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설(Colossal, 2016)

사회 속에 갑자기 던져진, 몸만 큰 어른들

by 랄라

콜로설(Colossal, 2016)


나초 비가론도,
앤 해서웨이, 제이슨 서더키스, 댄 스티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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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속에 갑자기 내동댕이쳐진 몸만 큰 어른들,
친근함과 낯선 폭력이 반복되는 쳇바퀴 속에서 어쩔 줄 모르는 신체 약자들,
이들이 반복되는 부정적 사슬을 끊고 앞으로 나아가기까지.



콜로설의 예고편을 보면 이 영화가 마치 병맛 감성인데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인디영화, 작품이 너무 좋아서 대배우가 캐스팅된 다양성 영화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생각보다 병맛 코미디 정서는 별로 많지 않다. 의외로 상당히 우울한 편이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원래는 도쿄를 배경으로 찍을 예정이었으나, 이 영화의 제작사가 고질라의 이미지를 일부 무단 도용했다가 논란될 소지에 휘말리자 귀찮아서 도쿄와 가까운 서울로 바꿨다고 한다. 뭐, 서울의 이미지는 요즘 외쿡인들이 좋아할 법한 이미지로 나오기는 한다. 대사 중에 서울이라는 언급이 엄청나게 많이 나오고 심지어 태극기 그림도 오래오래 등장. 서울시 홍보과에서 감사인사 해야 할 지경일지도. 좀 미개하고 허름하게 나오긴 하지만 어찌보면 '힙하게(이 말 싫어하는데 ㅋ ㅋ)' 나온다. 한강을 끼고 있는 여의도가 나오고, 서울 주변 변두리 위성도시 특유의 독특한 지방색과 지방문화 가득한 느낌으로 부천이 나온다. 이 두 도시가 서울이 나오는 약 20분 정도에 나오는 서울의 거의 전부다. 서울 사람들 중 대사가 있는 서울 사람들은 중국인 같은 얼굴과 꾸밈을 하고(이건 같은 동북아인들끼리만 식별 구분 가능할 듯) 있다. 중국계로 추정되는 이 단역동양배우들은 한국어 대사를 치는데도 한국어 자막이 나오는 굴욕을 당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속 글로리아(앤 해서웨이)는 특정한 직업도 없지만 그렇다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닌, 일단은 작가. 요즘 전지구적으로 흔히 형성 돼 있는 상황에 놓인 젊은이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매일 술을 퍼먹고 필름이 끊기곤 하다 남자친구에게 차인다. 이후 뉴욕을 떠나 고향에 가서 오랜 고향 친구 오스카의 바에서 일하기 시작하지만 오스카 역시 마음이 아픈 아이였다. 어린 시절 모습 회상신으로 보아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기보다는 떡잎부터 좀 그랬다고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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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는 거의 매일, 지구 반대편 쯤 되는 한국, 서울 한복판에 25년 만에 나타난 괴물이야기가 보도된다. 어느 날 그 괴물이 자신과 연관있다는 것을 알게 된 글로리아. 글로리아의 실수로 서울에는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그 뒤로 글로리아는 죄책감에 재발을 막으려고 애쓰다가 폭력을 휘두르는 오스카마저 참아내게 되는데. 글로리아의 약점을 잡은 오스카는 글로리아가 죄책감에 망설일수록 글로리아를 점점 가혹하게 옥죄며 뒤틀린 애정공세를 한다. 처음엔 원한 적도 없는데 선심을 마구 베풀고, 점점 소유하려 하고, 일부러 의존하게 만들어 권력을 잡는다. 약점을 잡은 후에는 소유물이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협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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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에게 다시 시작하자며 고향까지 찾아 온 전 남자친구. 오스카는 질투심에 눈이 멀어 더욱 강한 폭력성을 드러내며 글로리아를 옥죈다. 매일 술독에 빠져 방탕한 백수생활을 할 때도, 친구의 바에서 친구의 갑질을 참으며 일할 때도 자신을 속박하는 일상을 깨고 변화를 도모할 생각을 하지 않던 글로리아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서울로 떠난다. 그리고 시원하게 던져버린다. 자신을 속박하던 사람을. 깨고 나가지 못했던 본인의 한계를. 그동안의 자신을 깨고 나온다.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어린 시절부터 생존형 워리어로 키워진 어른 세대와 달리 현재의 젊은이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남들이 이미 망쳐놓은 세상 속에 휙 던져졌다. 어른 세대와 청년 세대들 둘 중 누가 더 힘든 지는 우월을 가릴 수 없다. 누구도 서로의 입장이 돼 보지 않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이건 그냥 해결해야 할 과제일 뿐이다.
갑자기 성인이 되었는데 망연자실 세상 속에 던져진 덩치 큰 아이들. 신체적 약자로서 폭력에 시달리는 집단. 해결방법이 없고 막막해보인다. 하지만 어떻게든 될 것이다. 마음대로 안 될 수도 있고 우연히 요행이 생길 수도 있고, 더 나빠질 수도 있고, 어떻게든 천천히 변화는 찾아 올 것이다. 그 와중에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건 중요하다. 결과를 생각하기보다는 무엇이 옳고, 내가 이 선택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내 가치관에 부합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결국 그런 선택들이 모여 형성된 결과가 내 인생이다. 선택의 순간에 나 다워야 남의 인생 살지 않고 내 인생 살 수 있다. 어차피 인생은 기왕 태어나 살아야 하는 마당에 귀찮고 힘겨운 건데 내 것이기라도 해야지. 영화는 글로리아가 반복되는 쳇바퀴를 깨뜨리고 악순환의 고리 바깥으로 걸어 나오는 과정을 시원하게 보여준다. 글로리아는 자신이 키워 온 가치관이 옳다고 말하는 방향대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술을 마셔대던 태도를 바꾸고 마주하기 싫은 과제에 정면으로 맞섰다. 이 과정을 조금 더 웃기고 밝게 그렸다면 더 좋았을텐데, 싶지만 카타르시스나 생각할 여지는 많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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