실 도입부 붓질이나 도입부의 OST에서는 희미하게

철저한 아카데미용으로 만들려고 시도한 영화같아! 싶은 스멜이 좀 나긴 하지만(너무 비장미가 있달까? 스토리나, 도입 연출이나 기타 등등).

반전 메시지를 주려는 부분 부분도 그렇고. 진정한 사랑+세계평화 무얼 말하고 싶든, 너무 비장하고 철학과 세련미는 살짝 부족하달까. 사랑은 기다림, 이라는 식의 연출(메시지 말고 연출)도 시대 반영해서도 조금 진부한 느낌.


영국인인 환자가 전쟁 때문에 정체성도 인정받지 못하고 세계 각국을 떠돈다는 메시지. 영국인인데 전시에 입증을 할 수 없게 되자 영국인에게 박해 당하고, 그러느라 사랑을 놓치고. 뭐 그런 얘기.

국적이 다 무어냐, 서류도 군복도 배지도 없이 맨몸으로 혼자 떡 하니 서 있으면 네가 유럽 어느 나라에 붙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을 말하는 지 아무도 증명할 바 없다. 국적이란 그런 것인데 왜 인간이 만든 전쟁 속에서 서로 피폐해지느냐. 뭐 이런 얘기다.



다소 너무 아카데미용 스러움이 느껴지는 영화지만 이래저래, 귀와 눈은 호강하는 영화다.

이제는 중년이 된 랄프 파인즈의 다부지고 총명해보이는 총각 리즈 시절이나,

지금도 청순한 줄리엣 비노쉬의 발랄하고 화사한 모습,

콜린 퍼스의 젊은 시절도 함께 볼 수 있으니 더욱.




다시 본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디렉터스 컷이었는지, 어린 시절 잘려나간 편집본을 본 것보다 더 길었는데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야하지 않아서 나의 찌듦을 실감하였다.


아련돋아 울면서 본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울지 않았지만,

몇 대목에서는 (저런 못난이 같은 것! 답답이! 나쁜 X! 소리가 나올지언정)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배경이 되는 사막도 숨이 멎을 듯 아름다웠고.






참 예로부터 옛날 사람들이 더 까졌다고 세상 대담하게 불륜을 저지르긴 한다만,


영국 고전 영화이다보니 언어가 아름다운 건지,



꾹꾹 누르다가 기어이 폭발하는 감정선을 따라 하나하나 세심하게 정제된 아름다운 언어들.

단어 하나 하나 골라 만든 것처럼 아름다운 대사들.



"The heart is an organ of fire.

"심장은 뜨거운 기관이에요.

Every night I cut out my heart. But in the morning it was full again."

매일 밤 심장을 도려내고 도려내도 아침이 되면 다시 차올라 있죠"



(이 부분을 재개봉 번역에서는 "심장은 욕망의 창고다"라고 번역하셨더라.

우아한 표현이긴 한데 욕망으로만 한정하면 조금 느낌이 다른 거 같다. 나도 뭐라고 해야할 지 물으면 대답 못하겠지만 좋은 번역은 아니라는 개인적 의견. 물론 얘네 사랑이 되게 의외로 육욕적인 게 크긴 하다.)



"I just wanted you to know. I'm not missing you yet."

"(이제 더 보지 않게 되더라도) 이건 알고 있어요. 나는 끝내지 않았어요."
"You will. you will."

"(당신도 나를) 잊게 될 거예요."

-지속해서는 안 될 만남을 이어가면서, 마지막을 선언하는 캐서린. 알마시는 네가 이별을 선언하고 나를 보지 않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중단되지 않은 상태라는 걸 알고 있으라고 말한다. 나는 진행 중이니, 이건 끝이 아니라는 얘기.



그리고, 랄프 파인즈는 사랑하는 여자의 신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에 대해 그 부분의 명칭을 영화 속에서 세 번 정도를 질문하는데, 그래서

"쇄골 한 가운데 움푹 파인 그 부분"의 이름이 천돌인지 모르더라도, 마음 속으로

"그게 뭐가 중요해! 쇄골 움푹뼈라고!" 라고 계속 대답하게 되거나, "그만 좀 물어봐!"라고 외치게 될 수도 있는 영화였다.



뭐 남자가 사랑에 빠진 여자로 인해 늘 예전부터 존재해왔을 신체 부위를 처음으로 인식하고 궁금해하며 자신의 것이라고 정복하고자 하는 대목은 낭만적이긴 한 이야기이다.




그 와중에 "지금 이 순간은 당신의 부인이에요" 라는 둥, 바람 피우는 유부녀가 하기엔 지나치게 뻔뻔한 대사들이 곁들여져 있기에 좀 민감해졌다. 흠흠. 아무튼.






영화 내내

남자(알마시)의 이중적인 행동이나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찌질한 조롱 등이 좀 이해가 가지 않는 수위고.

음.

그럼에도 가슴이 아리도록,

전체 흐름에 상식적 이입은 안 돼도

순간순간 장면에서

인물간의 눈빛이나 감정선 스킨십에는 내가 들어가 있는 듯 몰입이 잘 되게 만든 영화인 듯.






