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2: 트레인스포팅2(T2: Trainspotting)

아저씨 된 양아치들은 꼰대가 되기는 커녕 아직도 철 들지 않았다

by 랄라

T2: 트레인스포팅2(T2: Trainspotting)


21년이 흘렀는데,
이들은 꼰대가 되기는 커녕
아직도 정신 못 차렸고,
아직도 철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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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보일
이완 맥그리거 외 1편 출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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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눈물을 흘리며 환영했을 트레인 스포팅 속편(개봉은 못 했거나 아직 안 한 것 같고, 2차 시장에만 풀렸다). 아 난 세기말엔 그보다 좀 어렸다. 그런데 조금 조숙해서(?) 원작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초장부터 덩과 환각 이야기로 가득한 소설. 이 소설이 높은 평가를 받은 데에는 스코틀랜드 사투리와 은어, 비속어를 현실적으로 반영했다는 점도 많이 작용했다는데, 이완 맥그리거 얼굴이 표지에 박힌 한글 번역본을 읽은 내가 어떤 부분에서 감명을 느꼈는지 구체적으로는 잘 기억나지 않고, 특유의 느낌만 남아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특유의 느낌이 강하게 남아있다. 환각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던 이미지들, 앳된 빡빡머리의 이완 맥그리거가 불행한 청춘 그 자체같은 얼굴에 장난끼와 약간의 희망을 띠고 쉴새없이 쫓겨 뛰어 다니던 느낌.

<가디언>은 이 영화의 원작소설(저자: 어반 웰시)을 두고 "욕설과 비속어로 창조해 낸 가장 위대한 시"라고 했다.

그 특유의 느낌 그대로 돌아왔다. 세기말 중2병 감성으로 살아온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시름시름 아프고 자식들 커 간다고 해서 '삶이란 이런거구나' 하고 통달한 아저꼰대들로 돌아온 것도 아니다. 그냥 그대로 돌아왔다. 여전히 오늘만 살고, 여전히 약을 하고(심지어 더 센 약을 한다. 당연한 수순이다), 여전히 막장 바닥 인생이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가는 뻔한 루트와 궤도를 따르지 않고 약물의 환각과 일시적 쾌락을 따르며 살던 청춘들. 에이즈, 마약으로 친한 친구와 자식이 죽어가도 덤덤한 블랙 코미디로 죽음을 표현하던 1편. 21년만에 에이즈로 사망한 친구 토미를 찾아 온 렌튼과 식보이는 그 앞에서도 다투다가 함께 약을 하고 환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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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나란히, 그대로 철길 앞에 선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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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세기말에 살던 아저씨들은 이제 나쁜 짓을 하려고 해도 조금 어려움이 있다. 아무도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고, 본인 인증 없이 돈 되는 걸 할 수 없는 시대. 지갑을 빼내는 기술이라든지 반짝이던 옛 도적질의 기술들은 이제 그렇게 쓸모있는 것이 아니게 돼 버렸다. 그 세대가 아닌데도 묘한 동질감과 동정, 유대감이 느껴졌다. 렌튼의 존재를 인지하고서 복수의 칼을 들고 따라온 백비도 말한다. "시대가 변했지. 우린 아니지만. 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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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수미쌍관을 이루며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맥이 되던 대사 "Choose life(인생을 선택해라)"는 이번 편에서, 미디어 중독인 채로 가상현실에 접속 돼 젠체하며 '남의 인생' 살아가는 세대를 신선하게 새로 정의한다.

영화 보던 중 '허,'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던 이번 편의 대사
(번역: 나 / 의역이 듬뿍 들어있음. 의미 전달이 잘못 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Choose life.
Choose Facebook, Twitter, Instagram and hope that someone, somewhere cares.
인생을 선택해라.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너의 포스팅을 신경이나 쓸 것이라고 소망하며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선택해라.

Choose looking up old flames, wishing you’d done it all differently
And choose watching history repeat itself.
오래된 과거를 보며 사는 것을 선택해라. 네가 좀 다르게 행동했으면 어땠을까 달랐을까 생각하면서. 그래서 또 반복되는 역사를 지켜보는 것을 선택해라.

Choose your future
Choose reality TV, slut shaming, revenge porn
네 미래를 선택해라.
리얼리티 쇼를, slut shaming을, revenge porn을 선택해라.

Choose a zero hour contract, a two hour journey to work
And choose the same for your kids, only worse, and smother the pain with an unknown dose of an unknown drug made in somebody’s kitchen
무제한 노동 계약 인생을 선택하고 두 시간이 걸리는 일터로 출근하는 삶을 살아라.
그리고 네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살게 될, 그런 삶을 택해라. 누군가의 지저분한 부엌에서 제조된 알 수 없는 약물만이 삶의 고통을 덜어주는 그런 삶을 선택해라.

