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사피엔스(Sapiens)

"한 사피엔스가 다른 사피엔스에게"

by 랄라

“From one sapiens to another”

한 놈의 사피엔스가 딴 놈의 사피엔스에게.


아, 아니


한 사피엔스가 다른 사피엔스에게.


이 머리글이 따뜻하고 아름답다.

첫 표지를 넘기자마자 이 책에 반하게 한 단 한 줄.







장기하가 “2018년에 접한 어떤 콘텐츠 중에서도 가장 좋았다”라고 인스타그램에서 극찬하기에 읽어본 책이다.

첫 표지를 넘기자마자 나온 친필의 이 메시지부터 아름다워 반했고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초반부는 유머러스하고 쉽게 쓰여 있어 술술 읽히고 중반부부터 살짝 속도가 떨어지게 되나 끝까지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미지 출처: 가수 장기하 인스타그램


이 책을 파는 사람들은 마크 주커버그가 칭찬했다느니, 국내 CEO 누가 좋아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들로 계속 책의 권위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나는 국내 CEO들이 극찬했다는 책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스티브 잡스의 "Stay hungry, stay foolish"같은 연설도 "노오오오오력"으로 해석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렇다. 저건 우직하게 한 우물 파면서 계속 가라는 소리가 아니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 청년 시절의 생기와 열정, 직관, 영감, 그런 단어들과 긴밀한 연설이지 우직하게 지금 하던 거 열심히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심지어 우리 회사 회장님도 유발 하라리를 좋아한다고 하시는데, 80세 다 되어 가시는 할아버지가 참 대단하시다, 그 점은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가수 장기하가 추천해서 읽었다.


<사피엔스>는 국내에서 인문 베스트셀러가 된 책 중 드물게 작가가 뛰어난 직관과 철학을 갖고 쓴 책이다. 무명의 역사학자이던 유발 하라리를 단숨에 세계의 유명인사로 만든, 선풍적 인기 저서.




인류는 앤트맨...... 개미처럼 자기 몸집의 몇 배나 되는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물리적 힘도 없고, 날카로운 발톱도 없으며, 하늘을 날 수도 없다. 더위와 추위에 약하고 자외선에도 한없이 약하며 스트레스에도 취약하다. 다른 동물에 비해 약한 신체를 가진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지구를 지배하고 군림하게 되었는가? '인지 혁명'이 현재 인류의 역사를 만들었다. 인과관계를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자아'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인간은 허구의 개념을 만들고 그것을 자신이 속한 사회의 구성원과 합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물론 거기까지 가는 동안 직립보행과 그로 인한 엄지 손가락의 진화, 그로 인한 도구 사용과 불의 발견, 그리고 독보적으로 발달한 언어와 문자로 지식 저장, 등 무수하게 다른 종과 구분되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역사가 있기는 하다.


이후 사피엔스는 농업혁명이라는 우연한 사기극에 휘말린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우리가 지금 사무실에 앉아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건 다 우리 조상이 재수 없게 농업이라는 우연한 미끼를 잘못 물었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는 건물의 맨 위층에 나보다 높은 계급의 사장님이 앉아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농업혁명 때문이다. 농업혁명으로 수렵에 최적화된 사피엔스의 신체는 어울리지 않게 허리를 숙이고 씨앗을 심으며 해가 뜨면 장시간 동안 논밭을 가꾸어야 했고, 식량을 축적하고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계급이 생겼다.


이후 종교가 생기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현존 인류로 오기까지, 우리 조상은 이념에 따른 통합과 전쟁을 반복해왔다. 지구 상의 어떤 동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가상의 존재인 신이나, 사회가 따라야 할 이념 같은 비물질적인 어떤 것을 가지고 서로 싸우며 내 편 네 편을 가르지 않았다. 원숭이는 바나나를 가지고 싸우고 오랑우탄은 마음에 드는 배우자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겠지. 눈에 보이는 현물을 놓고 말이다. 인류는 유일하게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기독교니 이슬람이니 하는 비물질적인 상상의 것을 만들어 합의하고(모두가 믿는다), 그로 인한 통합과 협력, 지식의 축적을 원동력으로 여기까지 발전해온 존재. 우리는 마침내 스스로를 멸종시킬 수도 있는 무기를 개발했으며, 이 행성의 대기권을 벗어나 달 표면에 발을 딛기까지 했다.




서평들을 보다 보면 유발 하라리에 대해 제국주의자라는 비난이 의외로 많아서, 정말 조금도 그렇게 느끼지 못한 나는 조금 놀랐다.

<사피엔스>는 어떤 굳어진 관점이나 이념에 편향되지 않은 채 쉽고 담백하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생생한 책이다. 쉬운 예시를 들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할 뿐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한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신선하다. 똑똑하고, 직관이 발달한, 입담이 좋은 아저씨다. 인류에 대한 애정도 많이 느껴진다.

결국은 인류가 그러한 과거를 지나왔으니, 우리가 통합할 수 있었던 과거의 이력을 살려 전 지구적 인류 통합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상적인 결론이다. 물론 그런 일은 인류가 멸종할 때까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저자도 생각하는 듯하다.


저자가 뻔한 지식의 짜집기만 늘어놓는다고 하는 의견도 가끔 있지만 사실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책들에서 그와 정확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방대한 양의 지식은 누구나 찾아보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 정보의 진위를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하며, 오늘의 사실이 내일의 거짓말이 될 정도로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무지와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게 유발 하라리가 누누이 강조하는 부분이다.


저자의 의도 자체가 방대한 시공간을 아우르는 역사와 전문 지식을 젠체하며 ‘나열하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 쉬운 예시를 들어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고 토론의 화두를 던지는 것이기에, 부족한 나에게는 저자가 내 눈높이 맞춤형으로 쉽게 번역하여 던진 질문들 자체가 충분히 소중한 정보가 되었다.




아침 9시에 정신 차리고 보면 이미 나도 모르게 회사에 앉아 있는 느낌일 정도로 습관적 자동 출근 기계인간 연차여도, 주말이면 DNA에 적힌 호모 사피엔스 본연의 기질로 원복 되는지 월요일은 힘들다. 이 팩력배 아저씨에 따르면 실수로 최초 농경 정착한 인류 때문에 우리가 아직도 유전적 기질을 무시한 채 이러고 산다는데 그 시대에 거대한 들짐승으로 태어나서 농사지은 거 다 훔쳐먹고 농경의 꿈을 짓밟아줄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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