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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Oct 15. 2021

진짜 열심과 위조 열심

그날도 컴퓨터를 켜고 열심히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퇴근하고 온 남편은 '당신은 왜 맨날 맨날 그렇게 할 일이 많으냐?'며 타박을 했다. 그러더니 각자 방에서 할일을 하고 있는 아이들 방문을 열어 보더니 말했다. 

"다들 바쁘구나. 우리 식구들은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심심한 아빠를 위로하려는지 아들녀석이 화답했다. 

"아빠, 나 지금 안 열심인데. 그냥 책상에 앉아 있는건데. 그냥 책을 보고만 있는건데."

그래도 뭔가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남편의 말에 아들녀석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지금은 순간 순간 주어진 일을 해내고 있을 뿐이야. 그런데 겨울방학부터는 열심히 살 거야. 열심히 사는 척 말고. 진짜로 열심히 말이야. 열심히 살려고 마음먹고 계획하고 나서 주변을 둘러봤어. 어떻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걸까, 그리고 우리가 웬만해서 다 아는, 열심히 살았다는 유명인들의 인생도 알아보았지. 그런데 생각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이 없더라. 다들 '난 열심히 살고 있어'라고 하긴 해. 그리고 다들 열심히 살고 있다고 믿고 있더라구. 그런데 모두들 진짜로 열심히 살고 있는걸까, 문득 의문이 들었어. 어쩌면 열심히 사는 척을 하면서 열심히 산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준 안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았어.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하여 주변을 관찰하고 얻는 결론은, 나는 지금 열심히 살고 있는 게 아니었어.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였는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알지. 내가 절대적으로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거. 나는, 겨울방학부터 열심히 살 때엔 절대적으로 '열심히' 살아볼라고. 누가 보더라도 열심히 산다고 동의하게끔 열심히 살아볼라고. 내 스스로가 떳떳할만큼 열심히 살아볼거야. 


아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 아이는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고, 부모는 세월이 흘러 아이가 되어가는 현실, 고령화 사회에서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나는 내가 키우고 가르친 아이에게서 어른스러운 가르침을 되받는다. 


남편은 나보고 "할일이 많은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나 나는 안다. 내가 행동하고 말하는 어떤 것들은 단지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며, 타인에게 '나 열심히 살고 있어'라고 보여주기 위한 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쩌면 진짜로 열심히 살고 있는 결과가 '실패'와 '좌절'로 돌아올까 두려워서 진짜 열심아 아닌 '위조 열심'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해서 성적이 이래요. 하면 되는데..."

진짜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거나 대학입학을 실패했거나 어떤 목표를 세웠는데 이루지 못하게 되면, '내가 머리가 나쁘다는 것'을 증명하게 될 까봐 열심히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데, 그래서 '하면 되는데, 안 해서 그런건데,' 라고 도전하지 않는 것을 변명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남으려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들녀석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진짜 열심일지, 위조 열심일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오늘을 회상해보고, 이번 주를 돌이켜보고, 한 달을 몇 개월을 거슬러 가 본다.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아마도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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