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하탄 살인사건

긴장감이 부부 사이에 미치는 영향

by 랄라


디 앨런의 1993년작, 맨해튼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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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품은 중년 로맨스

이 영화의 장르 분류는 '호러'로 되어 있다.

'살인'이라는 큰 사건이 발생하고, 미스터리를 따라가는 구도를 가지고 있지만

영화가 내내 품고 있는 주제는 '부부'이다.


굉장히 신선한 포맷이다.

1993년 영화인데도!

게다가 화면이 뭔가 모르게 되려 요즘 감성이다.

사랑, 익숙함, 권태, 치정 이런 것은 우디 앨런이 현재까지도 꾸준히 관심 갖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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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마비인가 살해인가


캐롤(다이앤 키튼)과 래리(우디 앨런)의 생활은 얼핏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뉴욕 고층의 고급 아파트에서 안정적인 노년의 삶을 꾸리고 있는 부부. 내가 아직 여자로 보이냐는 질문에 그럼 여자지 남자냐고 대답하는 부부의 대화는 일상 그 자체다. 부부는 어느 날 우연히 이웃집 노부부와 대화 당한(?) 뒤, 바로 다음 날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아파트에서 실려 나가는 노부인(섹스 앤 더 시티에서 미란다네 집 하우스키퍼 할머니 역할-'마그다'-을 맡았던 배우이다)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다. 캐롤은 홀로 남은 노신사의 모습이 지나치게 밝은 것을 보고 부인이 살해당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이 과정이 정말 코미디인데, 우디 앨런은 다이앤 키튼이 자신이 쓴 대본보다 훨씬 코미디를 눈부시게 잘 살렸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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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앤 키튼의 영화 속 의상, 아파트, 20세기 특유의 화면 때깔, 모든 것이 지금 시대에 보면 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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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코스프레를 하던 캐롤은 결국 노신사의 집까지 잠입하기에 이른다. 노신사의 집을 뒤지던 중 노신사가 귀가를 하자, 침대 아래 숨어 노신사의 통화를 엿듣기도 한다.



긴장감이 부부 사이에 미치는 영향


'갑작스러운 이웃 노부인의 석연치 않은 죽음'이라는 삶의 사건은 부부에게 급격한 긴장감을 가져다준다. 관계가 익숙해진다는 것은 관계 내부와 외부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상대의 반응이나 흘러갈 플로우가 예측이 다 되어 당황할 일이 없다는 것일 게다. 뇌의 새로운 부분을 쓸 계기가 되는 새로운 자극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매일매일 익숙한 일만 겪고 있는 부부에게 외부의 새로운 사건이 터지면서, 주변의 관계까지 재정립이 되기 시작한다. 캐롤은 심장마비가 아니라 살인 사건일 것이라고 굳게 믿는 추리(?)를 계속 부정하고 핀잔주는 남편 래리 대신, 그 추리에 힘을 실어주는 친구 테드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래리는 테드에게 질투를 느끼게 되고, 오래된 부부의 관계는 새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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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이었던 장면. 래리는 고대하며 기다리던 연극을 보러 가기 전 식사를 준비하고, 캐롤은 그딴 거 관심 없다는 듯 살인사건만 파면서 테드와 통화한다.



캐롤의 직감: 시험문제를 풀 때에는 가장 먼저 고른 답이 맞다


이 영화가 재미있었던 건, 사실 캐롤의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였던 캐롤의 추리가 사실은 맞았다는 점이다. 설마 저렇게 단순히 흘러가겠어 하며 온갖 상상과 추측을 함께 하면서 지켜보다가, 결국은 하나하나 캐롤의 추리가 맞아떨어지자 되려 허를 찔리는 기분이기도 하고, 그런 단순한 얘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 나가는 입담 좋은 이야기꾼 우디 앨런에게도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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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여자들은 직감이나 육감이라는 것이 발달했다고 한다. 사실 직감은 미신이나 느낌 같은 말도 안 되는 주관적 감정이 아니다. 나는 직감이나 육감, 어떤 사건을 접했을 때 그 사람의 본능적 반응이 사실 그동안 살면서 저장된 경험 데이터를 무의식중에 빠르게 머릿속에서 연산하여 내린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나 직관은 사실 다 알고리즘이다. 인류가 처음 생겨나 현재까지 살아오며 받았던 외부 위협들 속에서,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는 호모 사피엔스들만 남겨지고 남겨지면서 자연선택되어 진화해 온 현생 인류가 어떤 사건을 접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곧 살아남기 위해 가장 유리한 선택일 것이라는 거다.


시험 문제를 풀면서 여러 번 검토를 하면 종종, 문제를 다시 볼수록 오지선다 중 두 가지 선택지가 헛갈릴 때가 있다. 그럴 때 맨 처음 고른 답을 지우고 다른 답으로 수정하면, 사실 처음 고른 답이 정답인 경우가 많다. 시험문제를 보자마자 고른 답이 본능적 직관으로 내린 결론이기 때문이다. 눈 깜짝할 사이 머릿속 저장 데이터를 돌려 도출한 결론.


우리는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하며 자연선택되며 대를 거듭해온, 지구상에 생존하던 어떤 호모사피엔스보다 현시대 생존에 최적으로 진화된 존재이므로 스스로의 직관을 좀 믿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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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이 부부 사이에 미치는 영향. 긴장 정도가 아니라 살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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