And then… take a deep breath
You’re an addict, so be addicted
Just be addicted to something else
Choose the ones you love
Choose your future
Choose life”
그리고나서 깊게 숨을 들이마셔.
너는 약물 중독자이니까, 중독되고 또 다른 것에 중독되는 것에 중독돼라.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고, 미래를 선택하고, 인생을 선택하라.


이 대사에서 감탄했던 건, 이 압축된 대사만으로도 2편이 결코 한낱 '그저 훌륭한 속편(이것도 어려운 건데)'으로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1편의 대사에는 자아, 인생에 대한 고찰은 물론, 산업화가 제 몸뚱아리 키우기 용으로 노예일꾼 소비자에게 주입하는 가짜소비창조나 해로운 소비물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었다.
"인생을 선택하라.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짊어진 인생을 선택하라. 세탁기를 선택하라. 자동차를 선택하라. 소파에 앉아 정신을 마비시키고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TV쇼를 보면서 인스턴트식품을 입안에 밀어 넣는 인생을 선택하라. 결국에는 늙고 병들게 되는 것을 선택하라. 자신이 낳은 이기적이고 재수 없는 자식들에게 창피한 존재가 되어 자신을 저주하면서 홀로 죽어가는 인생을 선택하라. 인생을 선택하라. 하지만 나는 인생을 선택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다."

변한 시대를 완벽하게 반영하는 2편의 대사는 다시, 개인 미디어 세대의 미디어 중독, 보여주기 위한 천편일률적인 삶, 안정되고 전형적인 궤도에 들어가야 인정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보여주기 위한 남의 삶을 살며 sns에 실제 자신과 가까울지 의문인 자신을 새로 창조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전세계적 취업난, 청춘의 종말은 점점 유예된다. 유예된 불안정한 삶의 종말, 수 많은 청춘이 겪는 오늘의 고통을 달래주는 것은 화목한 가족과 자녀의 장래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착각, 혹은 약물이다. 이 대사는 계속해서 취업난, 열심히 살아봐야 그것이 조금도 개선될 가능성이 없는 사회 속에서 똑같은 삶을 되물림하며 살아갈 현 세대의 위험한 가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1편이 불러 일으킨 사회적 신드롬 자체가 워낙 커서 궤를 비슷하게 하고 있는 2편에서는 같은 충격의 깊이로 그 포스를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2편도 1편 못지 않은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칭찬의 말은 나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론 그런 일을 해냈을 때는 나도 기쁘다. 하지만 평가를 해주는 사회를 나는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 가치도 이내 사라져 버린다. 내 생각으로는 톰이 말하려는 것은 요컨대, 나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도 아프고 아들도 커가지만 개과천선은 어림도 없는 소리다. 런닝머신 위에서 심정지를 일으켜 카테타를 박았어도 안 죽으려고 약을 끊은 거지 나쁜 짓은 못 끊고, 멀쩡히 호텔 경영 배우겠다는 아들을 도둑질에 끌어들이기도 하고, 배신 때린 친구들에게 일말의 미안함도 크게는 없다(적어도 겉으로는). 거짓말하고, 여자 뺏고. 친구끼리의 유난한 유대를 강조하지 않는 것도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전부터 그랬다. 그냥 그게 트레인스포팅이다. '약을 하는 건 우리가 절박한 사회적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거나, 환각에 빠져 자멸하는 삶이 나쁘다 좋다 평가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는 거고 이렇다는 거다. 나 때문에 마약에 손 댄 친구는 에이즈에 걸려 고양이 배설물에 감염 돼 죽었고 친구의 아기는 바닥을 기어 다니다 우리가 놔둔 마약을 먹고 죽었지만 그냥 우리 삶이 그렇게 생겼다. 나는 여기서는 이렇게 생겨먹은 나 같이 밖에 평생 못 사니까 돈을 들고 튄거고 조금은 미안하다. 그런데 그게 뭐? 설명과 변명, 평가는 없다. 그냥 그런 인생과 약을 빠는 동안 보이는 화려한 환각, 블랙 코미디가 있을 뿐이다. 미화되지도 비난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 그냥 그 시대의 청춘. 날 것의 청춘, 오늘날 청춘의 맨 얼굴.

