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랑(2018)

실사화 어떻길래? -이것이 최선이었나

by 랄라



<인랑> 실사화, 어떻길래 멀티플렉스들이 영화가 개봉한 다음날부터 흥행 참패로 개봉관을 줄줄이 반 토막으로 줄이고 있는가. 원작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원작 속에 나오는 수트를 좋아해서 그 실사화가 궁금하기는 했고, 김지운이라면 시각적으로는 굉장하게 뽑았겠다 싶어서 관람을 결정했다.
원래 인간의 호기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궁금한 영화는 보고 나서 실망하더라도 관람하는 편인데, 평일 저녁인 거 감안해도 상영관은 텅텅 비어 있었다.

<달콤한 인생>과 <놈놈놈> 말고 김지운 감독 영화 중에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게 많이 없어서, 뮤직비디오를 보는 거라고 생각하고 봤기 때문에 그렇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Sf랑 괴물영화(<코모도 대 코브라>, <좀비버>, <피라냐콘다> 같은 괴랄한 영화도 다 봤음)랑 우주영화랑 상어영화(<샤크네이도>도 나온 시리즈 다 봤음)는 조악하다고 소문나도 웬만하면 다 재미있게 보는데, <인랑>에서 시각적으로 신선한 자극은 많이 받았다. 이런 분위기로 보완해서 다른 멋진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빛공해 심한 광화문과 비 내리는 서울 구석구석의 가까운 미래 풍경이 참 좋았고, 강동원의 남산타워 액션 신 좋았다. 보랏빛 안개 가득한 도시 배경, 블레이드 러너도 잠깐씩 생각나는 분위기.

봉준호의 <괴물>처럼 익숙한 서울 풍경에 약간의 공상이 매우 자연스럽게 얹히면 좋을 텐데, 그렇지가 않다. 아직도 비 오는 검은 밤 한강을 보면 오, 괴물 튀어나올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선 봉준호의 <괴물> 좀 짱짱맨인 듯하다.
<인랑>에서는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도심 배경에 살짝 얹힌 미래 요소들의 그림은 아름다운데, 역시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정부에 과도하게 군을 형성하여 대항하는 반란 세력이나, 그 반란세력에 발포를 서슴지 않는 특기대나, 그 맹렬한 증오와 전쟁급 대담한 발포 공격에 당위성이 부여되지 않고 어색하다. 왜 저렇게까지 서로 쏘는 거지, 하는. 물론 벌어질 수 있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내가 이해한 한도에서는 '저렇게까지 한다고?'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저럴 수 있을 상황이구나 하는 이해와 몰입을 선사하는 데에 실패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욕하는 뜬금포 로맨스와 결말. 그런데 개인적으로 로맨스 개연성 없는 건 잘 모르겠다. 원래 정말 맞는 사람과는 몇 마디 안 나누어봐도 통하고, 첫 느낌에 반하지 않나.
로맨스가 뜬금포라고 느낀 사람이 많은 까닭도 둘 사이에 에피소드가 부족해서가 아니고 디테일이 떨어져서인 것 같다. 동질감을 느끼거나 눈빛을 교환하는 장면이 있지만 굉장히 케미가 떨어지게 연출되어서, 결말이 원작대로 가든 어쨌든 관객이 배우들의 심경에 몰입을 하고 캐릭터에 애착을 갖기가 힘들다.



기획과 큰 줄기의 줄거리, 재해석이나 결말마저 사실 나쁘지 않았는데, 작은 에피소드들과 대사, 전개 연결의 디테일이 조악한 것이 문제인 것 같다. 이 점이 심히 안타깝다. 조금만 디테일이 섬세했다면 명작이 될 수도 있었고, 그리 준수한 편이 아닌 원작도 뛰어넘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엄청 신경 쓴 동화 삽화는 안 그래도 난잡한 영화를 한층 더 난잡하게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김 감독님 왜 이러신 거예요? 이제 대본은 외주 위탁합시다.
놈놈놈은 내용이 없어서 더 좋았는데 여기선 철학이 얕음에도 허세를 부린다(타인의 고통, 체 게바라 평전 등으로 표현하는 생각들).
김 감독님 왜 이러신 거예요? 이제 대본은 외주 위탁합시다.

