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는가?
한국에서 유난히 사랑받아
트위터 프로필 소개란에 "조동필"이라고도 적혀 있다는,
조던 필의 신작 <어스>.
무서운가?
안 무섭다. 평소 잘 놀라고 무서운 영화 못 보는 사람 기준으로는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평소 잘 안 놀라고 무서운 거 잘 보는 나는 안 무서웠다. 나는 <유전>을 보고 무서워서 한 달 넘게 밤에 불을 켜고 잤으니, <유전>이 안 무서웠으면 무난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무서워하는 종류가 다르기는 하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사바하>보다도 안 무서웠다. 다만 잘 놀라고 놀라게 하는 류 공포영화에 특히 취약하다면 옆좌석에 의지할 사람을 구해놓고 보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면의 근원적 공포
:내가 언제든 복제 가능하고 특별하지 않은 소모품일 뿐이라면, 무엇이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는가?
다만 감독이, 사람이 학습하지 않아도(공포영화를 보거나 귀신 이야기를 들어서 생기는 공포) 갖고 있는 동물적, 근원적 공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은 영화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거울의 방에 들어간 어린 시절의 애들레이드. 우리는 어린 시절,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단 하나뿐인 고유한 존재임을 인식함으로써 자아를 갖게 되는데, 왜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나 하나일까,라는 의문도 같이 품게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은 '혹시 이 지구 반대편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과 의문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우리는 자아가 생기게 되면서 '나는 나를 스스로 볼 수 없지만', 거울 안에 비치면서 나와 똑같이 대칭으로 행동하는 저 사람은 나의 투영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거울이라는 존재를 학습한 뒤부터는 자기도 모르게 상상하게 된다. '내가 거울을 등지고 있는데, 거울이 나와 대칭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진짜 거울도 같은 방향으로 뒤돌아서 나를 노려보고 있으면?' 혹은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려고 고개를 숙였는데, 세면대 거울 속의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내가 세수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면? 도플갱어나 거울을 무서워하는 건 아마,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게 '자아'를 가지고 있고,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내가 실은 언제든 복제 가능하거나 특별하지 않은 소모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삶의 의미를 크게 잃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이슨이 나중에 자신의 도플 플루토의 행동을 통제하는 몸짓도 우리가 거울 앞에 서서 거울을 처음 보았을 때 하는 행동과 비슷하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애정의 확장판인 가족에 대한 애정. 어느 날 내 가족과 완벽하게 똑같은 사람들이 내 앞에 나타나 선다면, 무엇이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는가? 우리(Us)는 어떻게 묶인 우리인가? 나와 내 도플이 하나의 세트인 우리인가 우리 가족과 대칭인 저들과 우리는 각기 각자의 우리인가.
책상 사이사이를 발레 하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니는 레드(애들레이드의 복제인간)의 몸짓 또한 공포의 대상이다. 소리 없이 빠른 움직임, 내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꿰고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겟 아웃 감독 작품
조던 필 감독 작품은 두 작품밖에 보지 않았지만, 다 좋은데, 떡밥 회수 시점이 너무 영화의 후반부에 존재한다. 겟 아웃 때도 미스터리가 너무 중반부까지 와서 아 이젠 그만 늘어놓고 풀어나가, 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이 분과 나는 그 속도감 부분은 안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막상 풀리기 시작하자(막상 풀릴 때는 너무 쉽게 애들레이드 복제인 레드의 입으로 바로 설명) 겟 아웃 때와는 달리 '아 겨우? 뭐야......' 싶었는데, 뻔하다면 뻔하다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반전에서 다시 훌륭한 이야기라고 느끼며 영화관을 나왔다.
아무튼 겟 아웃 때도 그랬지만, 너무 미스터리 속에서 속수무책 당하는 시간이 길어서 "아 이젠 정말 뭐 궁금하지도 않다......" 싶을 때쯤에야, 떡밥을 회수하기 시작하는 감독.
