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ke for life
매주 산에 다닌 지 8년이 다 되어 간다. 사람들은 매주 산에 가는 것도 놀라워하지만 왜 그렇게 열심히 산행을 하는지 더 궁금해한다. 나에게는 산을 갈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6년 전의 나는 지금과 달리 직장 생활을 하며 오직 앞만 보며 살고 있었다.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 나를 채찍질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늘 같은 자리에 머물 뿐 성취나 성장한다는 느낌은 잘 받지 못했다. 그러다 심각한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 그럼에도 채찍질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타 회사에서 업무 미팅을 할 때였다. 미팅에 참여한 한 담당자의 신체와 얼굴이 유난히 건강해 보여 눈에 띄었다. 나는 그에게 업무 이야기를 마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운동하세요?”
“네 운동도 열심히 하고 하이킹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그런데 혹시 하이킹 한 번 해보시겠어요?”
갑작스러운 권유에 조금 당황했지만, 나는 내게 하이킹을 권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체력이 좋아지면 멘탈이 좋아져요!”
우선 나의 상태를 꽤 뚫는 듯한 말에 놀랐다. ‘내 다크서클을 보고 하는 소리인가?’ ‘내 거친 피부를 보고 하는 소리인가?’ 무언가 들킨 것 같은 기분도 잠시, 정신력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내 믿음과 정반대인 그의 말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가 센스 있게 재빨리 말을 바꿔 나의 고민을 없애 주었다.
“저와 하이킹 한번같이 가시죠!”
첫 산행의 순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처음 입는 등산복이 낯설고 조금은 불편했다. 등산객 대부분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는 점은 나 스스로를 이방인처럼 느끼게 했다. 잔뜩 위축돼 쭈뼛쭈뼛 산길을 오르는데 이번에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내게 한마디씩 건넨다. “젊은 사람이 무슨 일로?”, “젊은 사람이 여길 왜 왔을까”, “젊음이 좋긴 좋다.” 당시 나는 30대 중반 나이로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즉 대중적으로 매력적이지 못한 나이임을 생생히 깨닫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였을까. 기분이 묘하게 좋아짐을 느꼈다. 물론 지금은 나이와 자신감을 연결 짓지 않는다.
정상 부근에 다다르자 이제는 또 어른들이 사탕과 초콜릿을 계속 손에 쥐여 준다. 기특하고 대단하단다. 평소 일하면서 잘 듣지 못한 인정과 칭찬을 폭발적으로 받은 것이다. 예감이 좋았다. 곧바로 산에 오르는 것은 무언가 내가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겠다는 설렘이 들기 시작했다. 후에 알았지만, 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앞으로 걷고 오르는 것만으로도 미래로 향해간다는 진전의 감각을 느낀다. 아마도 어른들은 일찌감치 산행을 통해서 이 사실을 잘 알고 미리 내게 응원을 해 준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어색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좀처럼 짓지 않는 미소를 머금으며 바위에 앉아 레고 블록이 되어 버린 도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나를 괴롭혔던 도시가 아름답게 보였다. 바짓단에 잔뜩 묻어 있는 노란 흙먼지도 무심하게 툭툭 털어냈다. 나의 옷차림이 더는 불편하지 않았고, 마음껏 산바람을 맞고 햇볕을 쬐며 처음으로 온전하게 쉬는 시간을 허락했다.
나의 하이킹 라이프는 이렇게 알 수 없는 기쁨과 설렘을 기대하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는 이유가 아닐까. 지금도 매번 느끼지만 산행의 묘미는 시간, 장소, 사람 등 모든 것에 따라서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예측이 불가능해 과정을 즐기게 하는 점은 같은 산을 몇 번씩 가더라도 바뀌지 않는다.
나는 본격적으로 매 주말 한 번씩 산으로 향했다. 피곤해 잠만 자던 주말이 완전히 바뀌었음은 물론이고, 매주 월요일을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실제로 체력이 좋아지면서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진다는 것은 모든 나의 가능성을 느끼는 것과 같다는데, 비로소 ‘체력이 좋아지면 멘탈이 좋아진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진심으로 하이킹을 삶에 들여온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로도 나는 계속 의도적으로 전국 곳곳의 산을 다니며 체력을 시험하고 산 지형을 파악했다. 탐험가가 되어 산세계와 자연세계를 탐구하는 즐거움이 일상에 더해지니 자연스럽게 일과 일상의 균형도 어느 정도 맞추어졌다. 특히, 일에만 몰두해야 일을 잘하게 된다는 믿음은 완전히 깨졌다.
