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를 설명하는 '인간다운' 유인원들
혹성탈출_종의 전쟁(War for the planet of the apes/2017)
-맷 리브스
-앤디 서키스
행성 주인의 자격; 인간다운 쪽이 주인이지!
이 행성의 주인 될 자격에 대하여. 행성의 주인은, 그것이 원래 이성과 지성이 없던 짐승이었다 하더라도, 보다 '인간다운' 쪽이 될 것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 다울 수도 있는.
War: 무엇에 맞서 싸우나
혹성도 탈출하지 않고, 종끼리 대규모 최종 전쟁을 하는 것이 이번 영화의 본질도 아니다. 영화의 원제는 "유인원의 행성을 위한 전쟁"이다(오프닝에서 이전 편에 대한 요약을 시각적으로 명료하게 잘해준다.). 이번 편의 가장 큰 전쟁은 시저 내면에서 일어난다. 싸움의 대상은 시저 본인 내면의 복수심, 절망과 죄책감, 내적 갈등이다.
신의 선물: 이성과 지성-양날의 검
어릴 때는 사슴(귀엽고 예쁘고 작은)을 잡아먹는 사자가 나쁘다고 생각했었다. 자라서 보니 그것은 그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자연 사이클, 생태계일 뿐이었다. 본능으로 운영되는 생태계. 인간은 그런 약육강식 정글의 본능을 가진 데다가, 심지어 그것을 교란하기도 하니, 세계사 속 전쟁이나 차별의 역사들을 살펴보고 있자면 인간만큼 잔인한 종이 또 어디 있나 싶기도 하다. 삶을 이어가는데 필수적이지 않은 살육을 저지르는 건 인간에게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인과관계를 추론하거나, 잘못된 신념을 갖거나.
그래서 인간이 참 악하다고도 간혹 생각했는데, 요즘은 인간이 악한 게 아니라 약한 것이라는 생각도 많이 한다.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했다. 가족, 연인처럼 지켜야 할 존재들, 소중한 것들이 생길수록 인간은 더 약해진다. 약해진 인간은 고약하고 비굴하게 존엄과 고고함을 포기하고, 잘못된 끈을 붙들고 늘어지기도 한다.
이성과 감성이인간을 약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하고, 다른 인간에 의해 바닥을 체험하고도 혐오와 시련을 극복하는 강한 사람으로도 만들고. 인간의 지성과 이성은 축복이자 불행이고, 그 사람이 가진 품성과 의지에 의해 발현되는 형태가 다른, 양날의 검 같은 신의 선물이 아닐까 한다.
체급 대비 신체적 능력으로 따지면 인간이 감히 '미물'이라고 부르는 개미만도 못한 인간. 인간에게 신이 준 선물, 지성과 이성. 사용하는 자의 선한 의지가 따라주지 않으면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는 선물.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전하다 못해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느끼거나 경험치에 의한 연산 이상의 직관 판단이 가능한 로봇이 등장한다든지, 인간의 두뇌를 뛰어넘는 동물이 등장한다든지 하는 의인화 SF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사실 인간이 약해서다. 나약한 신체적 능력을 가진 인간이 인과관계 추리와 추론, 도구의 사용으로 지구 상의 모든 생물체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서 현재는 가장 강한 존재인 것처럼 되어 있지만, 곱절의 신체적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 우리처럼 사고하고 지식을 축적할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두려운 것이다.
제3의 존재가 역할극으로 보여주는 '인간다움', 객관화 된 '인간'
지성을 갖게 됨으로써 자유를 얻은 시저, 인간다워진 시저이기 때문에 시저 역시 끝없이 번민한다. 죄책감과 절망 속에서 무의식중에 묻어둔 두려움은 계속해서 꿈으로 찾아오고, 선한 의지로 시작했다고 생각했던 일이 판단 미스로 판명되거나 실수가 될 때도 있고, 지키고 싶었던 가족의 일 앞에서 이성을 놓고 분노의 화신이 되기도 하고, 한 가족의 가장과 무리 전체의 지도자 역할 사이 정확한 지점을 찾아내지 못할 때도 있다. 인간이기에 실수를 하지만 계속해서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주어진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유대를 기반으로 서로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3편은 '인간다움'이 아름다운 이유를, 인간 아닌 존재가 인간만의 유일한 특성을 우연히 얻었다는 가정 하에 설명한다. 우리는 늘 눈뜨면 펼쳐지는 익숙했던 그림에서 조금 떨어져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안녕, 시저
요한계시록 22장 13절,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다."
출애굽기에 비유되는 장엄한 서사라든지, 성서 속 모세에 비유되는 시저의 궤적 등은 너무 많은 기사나 평론가들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생략한다.
너무 긴 세월을 알았던 시저이고 출생부터의 일생을 지켜봤기에,
어린 시절부터 알아온 친근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기분으로 시저 안녕. 나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잘 싸웠다, 이제 집에 왔으니 편히 쉬기를.
"Ceasar is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