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크리쳐 SF영화
연출: 다니엘 에스피노사
출연: 제이크 질렌할, 레베카 퍼거슨, 라이언 레이놀즈
쿠키 없음.
요약해서 결론부터 우선 말하면,
영화보고 나와서 포스터를 보니 '충격적 결말'이라고 홍보하던데 그 결말이라는 것이 뻔히 예측 가능하고
크리쳐의 섭생도 아주 흥미로운 건 아니었고
크게 새로울 것 없는 영화였지만,
밀실 SF 크리쳐 스릴러로서 즐기기에는 흡족했다.
우주 괴물 짱짱팬들에겟 굿!
출연진도 짱짱굿!
라이언레이놀즈의 되바라진 모습과 제이크질렌할의 감성적인 모습 콤비가 아주 볼만함.
제목에서 느껴지는 감성도 그렇고 출연진도 늘 수작만 등장하는 배우들이라 '콘택트' 나 '그래비티' 류의 철학적 사유도 담긴 SF라고 기대할 수 있는데, 그런 류의 영화로만 기대하지 않으면 재미있다. '팬도럼'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우주선 내의 사운드나 분위기들은 잘 살려서 우주영화 덕후들에게는 다 떠나서 그냥 신날 영화.
[스포 있음]
인종, 국적, 성별에 따른 비하 없는 이례적 우주영화
6명의 우주인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 궤도를 돌며 화성에서 추출한 생명체 샘플을 성공적으로 받아내 연구하기 시작한다. 시대가 언제인지 명확히 묘사되진 않은 걸로 기억하는데 '멀지 않은 미래' 정도 될 것 같다. 6명의 우주인은 다양한 인종, 국적, 성별로 구성 돼 있어 헐리웃 영화 속에서 여성, 장애인, 유색인종의 장벽을 허물려는 인위적 노력이라도 계속 시도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맨 마지막 장면은, 예외). 감독이 유러피안이라 그런가. 무려 우주영화인데도 커맨더가 '러시안' 여성인 것이 가장 이례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맡은 생물학자가 장애를 갖고 있는 아프리칸 아메리칸(이 사람도 좀 나는 답답했다), 바보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는 정상적인 일본 공학자 등, 지금껏 헐리웃 우주영화에서 거의 본 적 없이 편견없는 평등한 인류의 모습. 보통 헐리웃 영화, 특히 우주영화에서는 구 소련에 대한 미국의 지독한 우주 컴플렉스가 드러나거나(러시아 사람의 영어 발음을 조소하거나, 종종 바보처럼 묘사됨), 동양인 비하가 심하거나(우주 공간에서 바보같은 실수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거나 가장 먼저 처참하게 죽는 건 늘 동양인이고, 우주선 내에서도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음악취향 등으로 놀림을 받거나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여성이 비이성적이라고 주장하는데(우주같은 공간에서는 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맡지 못하고 보조적 역할을 하거나 감정적 동요로 위험을 자초한다), 이 영화 속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다만 설치고 까부는 놈이 제일 먼저 처참하게 죽는다는 공포영화의 법칙은 지켜졌다. 라이언 레이놀즈 포스터에 주연급으로 쓴 건 사기라고 봐야 한다. 거의 우정출연 수준이다. 짧은 출연에도 매우 멋지게 나오기 때문에 인상은 깊게 남길 것이다. 약간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생명공학자이면서 감정에 취해 가장 비이성적으로 부주의했던 건 사실 '휴(엘리온 버케어)'였는데, 휴를 구하러 들어간 '로리(라이언 레이놀즈)'에게도 실험실 문을 다시 한 번 열어줄 충분한 여유가 있었음에도 열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다른 영화에서였다면 저 사람 죽어가니까 문 열라고 울어대는 것들이 여자이고 감염의 전파를 막기 위해 열지 않을 것들이 남자였을텐데, 그 반대로 간다. 러시안 여성인 커맨더 '올가'는 죽기 직전까지 매번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물론, 다급한 상황에서도 덤덤하게 팩트를 전달하며 통신한다. 죽음이 닥쳐온 상황에서도 다른 우주인들과 지구,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침착하게 책임을 다 한다.
일단, 이 우주선에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없다. 다들 소소한 실수는 좀 할지언정 다들 적절한 거리와 적절한 친밀감 사이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고,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젖어 다른 동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며, 누군가의 뒷통수를 치거나(아, 쳤나......) 하지 않고, 뒷통수 때리거나 실수한 사람을 질책하지도 않는다.