오지 여행가 영국인 알마시. 캐서린을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캐서린에게는 남편이 있다. 마크 다아시...아니 콜린퍼스라는 멋진 영국 남편이 있다.



사실 3세 떄부터 알던 친오빠 같은 남자와 결혼한 캐서린은

당연히

매력적이기로는 으뜸이라는

'낯선 남자' 알마시와 사랑에 빠짐.




알마시는 남편도 있는 여자 캐서린한테

너무 적극적이고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것.



옛날 사람들이

하여간

더 까졌다니까.





서로 호감을 갖고 있지만

캐서린이 유부녀이기 때문에 유치하게 티내며 거리를 두던 두 사람.



모든 걸 희미하게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남편은 왠지 모르게 자리를 비워서



두 사람은 일행과 다같이 사막 동굴 투어를 가고





캐서린은 당신 책에 넣으면 어울릴 것 같다며 헤로도토스 역사 책 속에 끼울 그림을 그려주는데

알마시는 자기가 먼저 실컷 츄파 던져놓고 싸늘하게 거리감 두며 됐다고 안 받고



얄궂은 운명은 모래폭풍을 가져오고

둘만 폭풍 속 차 안(밀실)에 갇히고......

차 안에서 밤새 얘기하다 친해져 사실은 그림을 받고 싶었다 영광이다 라며......



그래놓고 또 무사히 구조돼서 나가게 되자(하필 캐서린 남편에게 구조됨)

또 깍듯하게 Mrs. Clifton 이라고 부르며 "클립튼 부인, 제 책을 아직 부인이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요(내 책 내 놔)" 를 시전하는 치사하고 유치한 알마시.



그래 사람이 그런 것이다.

좋아죽겠는데 남의 부인이니 심술나면서도 아련하면서도

내 맘을 말을 할 순 없는데 알아줬음 좋겠고 그렇다고 너무 티나게 말하기는 또 싫고



아무튼 그렇게

서로 좋은데 참으면서 아련아련하던 감정이

내 책 내놔 시전 후 삐짐모드로 있다가 폭발.



알마시는 모래 폭풍을 뒤집어 쓴 몸 그대로 침대에 뻗어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 보니

캐서린이 찾아와있었다.





꿈인가 싶었을 상황.

두 사람은 한 푼 씩 적립했던 애정을

일시불로 불태운다.



너무 격하게 확인하다보니

옷까지 다 뜯어져서



이후 장면에서는 알마시가 캐서린의 옷을 바느질하고 있는데

진지한 장면인데 난 왜 웃겼지.






좋아하는 장면. 이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이 가장 행복하던 때가 이 때였던 것 같다.

이 장면은 정말 아름답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상황에서 알마시 이 븅ㄸㅏㄱ 같은 ㄴㅗㅁ이

이제 여길 나가면 자길 잊으라며

찌질하게 굴기 시작.


아니 그렇게 불륜이 싫으면

첨부터 따라다니고 꼬시질 말았어야지!

이 뒤로는 암튼,

안 된다 안 된다 하면서 불붙은 사랑,

그 사랑이 친구도 망가뜨리고, 남편도 망가뜨리고,

결국은 연인에게 파국을 가져다주는 얘기.


전쟁 중에 신분을 증명할 수 없어

하염없이 자신을 기다리는 연인에게

돌아가겠노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한 남자,

우연히 살아 남았으나 사는 게 더 이상 사는 것이 아니었던 영국인 환자.




백의의 천사 같은 줄리엣 비노쉬로 인해,

마지막 이야기도 들려주고, 삶의 존엄을 지켰다.



영국인 환자는 줄리엣 비노쉬의 새 사랑에 어떤 연결고리가 되는데,

역시 그 사랑도 전쟁으로 가슴을 졸인다.



지나친 비장미라든가 세련되지 못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가슴 아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20년이 지난 후에도 이 사랑이 아련한 건 역시,



역으로 사랑이 영원하기 힘든 현실 때문일 것이다.

가져서는 안 되는 금기의 사랑을

잠시 잠깐 전쟁 중에 폭풍(재난) 중에 어렵게 어렵게 이어갔기 때문일 것이고,

격한 채로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이 드물어서일 것이고,

서로 잘 맞는 영혼의 짝이 드물어서일 것이다.



아무튼,

바람 피울 거면

결혼하지 맙시다.



이조년이 노래했듯

다정도 병인 양.

다정하다 보니

넘의 와이프도 사랑하게 되고.

너무사랑하다보니

친구도 파멸에 빠뜨리고

남편도, 심지어

남편이 동반자살을 시도하면서

심지어 당신의 연인마저...

세상 민폐 커플인 것이다.

당신 두 명의 사랑이 몇 명을 불행하게 하는 겁니까!

 


프레디 머큐리도 노래했듯

너무 큰 사랑은 당신을 해할 것입니다.



이러니 저러니 까도, 가슴을 일렁이게 하는, 참 아름다운 영화.

비장미가 과도하지만 20년이 지났어도 유효한 가슴앓이.

흐규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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