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슬픔은 삶의 가장 큰 기쁨과 함께 왔으니
벙어리 냉가슴 앓다가 만난 소나기 같은 환희,
뜨거운 햇살이 자취를 감춘 겨울이 오고 한 여름의 지나간 꿈이 그리워 고통스러워도,
Don't kill it and with it the joy you've felt.
깊은 슬픔은 삶의 가장 큰 기쁨과 함께 왔으니.
연 출 _ 루카 구아다니노
출 연 _ 티모시 샬라메, 아미 해머 등
여름, 소나기 같은 첫사랑의 환희
초록 풍경은 청량하고, 여름낮 햇살과 여름밤바람은 피부에 와닿는 듯하다.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촉각과 귀를 스치는 초록 잎사귀들의 율동 소리, 리넨 침대보에 맨살을 비비며 낮잠에 빠져드는 기분이 4D처럼 살아있다. 생생한 여름 느낌과 함께 그려지는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한여름밤의 꿈같은 느낌을 준다. 이 느낌은 원작 소설에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파라솔이 햇빛을 가리지 못하는 테이블 부분에 놓인 레모네이드 컵에서 얼음이 딸각거리는 소리' 같은 표현들로 누구나 집 마당에서, 혹은 휴가지에서 겪었을 나른하고 아름다운 여름날의 오감을 일깨운다.
내가 인식하는 것과 가장 유사하게 나를 보는 사람
“Call me by your name, then I’ll call you by mine.”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그럼 나는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영화를 보기 전, 다소 오글대는 거 아닐까 했던 이 제목은 영화 맥락 안에서 보니 궁극의 사랑 표현이었고 영화 안에서는 과함이 없었다. 사랑의 본질에 가까운 궁극의 사랑을 느낄 때 나온 대사였다.
스무 살 이전부터 사랑은 "내가 인식하는 것과 가장 가깝게 나를 봐주는 사람"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거나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데 가끔 낯설고 닮은 사람들은 많은 설명이나 대화가 없이도 내 눈빛이나 행동을 읽어내고 나 자신에 대해 내가 인식하는 내 자아와 거의 흡사하게 인식한다. 그런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때는 급속도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대부분 상대도 나와 같이 느낀다.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극중 17세)와 올리버(아미 해머, 극중 24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그냥 어쩌면 처음 보자마자부터이고, 나중에 사랑하게 되면서 앞선 행동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로 무엇이 맞는지 중요하지 않다. 나이 차이도, 성별도, 왜? 였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한 여름의 이벤트같이 잠시 잠깐 타오르는 불꽃인지, 육욕인지 그 이상의 것인지도 사실 구분이 무의미하다. 그냥 지금 현재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하거나 소나기 같은 환희에 젖게 하는 사랑이라는 것만이 중요하다. 사랑의 본질에 더 가까워 보인다.
‘Is it better to speak or die?’
말하는 게 나을까요, 죽는 게 나을까요?
여린 풋사랑
말하는 게 나을까, 죽는 게 나을까 고민해야 할 정도로 터질 듯한 마음을 껴안고 보낸 엘리오의 여름. "당신이 알아줬으면 해요, 당신이 알아줬으면 해요"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엘리오의 모습이 짠하다. 상대방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가며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마음. 사실 올리버라고 덜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상황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한 후에도 어쩔 수 없었던 그 마음이 좀 더 진짜라고 할 수도 있다. 처음이라서 더 아프고 이미 몇 번의 경험이 있다고 덜 아픈 것도 아니다. 다음에 어떤 감정이 올지 순서를 알고 아픈 것과 모르고 아픈 것의 차이 정도. 그래도 엘리오가 미성년자이고 영화가 엘리오의 관점에서 대부분 진행되기 때문에, 엘리오가 좀 더 안쓰럽고 마음 아프고 그런 것은 별 수 없기는 하다.
정해진 이별을 떠올리자 갑자기 터지는 울음을 올리버 앞에서 주체할 수 없던 엘리오의 모습에도,
이별의 순간에는 열심히 참다가 “엄마, 데리러 올 수 있어요?”라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릴 때도, 그 여린 풋사랑의 안쓰러움에 같이 울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타는 벽난로를 바라보는 엘리오의 롱테이크 엔딩 씬은 오래오래 잔상으로 남는다.
아버지가 엘리오에게 건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아들을 인정하고 아들의 앞날을 응원하고, 아들의 삶과 사랑을 모두 껴안아 포용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이 아버지의 메시지는 우리 모두를 향한 영화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계속해서 올리버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는 열 일곱 살 엘리오의 모습은 실제로 아름다웠다. 그렇게 빛나는 순간이 또 언제 있을까.
“We rip out so much of ourselves to be cured of things faster than we should that we go bankrupt by the age of thirty and have less to offer each time we start with someone new.
우리는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일부를 뜯어내려고 한다(사랑은 나를 형성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의 교감과 사랑, 고통은 나 자신의 일부). 이렇게 자꾸 상처를 뜯어내면 서른 살쯤 되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인연에게 더 내어줄 것이 없게 된다(나 자신이 아니게 된다).