한 번은 혼자 종주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종주는 산의 끝에서 끝을 한 번에 완주하는 것으로 하이커들 사이에서 흔히 가지는 소망이다. 하지만 완주와 기록에 의미를 둘 정도로 쉽지 않은 도전이다. 나는 국내 3대 종주 중 하나인 지리산 화대종주(약 47km)를 선택하였고, 용산역에서 막차 기차를 타고 새벽 3시에 구례구역에 도착해 또다시 버스를 타고 종주 시작 지점인 화엄사 부근 주차장에 홀로 내려 산에 오를 준비를 할 때였다. 갑자기 두려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 개, 고양이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나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나는 이때 알았다. 어둠에도 단계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산속 어둠은 마지막 단계라는 것을. 즉, 칠흑 같은 어둠이란 정말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음을 뜻하고 눈을 감고 있는 것과 같다. 종교는 없지만 신께 기도했다. 어둠을 뚫고 지나갈 용기를 달라고.
손전등 하나에 의존해 어두운 산길에 들어서니 온몸의 감각이 곤두섰다. 대나무가 귀신처럼 보이고 계곡물소리에 놀라고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고 손전등에 비친 내 손가락에 기겁했다. 내 심장소리를 그렇게 크게 들어본 것도 처음이다. 모든 것이 무서웠다. 순간 주저앉았다. 바들바들 떨던 몸을 최대한 작게 모아 웅크리고 안은 채 생각에 잠겼다. ‘이 두려움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떨군 고개 아래로 엄청나게 굵직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호기롭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작은 아이 하나가 울고 있었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눈물을 닦고 침을 꿀꺽 한번 삼키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다 우연히 몸을 일으키며 하늘을 보게 되었는데, 눈앞에 잊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찬란하게 빛을 내는 별들이 까만 밤하늘에 빼곡히 들어차 세상을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내 몸 깊은 곳으로부터 “와” 하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때 그 별들은 지금도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정말이지 너무도 아름답고 따뜻하고 마치 위로를 건네듯 빛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신기하게도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고작 내가 한 것이 무서운 상상 따위라니. 이내 곧 공포, 두려움 모두 내가 만든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어둠이 도리어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하듯 안정된 상태로 계속 산을 올랐다. 어느새 해도 밝았다. 완주를 결정짓는 끝 지점에 도달했을 때에는 타인이 아닌 내가 나를 인정해 주고 있었다. 경직된 근육들은 부드러워지고. 분명 몸은 지쳐 있는데 생기가 돌았다. 국내에서 가장 큰 산인 지리산을 횡단했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용기도 솟구쳤다. 이것이 종주 완주의 힘일까? 맞다! 산길은 그 자체로 몸과 마음에 힘을 불어넣는다!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아웃도어 교육(자연속에서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앞서 내가 겪은 일들도 아웃도어 교육의 효과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아웃도어 교육에서는 자연을-개인이 안정감을 느끼는 심리적 공간인 안주 영역(Comfort Zone)을 벗어난-도전 영역(Challenge Zone)으로 바라본다. 이 도전 영역은 필연적으로 심리적 불안과 긴장 및 새로운 시도를 요구하지만, 반복적으로 이 영역을 드나들게 되면 결국 안주영역이 확장되어 자기 믿음이 더욱 강해지고 새로운 성장, 새로운 세계관을 가져 나가는데 큰 도움을 받는다고 되어 있다.
나는 다양하고 수많은 하이킹 경험을 통해서 자연 공간을 이해하고 내가 어떠한 것에 기쁨을 느끼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그것이 어떻게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직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이것은 모두 자기 계발 전문가의 지도나 심리 상담 또는 공부를 통해서 안 것이 아니라 공짜로 누리는 자연 덕분에 알게 되었다. 내가 한 일은 약간의 의지를 발휘해 몸을 움직인 것이 전부였다. 흥미로운 점이 또 있다. 하이킹은 여느 운동과 다르게 꾸준함의 원동력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에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반가운 사실인가! 반드시 정상에 가야 한다는 ‘선입견’을 버리면 누구든 매주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자연은 사람 관계와 달리 대가 없이 정서적 유대와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자연의 매력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산은 사람을 가려서 입장시키지도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똑같은 환경이 제공되기에 산은 원칙적으로 가장 평등한 공간이다. 그렇기에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산을 사랑하고 하이킹하는 삶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