왓챠에서 누군가 조던 필의 인터뷰를 발췌해 적어둔 것을 보았는데, "사람들이 언제 인종 이슈 얘기가 나오나 기다리다가 끝내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싶었다"라고 한다.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라면 인종 이슈를 다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편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에 끝까지 인종차별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꾼 조던 필
무서운 이야기, 초현실적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람 내면의 근원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들. 그래서 스티븐 킹, 나이트 샤말란, 그리고 이 감독 조던 필을 좋아하는데, 자신이 독창적으로 만든 세계관과 뻥을 계속 창의적으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어디서도 못 들어본 새로운 설정, 놀랍거나 무서운, 뻥인데 아주 그럴듯한 뻥 이야기. 내가 영화나 책을 볼 때 제일 흥미로워 하는 요소인 것 같다. 미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스터리 해저 터널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전개의 예측이 어려운 편은 아니지만, 잔가지들이 흥미롭다.
비유
여러 가지 비유가 나온다고 하는데, 다들 어떻게 보자마자 그렇게 비유를 눈치채는지 모르겠다. 나는 11:11가 쌍둥이를 상징한다거나, 토끼가 다산을 상징한다거나 하는 부분은 아예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해변에서 날아온 프리스비가 돗자리의 파란 동그라미에 정확히 떨어지는 부분에서는 뭐를 말하고 싶은 거지? 하고 생각했지만 알 수 없었다. 가위를 들고 있는 부분에서는 아, 유전자가위! 하고 생각하기는 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내가 좋아하는 유전공학 관련 SF 영화 <가타카>에도 나오는데, 염기서열 중 문제가 있는 부분을 잘라내어 다른 것으로 교체하는 교정을 할 때 쓰인다. 교정할 부위의 DNA를 절단하는 제한효소. 유전자에 인공적인 행동을 가했다는 점에서 가위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하세계는 폐쇄되었는데, 그 많은 공산품(가위, 빨간 옷)은 어디서 갑자기 난 것인가? 도플들은 인지가 조금 부족하여 위 세계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데 누가 그런 것을 제조할 여유와 능력이 있었는가? 그냥 주제의식을 말하기 위한 설정이고 영화 감상하는 데 큰 방해가 되지 않으니 그냥 넘어가야겠지.
배우들
아빠 게이브는 거의 뭐 개그맨으로 나오는데, 호러 영화 속에서 계속 개그를 치는 설정이 나는 신선하고 세련되어서 좋았다. 인터넷 아니라 아우터넷이라는 둥의 한국 아재 개그나 하고, 엄마가 잡혀가도 엄마는 알아서 할 거라고 하고, 애들이 사라져도 적극적으로 찾지도 않고, 좀 과장되어 있지만 아빠들의 무능함과 열등감(함께 휴가 간 타일러 가문에 은근한 열등감을 품고 있는데, 목숨이 위태로운 와중에도 겁나고 귀찮아서 밖에 안 나가려다가 타일러네 새로 뽑은 차 타고 간다니까 나간다)을 잘 보여주어서 웃겼다. 타일러 가의 아버지조차, 밖에 뭐 있나 체크하고 오라니까 말도 안 듣고.
타일러 가족의 두 쌍둥이 딸이 예뻐서 검색해보았더니, 시트콤 <프렌즈>에서 레이첼(제니퍼 애니스톤) 딸로 나오던 엠마가 이렇게 다 자란 거였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아기 역할은 보통 쌍둥이로 캐스팅하여, 번갈아 촬영하면서 최대한 아기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한다고 한다. 엠마 쌍둥이 많이 컸구나.
영혼은 복제하지 못한다?
복제들과 영혼을 공유한다는 설정은 얼핏 구멍이 있고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많지만) 그냥 신선했다. 사실 근데 영혼이라는 것은 내 살아있는 신체가 만들어낸 허상 아닌가? '나의 하나 뿐이고 특별한 자아'는 사실 허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현대 과학기술이 밝혀내고 있는 부분 아닌가.
나와 똑같은 뇌와 세포를 가진 존재가 전혀 다른 세상에 태어난다면, 어떻게 행동하고 선택하며 어떤 삶을 살지 늘 궁금하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