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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Spotlight)

진실을 외면하거나 진실 앞에 침묵하지 않는 합리성

by 랄라

[스포트라이트(Spotlight)]진실을 외면하거나 진실 앞에 침묵하지 않는 합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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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맥아담스 때문에 전부터 보고싶던 스포트라이트. 이젠 따끈따끈한 오스카 작품상에 빛나는.


✔감독: 토마스 맥카시

✔주연: 마이클 키튼, 마크 러팔로, 레이첼 맥아담스



믿고 싶지 않을 법한 일이 벌어지면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싶은 대로만 믿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다.

나약하게 진실을 믿지 않고 외면하거나 비겁하게 진실 앞에 침묵하는 것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 만큼 나쁘다.

그리고 비합리적이다.


정의나 온정 차원을 떠나 사회 내에 부당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그 피해자는 내가 될 수 있고, 그래서 부당함 앞에 침묵하지 않는 것은 내가 사는 사회가 나의 안위를 보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지극히 합리적인 자기 본위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사회 내에서 부당한 피해를 당한 자 본인보다 제3자의 항변이 더 설득력있기 때문에. 누군가 부당한 피해를 당하면 집단의 목소리로 가해자에게 항거할 수 있는 사회. 속한 사회 내에 서로 그 정도 약속된 신뢰는 있어야 나도 안전하고 편안한 것이므로.


영화 속에서 이슈가 되는 사건 자체의 무게감이 약하다는 생각이 초반부에 살짝 들어서 그런 내가 슬펐다. 미국 내에서 종교, 천주교 교구의 깨끗함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과 아동 성범죄에 대한 무게감(특히 12세 이하에 대한 성폭행은 살인에 준할 정도)이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걸 감안할 때는 좀 다르다. 은폐와 방조죄에 대한 무게감도 우리와 다르고. 나쁜 뉴스에 너무 심하게 무뎌진 느낌이다. �


영화를 보면서 전혀 비슷하진 않지만 소재가 유사한 '도가니'를 떠올렸는데, 이 영화의 미덕은 다른 비슷한 소재의 몇몇 영화들과 달리 '초반부에 사건의 피해자와 피해 정황을 생생하게(지나치게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공감을 호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굳이 피해자의 상황을 지나치게 들추고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을 보여주며, 저런 처참한 일을 당했으니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식의 감정적 주장은 하지 않는다.

대신 배운대로 옳은 일을 이어가는 언론인들의 사소한 행동과 태도, 말에 집중하며 온 마음으로 응원하게 만든다.

모두 유명배우들이지만 뛰어난 연출 덕에 배우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평범한 옆 건물 회사 아저씨들처럼 보이면서 리얼돋는 기자들은 희생정신에 불타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직업윤리에 충실하고 합리적 사상을 가진 언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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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쓰는 게 언론인입니까?"

"이런 걸 안 쓰면 언론인입니까?"


위로나 감정적 대응 대신 직업윤리에 충실함으로써 용기를 낸 피해자들에 대한 예우를 다 한다. 열심히 메모하고, 소스를 찾고, 소스의 진위여부를 파악하고, 피해자에게 어설픈 위로를 건네는 대신 이 일이 '중요한 일'임에 동의하고 정확한 문답을 통해 사람들에게 정확한 진실을 알리려 노력하고.


"사과가 몇 알 썩었다고 사과를 상자째 버릴 수는 없어요."


"바렛국장은 외부인이고 커리어를 위해 기사를 쓰는거야. 금방 떠날거고. 너는 보스톤에 계속 살아왔고 살건데 그러면 이 커뮤니티가 좀 불편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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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평범한 삶을 이어가는 일은 힘들고 어릴 때 옳다고 배운 당연한 일을 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최소한 누군가 당연한 일을 했을 때, 그가 감내했을 내적고통과 기회비용을 포기한 용기의 가치를 누구보다 알아주고 박수쳐주는 사람은 되고 싶다.


그런 용기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용기있던 적이 없을 뿐더러 진짜 용기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어느 영화에서 본 대사처럼, "그 모든 무서움을 알면서도, 그래도 하는 것이 진짜 용기"이다.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기는 커녕 세상이 험하다는 무서운 진실을 믿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


'희생하며 착하게 살자' 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살자' '약속과 합의된 신뢰를 바탕으로' 라는 것이다.

어떤 윤리를 따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자문해 볼 수 있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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