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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Oct 13. 2021

'시근'없는 딸이 '백지로' 꽈배기를 만들었다.

네 번째 경상도 말모이

-시근있다

올해로 환갑을 맞이한 우리 오빠는 말을 아주 맛깔나게 하는 사람이다. 같은 말을 해도 내가 하는 말은 '어, 그래?' 정도의 반응이 돌아온다면 오빠가 하는 말에는 "옴마야, 맞나? 진짜가? 우와~~ 재밌네!!!!" 같은 반응 일색이다. 같은 부모밑에서 나고 자랐는데 재주가 하늘과 땅 만큼 다른 것을 보면 타고난 사주가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매번 명절이면 친정 식구들은 모여서 가족간 친목을 아주 찰지게 다진다. 무엇으로? 고스톱으로!

엄마와 오빠와 언니들과 사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피박에 멍박에 '쌌다'를 외치면서 한바탕 떠들썩하게 가족간의 화목을 다지곤 한다. 우리 가족이 왁자지껄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맛깔나게 얘기하는 재주가 있는 오빠의 영향이 컸다. 


화투패를 들고 다음에 뭐 낼까, 하고 장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실제로는 3~4분이지만) 오빠를 보면서 엄마는 참다못해 한마디 하셨다. 

"니 지금 뭐하노? 빨리 빨리 안치고?"

그러면 오빠는 슬그머니 화투패를 한 장 집으면서 능글능글하게 말했다. 

"뭐하기는?  지금 엄마하고 화투 안 치능교?"

그러면 좋은 패를 들고 빨리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엄마도 너털 웃음을 웃고 마는 것이었다. 


나는 화투를 잘 치지 못한다. 도박이나 내기를 앞두곤 머리회전보다는 긴장이 먼지 되는 탓도 있지만, 1시간 이상 앉아있으면 좀이 먼저 쑤셔와서 화투판을 즐기지는 못한다. 아마도 나는 '꾼'이 아닌던 것 같다. 내가 패를 낼 차례인데 판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국화가 예쁘게 그려진 화투를 화투판에 내던졌다. 바로 이어지는 오빠의 한껏 올라간 목소리. 

"아이고, 우리 홍월이 시근있네. 오빠한테 딱 필요한 패도 낼 줄 알고. 땅큐 베리 마치합니데이~" 

하고서는 낼름 내가 낸 국화가 그려진 화투패를 집어가버린다. 옆에서 이 모습을 보던 우리 엄마는 복장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더니 나를 보고 손가락질을 하시면 한마디 거드셨다. 

"어이구, 이 시근아~! 거서 그걸 내면 우짜노? 초짜에 쌍피짜리 국화를 내믄 피박인 너거 오빠야 니 땜에 박 면해다 아이가? 화투를 뭐를 보고 치노!"

동네에서 거의 타짜로 추앙받는 우리 엄마 눈에는 나는 정말 어설픈 화투꾼인 것이다. 

나는 화투판에서 그렇게 오빠에게는 '시근있는' 동생으로 엄마에게는 '시근없는' 딸이 되어 버렸다. 


*시근없다: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할 줄 아는 힘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로  "철없는 사람"이라고 할 때 '철'과 비슷한 뉘앙스. 반대로 '시근있다'는 말은 '뭘 좀 아네' '철이 들었네' 같은 의미가 있다. 



-백주,백지로

추석이 지나고 시월이면 들판에 벼는 황금으로 물들고 고개를 숙였다. 온 동네 논주인들은 늦기전에 벼를 베기위해 놉을 대려고 사람찾아 분주했다.

우리 엄마도 우리 논의 벼를 베기위해 놉할 사람을 구했다. 그러면서 엄마도 남의 논 벼베기에 놉을 하러다녔다. 이것이 상부상조다. 내 논의 놉도 구하고 남의 논에 놉도 해주고. 옛날 벼농사에는 신식 기계가 없었기때문에 모두 다 놉이며 품앗이로 농사를 하였다. 


국민학교 3-4학년 쯤이었다. 엄마가 남의 논에 벼베기 놉을 나가고 집에는 언니와 나 밖에 없었다. 우리는 배가 고팠다.  늘 먹는 라면말고 뭔가 색다른 것이 먹고싶었다. 나는 언니에게 꽈배기를 만들어 먹자고 했다. 엄마가 집에 와서 출출할텐데 꽈배기가 만들어져있으면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겠노, 라고 언니를 꼬셨다. 내 꼬드김에 언니가 넘어왔다. 언니의 진두지휘하에 나와 언니는 밀가루를 치대고 가스불에 기름을 올리고 설탕을 꺼내놓았다.


기다란 밀가루반죽을 배배 꼬아 한껏 달궈진 팬에 넣었다. '통'하고 긴 반죽이 기름에 떨어지자마자 '촤촤촤--악'하고 기름이 튀었다. 언니와 나는 튀어오르는 기름에 서로 놀래자빠져서는 기름에 빠진 반죽을 어찌해야 할지 감당할 수 없었다. 반죽은 새카맣게 탔다. 꺼내서 잘라보니 속은 맹 생밀가루 그대로였다. 우리는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르고 다시 기름에 밀가루를 띄웠다. 하지만 반죽은 계속해서 타기만 했고 한껏 달궈진 기름은 파파파팟거리며 밀가루 대신 스스로를 튀기고 있었다. 

타오르는 기름솥 앞에서 우찌할바로 모르고 있는 바로 그때,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채로 엄마가 부엌에 들어왔다.

"이  뭐꼬? 이 가스나들이 집에 불 낼라꼬 작정을했나? 엉? 아이고 아까바라. 이 아까운 기름캉 밀가루캉 다 우야노? 나온나 문디가스나들아! 엄마 벼베고와가 되~  죽겠그마는 너거는 도와주지는 못하고 이리 엄마 애를 믹이노?"

우리는 집따까리가 날아갈 정도의 엄마 잔소리로 그 날 옴팡지게 등짝스매싱을 당하고 꽈배기 대신 욕을 한바가지 얻어먹었다. 언니가 나를 원망하며 말했다.

"가시나, 백주 꽈배기는 만들자해갖고."

"백지로 니때문에 야단만 맞았다아이가!"


발사되는 기름과 겉과 속이 다른 밀가루 사건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집에서 어떤 것이든 튀기기를 시도해 본 적이 없다. 유년시절의 참담한 기억은 어른이 되도록 트라우마로 남는 법이다. 


언니가 마지막에 내게 한 말을 표준말로 하면

"지집애, 괜히 꽈배기는 만들자 해갖고."

"괜시리 너 땜에  야단만 맞았잖아!"

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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