Remember, our hearts and our bodies are given to us only once. ... Right now, there's sorrow, pain. Don't kill it and with it the joy you've felt.”
기억하렴, 우리의 마음과 몸은 단 한 번만 주어진단다. 바로 지금 네가 느끼는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지 말고, 네가 느낀 그만큼의 기쁨을 잘 간직하렴.
"엄마가 알아요?"라는 엘리오의 질문에 "아마 모를 거다"라는 대답까지, 엘리오의 부모님은 영화 속의 유일한 판타지인 것 같다. 이 대사를 들으면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진짜 사랑을 잃은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덧.
원작과의 차이. 원작 <그해, 여름 손님>에 굉장히 충실하다. 대사들이나 에피소드들도 거의 일치할 정도다. 특히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는 몇 마디 생략된 문장을 제외하면 거의 똑같다. 영화와 책을 둘 다 아직 보지 않았고 둘 다 볼 예정이라면 영화를 먼저 보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영화를 먼저 봐야 등장인물들의 행동의 이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져볼 수 있고, 이후에 책을 읽으면서는 그래, 내 생각대로 이 행동은 이래서 한 거구나, 이런 생각의 과정으로 저 행동이 나온 거구나, 하고 마치 해답집처럼 책을 즐길 수 있다. 책도 물론 책 나름대로 읽어볼 가치가 있다. 책 자체의 문장들도 굉장히 수려한 편이다. 작가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통찰이 많은 사람이구나,라고 느끼게 만든다.
결말이 원작과 다른데, 속편 제작이 결정되었다고 하니 책에 나오는 결말 부분이 2편의 시작, 설정 부분이 될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아이 엠 러브> 감독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니 왜 요즘 사랑 영화는 누구 하나가 도깨비이거나, 괴물이거나, 누가 다른 시대 사람이거나, 별에서 왔거나, 그렇게 조금 특이한 장벽이 있지 않으면 스토리 전개가 안 되는 거지?라는 바보 같은 생각도 했었는데. 얼마 전 개봉한 <셰이프 오브 워터>도 그랬고.
영화 속 배경의 시대에는 더욱 괴로운 장벽이었을 동성애와 한 쪽이 '미성년'이라는 제약이 조금도 특이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사랑은 그냥 사랑인 거지. 그냥 사랑이다. 어떤 사랑보다 진짜 사랑에 가까운.
아미 해머는 목소리를 들으면 확실히 눈치챌 수 있는데 '소셜 네트워크' 의 그 윙클보스 쌍둥이이다. 노젓는 엄친아들. 울림통이 좋은 목욕탕 목소리,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 저 그리스 조각같은 사람이 누구더라? 올리브색 피부에 금발, 유리알같은 푸른 눈의 존잘러를 어디서 많이 봤는데, 하다가 목소리를 듣고 아! 윙클보스! 라며 알아볼 수 있다. <녹터널 애니멀스>에서 에이미 아담스와 서로 안 사랑하는 배우자로도 나왔다. 아주 완벽하지만 몰래 바람 피우는 남편으로. 빈틈없이 잘 생긴 외모 덕인지 늘 겉보기엔 완벽한 사람의 역할을 자주 맡는 것 같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에서도 완벽한 외모를 가져서 엘리오 엄마가 늘 "영화배우!"라고 부르는 것으로 묘사된다.
감독이 88세이며 커밍아웃을 한 게이라고 들었다. 남들이 캐치하지 못할 순간을 잡아서 보여주는 아름다운 시각적 묘사나 시각으로 촉각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능력,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섬세한 이 영화를 보며 '감독이 이성애자였다면 저런 섬세한 씬은 나올 수 없었던 걸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대부분의 기사나 리뷰에서 성애 장면이 노골적이지 않아서 퀴어영화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볼 수 있다고 하였기에 정말 아무 각오 없이 이 영화를 만났는데,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지만 퀴어 코드를 떠나서 하나도 야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퀴어 코드 역시 생소함이 조금도 없이 완전히 은유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남자끼리여서가 아니라 그냥 나는 엘리오가 손으로 복숭아 씨를 파낼 때 속으로 "해지뫄!!! 하지마!!오 플리즈 돈 두 댓"이라고 외치고 있기는 했다. 아......아름다운 장면인데. 궁극의 사랑씬인데. 나는 아직 소양이 부족한 것이다. 원작에서는 엘리오네 과수원에서 나는 복숭아가 살구와 접붙이를 하여 굉장히 우량하게 개량된 맛있는 품종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인생의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인 사랑의 기쁨은 대부분 가슴을 찢어놓는 아픔과 함께 온다. 상대가 나를 상처 주지 않아도 끊임없이 혼자 상처받는다. 사실 건강한 사랑을 할 때는 그렇게 혼자 상처받지 않게 되긴 하더라. 삶의 에너지가 샘솟고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의 설렘이나 신경의 몰두는 악연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김광석 님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노래하였나. 따로 있으면서도 신뢰하고 같이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상대가 건강한 연애 상대인 듯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만큼은 악연이 더 강렬한 사랑이거나 사랑의 본질에 더 가까운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