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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희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by 랄라


우리 선희(2013/Our Sun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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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타인이 진짜 나 그대로, 온전히 알 방법은 없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소울메이트 급의 애인은 최대한 "내가 인식하는 나 자신"에 아주 가깝게 나를 인식하곤 한다.

아주 드물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동질감 때문인지 나에 대해 그대로 잘 아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과 "우리는 잘 통한다" 등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요즘 본 영화에서 늘 홍상수는 사람의 본질, 타인이 보지 못하는 나의 본질, 진짜 나, 남이 보는 나,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타인에 대해 100%의 정보를 얻을 수가 없어서 순간순간 스쳐 지나가는 토막토막의 정보만 가지고 그 사람에 대해 정의를 내리게 된다.

비좁은 자기 식견에 의거해서 사람을 보고 예단하는 사람들은 딱 질색이다.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해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있다" 라고 단호하게 평가하면 한층 더 싫어진다. 본인이 잘나본 적 없어서 겪지 못해본 세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도 그 따위로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반화 하는 사람들에게는 최대한 나에 대한 정보를 안 준다. 토막토막의 정보나 귀찮아서 대충 대답한 정보나 겸손하게 축소해 말했지만 본인이 상상할 수 없는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혼자 하향평준화된 소설을 쓰기 때문이다. 그런 불완전한 소설을 쓴 뒤에는 그 정의를 안 궁금한데 굳이 직접 말해주려 하거나 남에게 옮긴다. 사적 판단이 넘치는 내용물을 짐짓 객관적인 어투로.

남이 말하는 내가 어떤 사람이다 라는 정의는 사실 틀릴 가능성이 아주 크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그 정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어느 집단에 갔을 때 집단의 많은 이들이 그사람의 특징에 대해 비슷하게 정의 내린다면 그 집단 속 그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라 타인이 정의하는 나 또한 그 사람의 역사 속에 실존하는 존재임을 어느 정도는 받아 들여야 한다.


선희를 둘러 싼 세 사람이 창경궁에서 선희 없이 선희 이야기를 하며 선희의 특징들을 동시에 열거한 뒤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다 똑같아" 라고 하는 부분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선희가 대략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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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의는 또, 제3자가 한 정의를 듣고 생긴 선입견에 따라서도 매우 달라질 수 있다. 내가 호감을 갖고 안목을 믿는 자가 "00이는 참 진국이야" 라고 술자리에서 뒷 이야기를 해준다면 다음 번에 00이를 만났을 때 호감의 색안경을 끼고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될 지도 모른다.

"형, 저는 걔가 너어어어어무 예뻐요. 끝까지 파고들어 봐야 아는 거잖아요, 끝까지 파고 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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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하려는 사람에 대한 호감도와 애정도, 상대가 나에게 준 것들에 의해서도 그 정의는 매우 상반되게 달라진다. 선희가 유학 때문에 부탁한 추천서 문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선희는 과거 교수(김상중)와 썸을 타려다 결국 피한 경력이 있는데, 교수는 이 때문에 선희한테 약간의 얄미움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추천서에는 "관계에 소극적이다"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고 동료들과 타협이 어렵다"는 뉘앙스의 글들을 적는다. 추천서를 읽어보고 마음이 상한 선희와 만나서 술 한 잔 하고 관계를 대충 회복한 뒤에 적은 추천서에는 "느리지만 서서히 사람의 마음을 얻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해낸다" "신중하게 결단을 내린다" 등의 내용이 담긴다.

선희라는 사람 자체가 변했을까? 선희는 똑같다. 정의 내리는 사람이 쓴 색안경의 색깔이 바뀌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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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선희가 무엇이든, 어떤 특질을 가진 존재이든,

세 남자가 선희와 엮이고 싶은 것은 선희가 어떠어떠한 특징을 가진 사람이라서는 아니다. 선희가 다른 특징을 가졌다고 정의했어도 아마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 어차피 애정과 호감은 영원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렇게 조건부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 앞에 있는 피사체가 낯설고 흥미롭고 "예쁘고" 알고 싶어서 그 대상에게 시간을 투자하고, 내가 조금 불편하고 손해보게 돼도 자꾸 파보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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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 인생의 화두야"

홍상수 영화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대사 1위를 꼽으라면 이 대사를 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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