나는 꼰대가 되지 않은 이들이 반갑다. 너무 당연한 거겠지만. '내가 20년 전 바닥까지 치고 살아보니 이래야겠더라'도 아니고, '20년 전 돈 훔쳐서 미안해 사실 나 시한부야'도 아니고, '나 아버지가 됐어 아들놈이 대학에서 호텔 경영학 공부한대 정신차려야지'도 아니고. 시작부터 가난했던 그들은 당연스레 여전히 가난하고 생업에 바쁘다. 성공한 것도 아니고, 정신 차린 것도 아니고, 오늘 벌어 오늘 근근이 먹고 살면서 사우나(매음굴) 따위의 사업 벌일 궁리나 한다. 친구에게 필요 이상의 애정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적당하고 현실적인 수준의 유대감, 공유한 유년 역사에 근거해 약간의 정 정도를 갖고 있으며 필요에 의해 뭉쳤다가 흩어진다.

감독도 배우들도 나이 들었다. 난 늘 영감(진짜 노인이라고 하는 건 아니다)이란 감이 떨어지는(0, 제로인)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든 그들은 조금도 감 떨어지지 않은 세련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1편의 포스에 가려 되려, 원작을 훼손하지 않고/팬서비스를 충실히 하는 속편 정도로 평가절하 될 여지가 있는데 속편 자체로도 굉장히 훌륭한 영화다.
말할 필요도 없고 영알못이지만 앵글들도 아름답다. 가장 좋았던 건 1690모임가서 노래 부를 때 이완맥그리거 얼굴 클로즈업, 그리고 백비한테 칼빵 맞을까봐 주차장에서 숨바꼭질하다가 도망나온 렌튼이 뛰어서 도망 다니는, 막 동트기 시작한 조용한 새벽 거리의 느낌이다. 스크린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벽과 그 벽 양 사이로 저 멀리 전개되는 갈림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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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은 그대로 자라난 그들은 '집,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상 유일한 곳'에서 각자의 위치에 계속 존재한다. 약과 배설물, 변기, 폭력, 여자, 배신과 사기는 계속 크고 작은 형태로 그들 곁에 있을 것이다. 여전히 랜튼은 그 방에서 Lust for life에 맞춰 춤을 춘다.

어렸을 땐 한 사람의 20대 이후 변화에 대해 '자라난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사람이 성인이 된 후에는 완성된 자아 위에 그냥 역사를 쌓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1년 전 20대 초반이던 청춘들은 자라났고 그보다 어렸던 나도 자라났다. 얼핏 남들이 보기에 안정 돼 보일 삶은 계속해서 안정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예정이라 그냥 계속 자라나는 중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겉에서, 멀리서 보면 비슷하게 똑같이 흘러가지만 계속해서 크고 작은 사건이 생기면서 그렇게 흘러갈 것 같다. 세상은 또 변해가고, 나는 그대로이면서 계속 흘러가겠지 하는 엉뚱한 세기말 중2병적 생각을 해보았다.
세기말에 청춘이다가 아저 된 양아치들, 20년 후까지 아무도 죽지 말고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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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인스포팅 2 는 개봉하지 않았다. 2차 시장에만 풀렸다. 개봉하려나 모르겠네. 사유는 다르지만 곧 '옥자'도 2차 시장 및 개인소유 영화관에만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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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인스포팅’이란 기차역에 하루 종일 있으면서 역에 들어오는 기차의 번호를 적는 행위로, 영국에서는 이러한 편집증적 기벽을 가진 사람들을 ‘트레인스포터’라고 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어빈 웰시는 트레인스포팅이라는 단어를 기찻길을 연상시키는, 팔의 정맥 위에 일렬로 자리 잡은 주사바늘 자국들을 가리키는 헤로인 중독자의 메타포로써 사용하고 있다.
-출판사'단숨' 서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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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든 이론을 철저히 알고,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그 위에 건전한 정신을 갖추고 있다고 가정할 때, 그래도 나는 헤로인을 맞으려고 생각할까?
세상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용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 자신이 실패했다는 신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여한 것을 완전히 거부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선택하라. 인생을 선택하라.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짊어진 인생을 선택하라. 세탁기를 선택하라. 자동차를 선택하라. 소파에 앉아 정신을 마비시키고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TV쇼를 보면서 인스턴트식품을 입안에 밀어 넣는 인생을 선택하라. 결국에는 늙고 병들게 되는 것을 선택하라. 자신이 낳은 이기적이고 재수 없는 자식들에게 창피한 존재가 되어 자신을 저주하면서 홀로 죽어가는 인생을 선택하라. 인생을 선택하라. 하지만 나는 인생을 선택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다.
해리 로더는 이렇게 노래했다. “이 길이 계속되는 한, 나는 오로지 전진하리라…….”
-원작소설 p.259-260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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