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The Favourite)

욕망하는 한 슬픔은 지속된다

by 랄라




뭐든 갖고 나면 믿을 수 없이 허망하고

내 손 안에 들어오면 별 거 아니고,

누구든 가까이서 겪어보면 속은 다 똑같은 사람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올리비아 콜맨, 엠마 스톤, 레이첼 와이즈, 니콜라스 홀트, 조 알윈





요르고스 란티모스니까

이 영화는 물론 아주 좋았지만, 내가 본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 중에서는 사실 가장 흥미롭지 않았다. 꼭 기이한 설정이 없어서라기보다는 <킬링 디어>나 <랍스터>를 볼 때만큼 흥미롭거나 정교하게 인간의 본성과 관계, 심리를 통찰하는 힘을 강하게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팽팽하게 살아있는 긴장감과 블랙 유머는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니까. 인스타그램에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올렸더니 그리스 인친이 "우리 그리스 감독 기오르고스 최고예요!"라고 한국어로 댓글을 달아주었다('기오르고스'는 ‘요르고스’ 그리스식 발음 음독이다). 그제서야 감독이 그리스 출신이라는 걸 인지했다. 남미 혹은 그리스처럼 현대 유럽에서도 비주류인 국가 출신 감독들의 활약이 요즘 헐리우드에서 엄청나다. 로컬에서 독창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세계 주류 중의 주류인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하던 아이들은 세계적 언어를 습득하며 성장하여 그들만의 유니크함을 꿈의 공장에서 마구 꽃피우는 중이다.





안하무인에 신경질적이고, 지위가 주는 우월감과 외모나 상황이 주는 열등감을 동시에 갖고 있는 영국 여왕 앤(올리비아 콜맨). 왕실 비선실세 사라(레이첼 와이즈)와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의 하녀 애비게일(엠마 스톤)은 권력을 두고 앤의 총애를 독차지하기 위해 암투를 벌인다. 암투는 혈연이고 뭐고 봐주는 거 없이 점점 잔혹해진다.





욕망하는 한 슬픔은 지속된다: 화려한 욕망의 순환고리 속에 갇혀 맴도는 인간은 태생적으로 슬픈 존재다.

영화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의 안팎을 과도한 광각 렌즈로 표현해 파노라마 사진처럼 보여준다. 탁 트였지만 갇힌 공간에서 권력 탐욕자들은 부단히 수평으로만 맴돌며 움직인다. 넓고 탁 트인 행동반경 속에 있어도 묘하게 답답하고 갇힌 기분이다. 신분이 상승하고 사랑을 얻은 것처럼 보여도 인간은 계속 벗어날 수 없는 욕망의 슬픔 속에 갇혀 맴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일 만큼,인간은 태생적으로 슬픈 존재인 걸까. 다정한 누군가의 무조건적이고 영원한 지지와 사랑에 목이 마르지만 허무한 일상에 발생하는 활기에도 목 마르다. 사람의 마음은 대개 영원하지 않고, 순수하게 욕망하는 대상인 그 사람의 마음은 다른 것을 욕망하고 있을 수도 있다.


욕망은 돌고 돈다

하루 아침에 하녀로 신분이 강등된 애비게일은 하루 아침에 사라진 권력을 다시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절대권력을 이미 갖고 있는 앤에게는 애비게일의 생기 넘치는 신체와 다정함이 욕망의 대상이다. 번뇌받이처럼 모든 것을 받아주는 사라를 가졌지만 욕망은 끝이 없다. 사라는 실세를 손에 넣었지만 권력과 사랑에 위협이 되는 애비게일의 존재를 배제하고 가진 것을 유지하려는 강력한 욕망에 휩싸인다.





하나를 가지면 다른 곳에 빈 자리가 생긴다

사랑하던 대상을 상실했거나 갖지 못하는 허무함이 인생을 피폐하게 만들고, 잊으려 눈 감고 일상을 지내오다 어느 순간 직면하면 한꺼번에 몰려오는 슬픔을 곱씹느라 침대에서 몸을 뒤챈다. 막상 어렵게 많은 것을 포기하며 손에 넣고 난 욕망의 대상은 이내 허무하게 느껴진다. 내가 그렇게 원하던 것이 정말 이것일까?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을 갖지 못한 채 남이 욕망하는 것을 당연하게 누리는 삶이 변화없이 이어지는 삶, 욕망은 그래서 돌고 돈다. 하나를 가지면 빈 공간이 다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빈 자리가 생긴다. 하나를 채우면 하나를 갖기 위해 포기한 것의 빈 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정작 분투 끝에 욕망하는 것을 갖게 된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한 내 것이라는 보장은 없으며, 지나간 상실의 슬픔이 가시지도 않는다. 인간은 끝없이 무언가를 욕망하고 가지고 나면 다른 것을 욕망하거나 가지기 위해 잃은 것에 대해 슬퍼한다. 인간이 가지고 가야 할 일정량의 슬픔은 원하던 것을 가진다고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뭐든 갖고 나면 믿을 수 없이 허망하고

내 손 안에 들어오면 별 거 아니고,

누구든 가까이서 겪어보면 속은 다 똑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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