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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Sep 12. 2021

찬바람불 때는 어묵이지요.

어묵 예찬

퇴근길이다. 배불리 먹은 점심 덕에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지금 뭔가 먹어두지 않으면 이따 저녁에 나의 식습관으로 볼 때 때늦은 시간 폭식을 할 것이 분명하다. 무언가로 배를 채워야 했다. 그럴 때 나는 거의 매번 천 원짜리 오뎅 두 개와 종이컵 한 컵 분량의 오뎅 국물을 마신다.


오뎅 한 개는 부족하다. 나는 씹는 느낌을 좋아한다. 게다가 집 안에 음식물을 한 번에 많이 넣어서 입 안의 근육을 최대한 많이 움직여 우걱우걱 씹고 목으로 넘기는 그 느낌이 좋다. 오뎅 한 개라면 이 느낌부족하다. 입 안과 목안에서  무엇을 먹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반드시 두 개는 먹어야 한다.


세 개는 조금 과하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은 날이면 세 개정도 먹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보통날은 두 개면 충분하다. 세 개를 먹는다면 오뎅국물 한 그릇까지 더한다면 위가 조금 부담스럽다. 몸이 출렁인다는 기분마저 든다. 퇴근길에 사 먹는 두 개의 오뎅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적당한 저녁 요깃거리가 되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요맘때부터 국물에 한참 담겨 약간은 불은 나무 꼬지에 꿰여 비스듬히 누워있는 오뎅은 영혼의 추위까지 녹여주는 그런 따스함과 푸근함이 있다. 겨울 오뎅은 에스키모 이글루 속의 모닥불이요, 겨울 교실 난로 위 데워진 양은 도시락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할머니가 돈 천 원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시장 가서 가마보꼬 하나 사와라. 뜨끈한 가마보꼬가 먹고 싶네."

나는 가마보꼬가 뭔지 몰라서 돈을 쥐고서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퇴근하신 아버지 말씀이 오뎅같은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가마보꼬는 없고 내일 퇴근길에 오뎅을 많이 사다 준다며 할머니를 위로했다. 할머니는 아버지 말씀에 "왜 가마보꼬가 없을꼬, 그거 한번 먹으면 좋겠구먼은."라며 섭섭해하였다. 나는 오뎅을 떠올릴때면 할머니의 그 울 것 같던 축 처진 눈매와 아쉬움에 입맛 다시던 입모양을 한 할머니 얼굴이 먼저 생각난다.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였다. 시장 골목 입구 포장마차에서 친구랑 오뎅을 먹고 있었다. 그때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남자 친구 한 명이 "아, 춥다."라고 말하여 포장마차로 뛰어들었다. 빨간 플라스틱 국자에 오뎅 국물을 한 바가지 가득 푸더니 뜨거운 국물을 후후거리며 금세 마셔댔다. 그러기를 한번 더 하더니 "아줌마, 잘 먹고 갑니다."라며 그대로 포장마차를 뛰어나갔다. 나는 오뎅도 안 먹고 돈도 안 내고 국물만 두 그룻 당당하게 마시고 나간 친구가 웃기면서도 그 자신감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포장마차 아줌마는 "그놈 배짱 한번 두둑하네." 하며 기분 나쁘지 않은 웃음을 지었다.


어릴 때 잡채는 잔칫날에만 먹는 음식이었다. 특히 고기가 들어가는 잡채를 먹는 날은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이나 되어야 했다. 아버지 생신이나 오빠 생일에 먹는 잡채에는 돼지고기 대신 오뎅을 넣었다. 오뎅을 얇게 채를 썰어 당면과 다른 야채들과 함께 볶아 한데 무쳤다. 원래 맛있는 음식이지만 오뎅만 들어가도 식감이 돼지고기 못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잡채에 오뎅을 넣는다. 그리고 일 년에 두어 번 특별한 날에만 직접 만들고 있다.


지금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만드는 밑반찬은 오뎅볶음이다. 간단하기 그지없는 내 레시피는 이렇다.

   1. 납작 오뎅 가운데 잘라 정사각을 만든 후 X자로 다시 잘라 이등변 삼각형 모양을 만든다.

   2.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자른 오뎅과 채 썬 양파를 넣는다.

   3.오뎅과 양파에 간장 한 스푼, 미림 한 스푼, 설탕 반 스푼, 고춧가루 반 스푼을 넣고 약불에 볶는다.

   4. 마지막에 통깨를 뿌린다.

내 오뎅볶음은 아주 무난한 입맛을 가진 아이들이 한 번도 엄마 반찬 맛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입을 댄 적이 없는, 나를 우리 아이들의 엄마로 만들어주는 고마운 반찬 고마운 식재료가 오뎅이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생선살을 발라 밀가루와 반죽하여 기름에 튀긴 음식의 이름은 어묵이다. 어묵을 우리는 흔히 오뎅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실은 오뎅은 일본에서 다양한 어묵을 버섯, 양파 등의 야채와 같이 넣고 육수에 끓인 탕을 말하는 것이다.