'The Thing'
크리쳐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그놈의 라이프, '캘빈', 크리쳐의 섭생을 살펴보자. 생존에 필요한 요소(산소 등)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동면한다. 동면에서 깨어나면 산소를 흡입하고 음식을 섭취해 가면서 아주 작은 단세포 형태에서부터 점점 성장해 나간다. 몸 전체가 뇌라는 등의 구술적 묘사도 등장한다. 젤리, 해파리 같은 재질의 투명한 피부 아래 모세혈관이 붉은 보랏빛으로 분포하고, 사이즈가 커 갈수록 촉수도 늘어가고, 점점 커지면서 얼굴이나 입처럼 보이는 쉐입도 약간 생긴다만 입이라는 건 없다. 단세포 동물의 장점만 취하는 고등동물이라니. 무서운 존재다. 아주 조그만 상꼬마 시절부터 머리 쓰는 게 남달랐다. 우주선에 대해 1도 배운 적 없으면서 우주선의 생리를 잘 파악하고 있다.
'휴'는 다리를 다 먹혀가면서 "생명의 기원은 파괴로부터 시작된다"라며, 이 영화의 포인트 메시지 쯤 되는 메시지와 '캘빈은 우리를 미워하지 않지만 우리를 죽여야 해'라는 말 같지 않은 말을 남기고 죽어간다. 응, 로리가 죽은 건 너 때문이 맞긴 맞아. 이 와중에 미란다(레베카 퍼거슨)는 아까 문 안 열어 준 것도 약간 수상쩍은데 그렇게 따지면 자기 잘못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냐며 매정하게 말한다. 매정한 것.
예측 가능한 결말
결말은, 이런 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두 우주선이 다른 궤도로 각자 진행할 때부터 예측했을 것이다. 인류를 지키기 위한 최후를 선택한 주인공 데이빗(제이크 질렌할)이 그놈, 캘빈을 유인해 구명정에 타고 우주로 떠나고, 미란다는 지구로 복귀하기로 하였으나, 두 구명정은 우주의 각종 변수로 인해 서로 반대의 궤도로 접어든다. 그리고 결국 지구로 입성한 '인류에 적대적인 화성의 생명체'. 죽어가면서도 우주선 문을 열지 말라는 데이빗의 절규에도 베트남인지, 어딘지...... 미지의 무지한 동양 어부로 묘사되는 민간인 둘이 우주선 문을 연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당연히 바다로 도망가서 번식하고 지구는 초토화되겠지. 지구로 복귀해야 할 미란다는 비명을 지르며 우주의 티끌로 사라진다. 나쁘지 않은 결말이다만 홍보문구처럼 어마어마한 결말은 아니다. 그냥 영화를 보고 있다보면 저 온도에 저 어조의 영화가 저 상황까지 스토리를 몰고 왔으면 취해야 할 법한 딱 어울리는 결말, 정도?
독창적인 밀실 크리쳐 SF 영화의 소중함
우주선이나 배가 문명과 통신이 끊기고 사고로 고립되면 밀실이 된다. 우주나 해양처럼 인류가 대자연 앞에서 손쓸 수 없이 막막해지는 상황의 밀실에서 연료는 바닥나 가고, 설상가상으로 이상한 생명체마저 등장하는데 그 생명체와 갇혀 버리면 상황은 더 긴박해진다. 보통은 이 상황이면 남아있는 인간들 중 한 명이 악마성을 드러내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이제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 '괴물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것이 조금 지겨운 설정이 돼 가나보다. 이 영화는 초반부터 질질 끄는 인물묘사나 상황설명 없이 스피디하게 진행돼서 좋았고, 실험실에서 빠르게 성장해 실체를 드러낸 크리쳐도 좋았고, 등장과 위기 조성까지의 긴장감 조성도 매우 빼어났다. 조금 어이없는 대목이 중후반부에는 좀 많긴 하지만 이 정도면 해당 장르 마니아라서 더 볼 새영화 없는 사람들에게는 단비같이 고마운 선물.
그래비티처럼 더 이상 덜어낼 것도 첨가할 것도 없이 완벽한 상태의 영화이거나, 마션처럼 재기 넘치는 영화는 못 돼도, 팬도럼 정도는 된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