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특권인 직관의 힘
직관이란 걸 가져본 적 없는 바보들만이, 소수의 특권인 직관의 힘을 무시한다.
"일어나기 전에는
모든 것이 전례없는 일이죠"
비행기 사고 역사상 가장 낮은 고도였던 850미터 상공에서 수상 불시착 시도, 155명의 탑승객 전원 24분만에 구조.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비극 때문에 가슴아픈 영화.
특히, 수상 착륙 후 침착하고 신속하게 구조를 안내하고 승객을 이끄는 승무원들, 비상구 탈출을 유도하는 비상구 승객, 빠르게 연락을 받고 구조하러 온 보트들 -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메뉴얼대로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울컥했고
승객들이 다 빠져나가고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강 속에 잠기고 있는 비행기에
혹시라도 남아있는 승객이 있을까 끝까지 꼼꼼하게 마지막까지 남아 살피는 기장 설리의 모습이 울컥했다.
수십년 동안 같은 노선을 운항한 비행기 조종사 설리 셀렌버거는 출항 직후 새떼를 맞닥뜨린 비행기를 무동력 상태에서 몰아 허드슨강 위에 착륙한다. 양쪽 엔진은 모두 기능하지 않고 있었고, 관제탑에서 안내해준 활주로까지 11Km의 거리를 무동력으로 갈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
155명의 승객 전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생존했고 큰 부상을 당한 승객도 없는 기적이었지만, 설리는 관제탑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강 위에 불시착하는 판단을 내린 점에 대해 국가운수위원회로부터 '승객을 위험에 빠뜨린 건 아닌지', 몇 주에 걸쳐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된다. 위원회가 지적하는 설리의 판단착오 의혹의 포인트는 데이터 상 왼쪽 엔진은 미세하게 기능하고 있었다는 것, 같은 조건으로 설정하여 시행해본 그들의 시뮬레이션 결과 관제탑이 이끄는대로 인근 활주로에 착륙해도 착륙에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끌어다 내보이며 절대 틀릴 수 없는 증거랍시고 제시하는 데이터라는 것은 대체로, 실제로는 '전문가의 권위나 얼핏 객관적으로 보이는 수치에 의존하지 않고는 자기 생각을 가져볼 수 없는 바보들'의 틀린 주장에 종종 악용된다. 직관이라는 건 굉장히 짧은 시간에 똑똑한 사람이 그동안 쌓아둔 뇌 속 데이터를 찰나의 순간에 빠르게 계산하여 내린 결론이다.
수십여년을 똑같이 반복해 몸에 밴 습관을 토대로 내린 판단은 그 어떤 통계보다 정확한 결론이다.
연습과 습관에 관하여 일찍이 서태웅이 뭐라고 했던가. "백만 번도 넘게 쏘아온 슛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서태웅이 눈감고도 슛을 쏘는 것처럼, 어릴 때 탄 자전거를 다시 탈 수 있는 것처럼, 무의식중에 매일 컴퓨터 비번을 푸는 것처럼.
직관의 힘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직관이 없는 멍청한 사람들이다.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결론내릴 명민함이 전혀 없어
전문가랍시고 까부는 다른 사람들-남이 주관적 전제를 가지고 그 전제에 맞춰서 조각조각 모은 데이터(이것이야말로 주관적이다)에 의존하지 않고는 도무지
생각이라는 걸 할 수가 없는 사람들.
직관이란 걸 가져본 적 없는 바보들만이, 소수의 특권인 직관의 힘을 무시한다.
멍청한 주제에 데이터만 신봉하는 멍청한 데이터신봉자들 극혐.
'스파이 브릿지'에서도 그렇고, 톰행크스는 직업윤리에 충실한 베테랑의 모습을 그린다. 부당함 앞에 사익 때문에 약게 굴지 않고, 과도한 동정심이나 감성충 드립 대신 그냥 인간으로서 직업인으로서 주어진 일을 당연스레 해낸다. 영웅대접하는 세상의 찬사 앞에서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설리는 결론이 나기 전까지 조사과정에서 계속 고민한다. '내가 정말 잘못 판단한 건 아닐까? 승객을 위험에 빠뜨렸나?' 만약 수상 착륙 후 구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인적 요소가 빠진 판단은 고려대상이 될 수도 없다. 전례가 없는데 도대체 무슨 데이터를 참고하겠다는 건지, 끌어온 데이터에 결론의 가정이 섞여있는데 어떻게 객관적인 데이터가 될 수 있겠는가.
시뮬레이션을 근거 자료로 삼을 수는 있는가, 자격증을 교부받고 수십년 동안 각자의 직업윤리 하에 안정적으로 근무해 온 베테랑 조종사는 모두 사람이다. 전례없는 사고를 당했고 각자 최선이라 생각하는 판단을 짧은 시간에 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 대한 정확한 조사는 물론 중요하지만,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다른 조종사가 진행한 시뮬레이션이 근거 자료가 되기는 힘들다. 이미 답정너이기 때문이다. "왜 그랬어, 관제탑에서 시키는대로 내가 활주로로 가볼테니까 잘 봐. 거 봐, 되잖아. 넌 승객을 위험에 빠뜨렸어."
세상에서 누가, 이런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설리의 아내는 조사 중인 설리와 통화를 하다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말한다.
"155명 전원이 구조됐어.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실 당신도 그 155명 중 한 명이잖아......"
비행기 사고는 교통사고보다는 물론 로또 당첨보다도 발생 확률이 적지만 보통 벌어지면 높은 확률로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다.
예기치 못한 사고에서 155명 전원이 살아났는데, 사실 기장도 사고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이성적인 체 가장하고,
'승객을 위험하게 했다'며 생명과 사람 운운 하는 위원회는 사실 보험금 지급과 이해관계 때문에 설리를 추궁하는 것이다.
얼마나 허울좋고 잔인한가.
좋아하는 배우 아론 애크하트. 어쩜 이렇게 못 뜨는지......
연출: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톰 행크스, 아론 애크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