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아존중감, 오늘도 안녕하신가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Brad's Status)
플랜B / 마이크 화이트 / 벤스틸러
"세상이 나를 사랑했고
나도 세상을 사랑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던 시절.
우리의 사랑에 언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 걸까?"
미스터 브래드가 다른 사람의 말에 좌지우지되는 대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장 자기 자신답게 살아가기 위해 신념을 좇으며 살아온 40여 년.
자본주의는 사회의 몸집을 불리는 데 크게 기여하지 않는 구성원에게 너는 불행하다, 너는 패배자다,라고 반복하여 말한다.
그럼에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내 스스로 자신이 만족스러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지만,
남달리 똑똑한 내 아들이 미래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 중요한 시점에 조금 더 편안한 비행기 좌석 하나 쉬이 끊어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되고 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내 아들이 내 아들이어서 덜 똑똑한 남의 집 아들보다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브래드는 자신과 달리 하나같이 잘 나가는 학교 동창들에게, 아들이 실수로 놓친 면접 스케줄을 다시 잡는 데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전화를 해야 한다.
크레이그 역의 마이클 쉰. 진짜 연기 대박이었음 ㅋㅋㅋㅋ 황당해하는 연기
그리고 이 상황이 너무 코미디......
사건 하나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나오는 독백이 너무 솔직하고 적나라해서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몇몇 장면에선, 특히 아들 친구들 있는 바 다시 갔을 때, 내가 다 부끄러워서 육성으로 소리 지를 뻔했다.
아직 대학생 밖에 되지 않은 여자아이에게 "인생의 조언을 해준다면, 돈을 벌어. 일단 성공하고 그 돈으로 네 신념을 실현해."라고 회한에 섞인 말을 흥분하며 늘어놓았을 때는, 오글거림을 견디기 힘들면서도 짠하고.
일희일비의 전형에 자아존중감 없는 브래드, 괜찮아요!
영화는 의식의 흐름을 정말 잘 쫓아간다. 잠이 오지 않아 뒤채다가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의 일들, 예민한 사안에 던지는 주변 사람들의 별생각 없는 말들에 일생 쌓아온 가치관이 손바닥 뒤집히듯 뒤집히기도 하고, 전세기를 소유해 부러운 친구 딸이 아프다는 말에 묘하게 위안을 받기도 하고, 경쟁하던 친구의 수업을 욕하는 여학생의 뒷담화에 신이 나기도 하고.
건강한 에너지가 충만해 보이며 성공 가도 만 달려왔을 것 같은 여학생들, 아직까지 세상과 사랑에 빠져 아무 고통도 느껴보지 못했을 법한 이 여학생들을 보며 '내가 평생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절망에 빠져도 보다가, 두 여학생을 데리고 풍요롭게 섬에서 생활하는 삶을 일순 상상해보며 소외감을 느끼는 의식의 흐름 등이, 너무 적나라하고 리얼해서 가슴이 아프다.
사실 답은 없다. 현재 자본주의를 대체할 체제는 없고, 행복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해보았자 상대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끼리의 그런 자위는 누군가에게는 정신승리로 비칠 뿐이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고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라고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남의 평가나 사회적 지위가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가치보다 중요한 다른 가치가 있다고 하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가치는 내 마음속에서나 제값을 쳐주지, 실제로는 연봉이 셈해준다. 남들은 그것 외에는 내 실제 가치를 알 길이 없고,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난 돈을 좇는 삶을 살 생각이 없었어라고 아무리 말해보았자, 모든 것은 결과로만 평가받는다.
영화에서도 별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냥 옆 침대에서 잠들어 있는 사랑하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을 인지하는 순간이랄까.
“아빠가 오늘 날 창피 줬지만 괜찮아. 사람들은 사실 자기 일만 생각하거든. 아빠도 내 의견에만 신경 쓰면 돼. 괜찮아.”
“네 의견은 어떤데?”
“사랑해”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에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 아들이 하버드를 가든 다른 가고 싶은 학교를 가든 무슨 상관이며 신념을 좇는 나보다 돈을 좇아 눈부시게 사회적 지위의 갭을 벌리는 동창들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미래를 찾아 나서는 중요한 순간을 직면한 아들에게 편한 비행기 좌석 하나 사주지 못하는 순간처럼 자본주의가, 우리가 불행하다고 착각하도록 만들며 우리를 더욱 굴려대려 할 때, 내가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사랑하는 나 자신답게 살고 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벤스틸러의 영화는 사실 거의 믿고 다 본다. 요즘 너무 이 아저씨 나오는 영화가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도 벤스틸러가 아니었으면 한층 더 우중충하고 매력 없는 영화가 됐을 것이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새벽부터 시작하는 의식의 그 지질하고 적나라한 독백을 이렇게 웃프게 소화할 수 있는 건 이 아저씨 밖에 없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