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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Oct 18. 2021

우리 동네에서는 '오징어 게임'이 아니었다!

여섯 번째 경상도 말모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드라마 시청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보는 걸 따라보기 싫은 쓸데없는 자존심때문에 시청을 버티고 버티다 나도 오징어 게임 대열에 합류하고 말았다. 한번 합류하니 이건 뭐 자율적으론 중도 하차가 안되는 게임 세상이었다. 별 수 없이 9편이나 되는 50분짜리 드라마를 한 자리에서 몰아서 보았다. 드라마 매니아라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결말과 진행이 예상되는 것 같긴 했는데, 이야기 전개의 개연성이나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무대 세트의 세련됨, 박진감 넘치는 연출은 내가 느낀 단점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오징어 게임'보다는 '킹덤'이 흥미와 스릴러, 개연성 측면에서 더 괜찮은 콘텐츠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오징어 게임'이 이렇게까지 히트를 칠 일인가? 전 세계적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오징어 게임'에 이리도 열광할 일인가?하는 의문이 살짝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취향은 전적으로 개인적인거니까!



'오징어 게임'에는 우리 어릴 적 놀던 게임들이 나온다. 오랜만에 듣는 게임들의 이름이 무척 반가웠다. 이건 나 뿐만이 아니라 어릴 적 게임들은 해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향수도 느끼고 그 시절 추억도 되새기는 것.

하지만 내 추억과 다른 점이 있었으니!!! 바로 게임의 이름이었다.


경상도 남쪽 지역 우리 동네에서는 오징어 게임오징어 달구지라고 불렀다.

방과후 많고 많은 시간을 보낼 때 친구들 중 하나가 "야, 오징어 달구지 한판, 됐나?"고 한마디 툭 던지면, 한무리의 친구들이 "됐다!"고 호응하며 순식간에 팀을 짜고 모래로 된 운동장 한 귀퉁이에 발을 질질 끌면서 오징어 모양의 놀이판을 그렸다.


오징어 달구지 놀이는 발이 빨라야 했다. 공격을 하든 방어를 하든 행동이 민첩하고 발이 빨라야 오래 살아남아 승자가 될 수 있다. 나는 달리기가 엄청 느리다. 중학교 체육 시간에 재 본 100m 달리기 기록은 19.44초. 맨 꼴찌였다. 몸싸움에도 재주가 없다. 달리기도 느리고 몸싸움도 못하니 나는 항상 맨 처음 죽는 사람이었다. 지꾸만 맨 처음 죽으니 하루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해서 끝까지 버텨 보기로 했다.


깨금발로 총총 뛰어 오징어 허리를 지나갔다. 만만한 상대였던 내 팔을 오징어 안쪽에 서 있던 술래 친구가  잡았다. 보통같으면 "옴마야!"하고 깨금발을 위해 접었던 한쪽 다리를 내리고 게임을 포기했을 나였다. 하지만 그날은 끝까지 버텨보기로 한 날이다. 나도 자존심이란 것이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술래의 양쪽 팔을 잡았다. "야~~~" "으으아아악~~" 술래와 나의 괴성이 공기 중에 부딪혀 흩어졌다.


하필 술래는 힘이 센 친구였다. 힘 센 친구가 나를 붙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나는 땅이 흔들리듯 지진이 일어난 듯, 머리속 골이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 되었다. 마치 아침드라마에서 예비 시어머니에게 뺨을 맞고 몸이 돌아가 땅에 쓰러진 청순가련의 여인처럼 나는 친구가 떠미는 힘에 밀려 모래 운동장에 내던져졌다. 팔꿈치가 까졌고 무릎이 땅에 쓸렸다. '아, 왜 내가 가망없는 일에 목숨을 걸었나!' 나는 상처만 남기고 친구에게 내 목숨을 내 주어야 했다. 이후로 나는 오징어 달구지 놀이를 즐겨하지 않았다. 질 게 뻔한 승부는 도전하지 않는게 이기는 것이다  



오징어 달구지 놀이와 비슷하게 몸을 쓰는 놀이로 '진돌이'라는 것이 있었다.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는 '다방구'라고 불리는 놀이인데 우리 동네에서는 '진돌이'라고 했다.


오징어 게임 속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의 영희처럼 술래가 전봇대에 서서 열을 센다. 그런 다음 그 사이 숨은 아이들을 찾아나선다. 술래가 아이를 찾으면 처음 찾아진 아이는 전봇대에 손을 집어야 하고 그 다음 발견된 친구들은 술래가 찾은 순서대로 손을 맞잡고 나란히 서 있어야 한다. 술래가 숨은 아이들을 찾는 동안, 숨어 있던 누군가가 전봇대에 손을 집은 아이를 터치하면서 "진돌이!"라고 외치면 전체를 구하게 되고 중간에 맞잡은 손을 내리치면, 연결된 손이 끊어진 이후의 아이들을 구하게 되는 게임이다.