어묵의 기원은 생선을 좋아했으나 생선 가시는 싫어했던 중국의 진시황에게 생선을 대접하기 위하여 고민을 거듭하던 요리사가 생선살만 발라 둥글게 환을 만든것이 기원이라는 설이 있다. 그리고 어묵은 조선 시대에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생선문주라는 이름의 어묵인데 생선살을 일일이 발라내고 야채와 섞어 쪄내는 아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어서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먹었지만 대중화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지금 스타일의 어묵이 유입된 것은 일제강점기였고 널리 퍼진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가서 직접 어묵을 만드는 방법을 배운 박재덕 씨는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을 온 사람들에게 어묵을 만들어 팔았는데 요새 말로 대박을 쳤다. 박재덕 씨는 이후로 삼진어묵이라는 회사를 차렸고 현재 대표적 어묵 회사가 되었다.


삼진어묵을 비롯한 대표적 어묵 회사는 대부분 부산에 있다. 부산은 어묵의 도시이다. 어묵은 잡다한 생선의 살과 뼈로 만든 식재료이다. 자연히 생선을 구하기 쉬운 바닷가 근처 도시에서 발달될 수밖에 없었다. 왜 하필 부산일까? 일본과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어묵이 어쨌든 시작은 일본이었고 맑은 날이면 대마도가 보이는 부산은 일본과 가장 가까운 그리고 일본 사람이 가장 많은 도시였다. 우리나라 어묵의 시작과 부흥이 부산이다 보니 우리나라 어느 지역이든 그리고 대기업에서 만든 어묵도 모두들 '부산 어묵'임을 표시한다. 물냉면이 평양냉면이 되고 간장 찜닭이 안동찜닭이 되듯 어묵은 부산어묵이 보통명사가 되었다.


부산은 어묵의 생산만 특화된 것이 아니었다. 어묵을 소비하는 부산 사람들은 생선 함량이 높은 어묵의 고급진 맛에 길들여졌다. 시장 어디를 가도 품질 좋은 어묵을 아무 데고 먹을 수 있고 살 수 있었기에 맛의 상향 평준화가 되어있었다. 그때 우리는 모든 어묵은 다 그런 맛인 줄 알았다.


90년대 초반 대학생 시절 선배들과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갔다. 서울에는 부산에서는 몇 년에 걸쳐 볼까 말까 한 눈이 와 있었는데 무려 신발이 푹푹 빠질 만큼 쌓여있기까지 했다. 종종걸음으로 버스를 기다리던 우리 일행은 추위에 곱은 손을 녹이고 오그라든 위장도 펼 겸 버스정류장 가까이 있던 포장마차 속 어묵 곁으로 S극이 N극과 붙듯이 빨려 들어갔다. 그때 맛본 포장마차의 어묵은 우리가 알던 그 어묵 맛이 아니었다. 어묵은 슴슴했고 국물은 맹맹했다. 두터운 식감과 진한 국물을 원했던 우리 일행은 어묵을 먹으면서 '서울 촌놈들 맛도 모리나!' 하며 수도 서울에서 내심 졸아있던 지역의 자존심을 우리끼리 내세웠던 기억이 있다.


2014년에 삼진어묵이 부산역에 매장을 냈다. 그 어묵 매장이 대박을 쳐서 KTX를 타고 부산을 왔던 사람들이 어묵 맛을 한번 보고는 돌아갈 때 바리바리 어묵을 사 가지고 가서 삼진어묵이 전국적으로 입소문으로 타고 유명해진 계기가 되었다. 물론 3년 여의 영업은 비싼 임대료로 다른 회사에 매장을 내어주기는 했지만.


삼진어묵이 부산역에 매장을 내고 영업을 한 시기는 내가 주말부부 생활을 하며 금요일마다 기차를 타고 천안아산역으로 귀가하던 때였다. 거의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나는 팔천 원짜리 야채 어묵 한 봉지를 샀다. 그거 한 봉지면 어묵 볶음에 어묵탕에 주말 두 끼 정도는 반찬거리 고민을 안 해도 되었다.

어묵볶음과 어묵탕은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메뉴였고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건 누군가의 레시피를 참조하지 않고 내 입맛만으로 어깨너머 눈대중으로 본 엄마의 손 느낌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제법 그럴싸하게 한 그릇의 요리를 내놓을 자신이 있었던 식재료가 바로 '어묵'이었기 때문이다.


슬슬 찬바람이 분다. 길거리를 지나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포장마차마다 들어가고 싶은 계절이 오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간단한 저녁 요깃거리였던 길거리 어묵은 이제 매일 내 식사가 되던지 식후 디저트가 될 것이다.

부산역에서 사 오던 삼진어묵 한 봉지는 옥션에서 세 봉지를 한꺼번에 주문한다. 쓸쓸한 가을 얼어붙은 겨울 우리 식구들은 어묵으로 오붓하게 따스하게 찬바람 부는 계절을 견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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