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재료를 다듬고, 섞고, 불의 온도를 맞추고,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by 랄라


"제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은 왜 소중한가. 영양가 있고 깨끗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섭생적 의미도 있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활을 사랑하고 현실을 긍정하는 심성이 인격 안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재료를 다듬고, 섞고, 불의 온도를 맞추고,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인간도 함께 익어간다. (중략)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것은, 경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상상력이 작동되어야 한다. 이 맛과 저 맛을 섞어서 제3의 맛을 만들어낼 때, 먹어보지 않은 맛을 미리 상상하는 정신의 힘이 작동되므로 요리는 마음의 힘을 키워준다고......"

-김훈, <연필로 쓰기> 1부 중 ‘꼰대는 말한다’에서 발췌



대지와 초록잎을 청량하게 적시는 비, 빗길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소녀의 뒷모습. 그다지 여리여리해 보이지 않으며 현대 사회 미인 기준에 착 들어맞지 않아 보이는 여주인공은 억척스럽게 농부 수건과 목 늘어난 티셔츠 등을 걸치고 진짜 민낯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밭일을 한다. 우직하게 계획을 세워 작물을 심고 시간과 계절이 순환하면 수확하고, 그렇게 자연에서 온 텃밭의 재료들로 묵묵하게 요리를 해내어 먹는다.



무언가 고민을 품고 고향에 돌아온 여주인공 이치코. 이 영화를 통해서 본 농사와 요리는 시간과 내 내면과의 싸움일 것만 같다. 처음 농촌에 온 직후의 하루하루 노동은 도무지 끝이 없다. 이것이 해결되었다 싶으면 또 해결해야할 일이 생긴다. 벌레, 습기, 야생동물, 날씨로 인한 농작물 수확 실패 등. 반복된 하루하루 고민의 소소함은 끝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겨 차근히 해결해나가고, 말없이 반복되는 작업을 하는 동안 엄마, 친구, 흘러간 인연의 기억과 마주한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활을 사랑하고 현실을 긍정하는 심성이 인격 안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재료를 다듬고, 섞고, 불의 온도를 맞추고,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인간도 함께 익어간다.'라고 한 김훈 작가의 말은 틀리지 않다.


일본을 여행할 때 매번 느낀 점은 작은 일에도 사람들이 성실하고 꼼꼼하게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여행 중에 본 일본은 매우 단면일 테지만. 작은 일상의 요소들은 의외로 우리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작은 것을 무시하고 내버려두면 삶의 많은 부분을 놓칠 수 있다.

그렇게 특유의 근면함을 잊지 않은 채 심고 거두고, 하룻밤을 재워두고 다음 날 요리하여 먹기까지의 느릿느릿한 시간을 보내는 과정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요리를 해보면 알게 된다. 어떤 작은 요소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맛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 정확하게 재료를 넣어야 하는 타이밍과, 재료 특성에 따라 지켜야 할 어떤 번거로움. 작은 일이라고 무시하고 생략하거나 대충 하면 기대했던 맛과 질감은 나오지 않는다. 작은 스킵 하나가 결과물을 아예 망쳐버리기도 한다.

이치코는 자신의 문제로부터 도망쳐온 이곳에서, 하루의 노동과 고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뽑아내어야 할 잡초와 골라내어야 할 쭉정이 하나, 재워두어야 할 식재료 하나하나에 성실하다. 처음에 고민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시작했던 것 같은 고된 노동은 비로소 점차 내면을 향한다.


딱히 대사를 통한 설명 없이도 피하고 싶은 고민을 간직한 주인공의 마음이 보다 간접적으로 잘 느껴지게 전달되었던 느낌이다. 한상 차려 먹기까지 하루하루 정성 어린 노동의 묘사와 흘러가는 자연과의 어울림을 부산스럽지 않게 보여주는 차근함이 좋았다. 다른 사람의 평가나 잣대에서 벗어나 내면으로 파고들기 위해 시골로 돌아왔다는 취지이니만큼, 영화 자체도 자연과 그 속 인물의 내면에 집중한 원작이 한국 리메이크 버전보다 조금 더 좋았다. 그렇게 돌아온 시골에서도 끊임없이 안팎으로 멈추지 않고 생기는 작은 고민들이 공감되고. 한 번 다 감상하고 난 뒤, 다른 일을 하면서 백색 소음처럼 틀어두어도 좋았다.



가장 기억에 남던, 엄마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리메이크.


일본 버전이 목 늘어난 티셔츠에 손때 묻은 주방, 완벽한 민낯의 느낌이라면(아니겠지만) 한국 버전은 최대한 유기농 느낌 나게 정성 들여 꾸민 CF 화면 같은 느낌이었다. 인간관계에도 친구들 사이의 장난 어린 대사에도, 시골의 삶이라는 것에도 원작보단 msg가 좀 더 가미된 느낌. 그래서 객관적으로 좀 덜 지루하다는 미덕은 있다.

쓸데없는 디테일에 강한 일본 원작을 먼저 봐서 그런지 한국 버전은 그릇도 부엌도 너무 희고 새것이며 사서 바로 비닐 뜯어 입은 것 같은 핏의 새 옷들이 약간 취지와 안 맞는 느낌이라, 원작에 더 맘이 감. 원작과는 조금 다른 취지의 예쁨이다.

영화에서조차 생활의 보풀이 가득한 걸 뭐하러 보냐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국 버전을 보면 좋을 것 같다. 최소한 뷰러로 속눈썹 컬링 정도는 하고 카메라 앞에 선 김태리와 이상한 옷 입고 지저분한 앞머리로 땀 뻘뻘 흘리며 밭일하는 하시모토 아이의 차이가 곧 두 영화의 차이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한국 리메이크까지 보고 나니, 보는 사람도 덩달아 피곤할 정도로 밭에서 하루 종일 시골의 노동에 바쁜 일본 원작에 개인적으로 좀 더 마음이 많이 간다. 잎사귀 한 장 한 장, 팥 한 알 한 알까지 농부의 중장기 계획과 정성이 가득하다. 친구와 다투고 나서도 부산스럽지 않게 다시 겸연쩍이 웃으며 밥상 앞에 마주 앉아 역할을 나누고 맛을 나누는 원작이 훨씬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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