[스포일러(있을지도)]

서로 대립하는 과정에 긴장감이 1도 없는데 그것이 또 문제다. 간지나는 수트 보고 싶어서 다른 걸 참고 본 건데, 아쉽게도 강동원이 수트를 걸치고 나니 당연한 거지만 너무 무적이라 전투 신에 심적 긴장감이 없다. 김무열은 왜케 혼자 목숨이 질기지? 아니 킴감독님 저 간지 수트 보여주려고 수트에 저 모든 스토리를 끼워 맞춘 거면서 왜 수트 전투신이 마스터피스가 아닌 거죠



원래도 평소에 발음 발성 성조(?) 띄어 읽기가 상당히 안 좋다고 생각하는 배우들이 주연들이라 어색함을 걱정했는데 내레이션부터 발성이 나쁘다. 의외로 큰 문제다. 한국 영화 최초로 한글 자막이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 같다. ㅋㅋㅋ 배우들 말이 어색하게 느껴져서 잘 들어보니 대사 자체도 너무 입에 자연스럽게 담기 힘든 문체인 것이 많다. 다른 영화들에선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등, 항상 별말 아닌데 상황과의 매치에서 오는 기가 막힌 명대사가 한두 개씩은 있었는데 대사에 말맛이 없다. (듣는 것보다 자막 읽는 것을 훨씬 편하게 느끼는 개인 취향 때문일 수도 있다.)



익숙한 단어들은 뭉개져 들려도 기존 지식이 있어 잘 들리지만 ‘섹트’ ‘특기대’ ‘공안부’ 등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생경한 단어들이 대사의 주를 이룸에도 발성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간단한 플롯인데도 빨리 주입이 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설정이 현실 배경에 찰떡처럼 녹아들지 않는데 대사를 통한 상황 파악도 빨리빨리 되지 않다 보니 은근 이 영화에게 치명적일 단점으로 느껴진다. ‘인랑’ 같은 경우 어감이 멋지지만 아나운서가 발음해도 원래 단어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든 단어인데다가 원작을 모르면 뜻도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이상 바로 파악할 수 없는 단어이다. '인랑'과 '특기대'는 어느 지점에서 구분되는 지도 애매하다.


원작에 누아르가 가미된 신선한 새 SF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배우들 연기도 너무 마초적으로 오버하고 있다.
김무열과 최민호는 세 주연급처럼 발성이 나쁘지 않은 대신, 너무 눈에 힘주면서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화를 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죽고 살며 싸우는 상황이기는 하지만)에서도 감정이 북받쳐 있고 겉으로 감정을 너무 드러내는데 관객이 그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다.



희한한 취향일 수 있는데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치는 것이 발성톤과 대사 속 단어 ‘띄어 읽기’ 능력인데 세 주연급 중에서는 평소에 그걸 정말 못한다고 생각하던 정우성이 제일 나을 정도라서 좀 놀랐다. 한효주의 축 떨어뜨리듯이 말을 나긋하게 던지며 읊어내려가는 대사 스타일이 평소에도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가련함까지 가미되어 더 몰입을 깨뜨린다.




심지어 원로 명품 배우(?) 허준호도 발음이 안 좋다. 그런데 허준호는 최소한 다른 세 주연급처럼 단어 띄어 읽기가 되지 않거나 음의 높낮이가 어색한 발성은 아니어서 거슬리지 않는다.

결말은 듣던 것과 달리 그리 나쁘지 않았고 결말에서 두 주연의 표정 연기는 좋았다. 말을 안 하면 연기가 어색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연기를 못 한다기보다는 원래 말투가 (내 기준엔) 어색한 배우들이라 그런 것 같다.
그래 통일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김 감독님 왜 이러신 거예요? 밀정도 긴장감 1도 없어서 내용도 잘 기억 안 나는데 이제 기획을 하고 스토리를 다 짜고 주요 에피소드를 몇 개 짠 뒤에는 대본을 외주 위탁합시다.

사실 한국 3대 명장 모두 각본과 연출을 다 해내고 있는데, 천재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혼자 이 모든 걸 다 하려다 보니 나무에서 떨어질 때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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