진돌이에서 술래를 하든 전봇대를 잡는 사람이 되든 한번은 뛰어야 했다. 잡기 위해서 혹은 잡히지 않기 위해서. 나는 달리기도 느리고 몸싸움도 못해서 진돌이에서도 항상 제일 먼저 죽거나, 술래가 되어도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아, 나는 몸쓰는 게임을 하면 안되는구나'고 주제 파악을 금방 할 만큼은 똑똑해서 오징어 달구지나 진돌이는 어린 시절을 통틀어 열 번이상은 안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기억이란 건, 반드시 믿을만한 것은 아니다.)


나 같이 행동이 느리고 싸움에 약한 사람이 '오징어 게임'에 초대된다면 초반부터 죽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 정도의 주제 파악은 할 정도의 상식은 있는 사람이라 456억의 유혹을 이겨내고 게임에 참여를 안 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오징어 게임에서 벌인 두 번째 게임은 설탕 뽑기였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는 그것을 똥과자(혹은 쪽자)라고 불렀다. 할아버지가 일정 분량의 설탕과 소다를 쪽자에 투여하고 우리에게 건네주면 우리는 가판대에 쪼그리고 앉아 쪽자에 설탕과 소다를 넣고 나무젓가락으로 한참을 휘젓는다. 어느 정도 걸쭉해지면 할아버지가 판대기에 '척'하고 던지듯 부은 다음, 우리가 고른 무늬를 살짝 눌러준다. 그러면 우리는 바늘에 침을 묻혀가며 조심스레 콕콕 눌러 모양을 하나의 흐트러짐없이 분리해낸다. 분리된 과자의 색깔이 어린 우리가 보기에 똥같았나 보다. 우리 동네에서는 그래서 '똥과자'라고 불렀다. 혹은 쪽자에 설탕을 녹인다해서 '쪽자'라고 하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서 설탕 뽑기란, 이미 설탕으로 만들어진 붕어, 칼, 물고기, 별 등을 따기 위해 숫자가 적힌 판 위에 막대기로 숫자를 가리고 나서 숫자가 적힌 종이를 뽑는 것이다. 뽑은 종이에 적힌 숫자가 막대로 가려져 있으면 숫자에 해당하는 설탕과자를 뽑아 가져갔다.

내가 했던 설탕뽑기


제일 큰 뽑기 상품은 대형 잉어였다. 나는 뽑기에서 중형 잉어까지는 뽑아 본 적이 있다. 50원 주고 한 뽑기에서 뽑은 설탕 잉어를 들고 집에 갔더니 언니 오빠가 나보다 더 좋아했다. 할머니는 잉어 대가리, 엄마는 잉어 꼬리, 아버지는 잉어 지느러미를 분질러 차지하였고 우리 남매는 잉어 몸통을 똑똑 분질러 나눠가져다.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아낀다며 이정재가 우산을 핥듯이 잉어 몸통을 조금씩 핥아먹었다.

나와 오빠는 조금 핥아 먹다가 감질나서 이로 와그작 와그작 부셔서 금방 먹어 치웠다. 우리 몫의 잉어를 먹어치운 오빠와 내가 호시탐탐 언니의 잉어 몸통을 노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징어 게임에서 구슬게임을 할때 짝이 안 맞아서 한 명이 남게 되었다. 남은 사람은 기회주의자이며 이기주의자인 한미녀씨. 게임을 안 하고 혼자 숙소에서 쉬고 있던 한미녀가 말했다.

"짝이 안 맞아서 혼자된 사람을 깍두기라고 하잖아! 소외된 약자를 버리지 않는 게 옛날 애들이 놀이할 때 지키던 아름다운 규칙이라나?"

그렇다. 우리에게는 '깍두기'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다. 주로 나이어린 동생이나 동네에 한 사람씩은 있던 약간 덜 떨어진 친구들이 깍두기를 담당했다.


오징어 달구지나 진돌이에서 나는 '꼰다리'를 한 적이 있었다.

"짝이 안 맞네. 욤판에는 홍월이가 꼰다리해라."

우리 동네에서는 '깍두기'를 '꼰다리'라고 했다. 김치나 김밥의 맨 끝 모양은 어그러지고 먹기는 불편하지만 맛은 좋은 그것, 꽁다리 혹은 꼬다리가 변형된 말일 것이다.


꼰다리는 의미 상 왜 꼰다리인지 이해가 가는데 깍두기는 왜 깍두기일까? 사전에는 깍두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이나 그런 신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검색을 하다 보니 깍두기의 어원은 무로 김치를 담그고 난 후 끝부분에 반듯하지 않고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모양의 무로 김치를 담그었다고 한데서 꼭 필요하지 않은 남은 부분, 나머지의 뜻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왠지 설득력이 없는 것 같은 건 나만 그런가?



'오징어 게임'을 정주행하면서 뜻하지 않게 옛 추억이 옛 언어가 떠올랐다. '오징어 게임'은 훈훈한 드라마는 아닌데 진행한는 게임덕분에 훈훈한 마음이 들었다. TV를 향한 눈은 피와 시체와 난투를 보고 있었는 데도 말이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 '달고나'라는 간판을 한 가게를 발견했다. 한 군데가 아니라 세 곳이나! 자주 가던 곳이었는데 그전까지 못보던 것이 이제야 눈에 띄인다. 콘텐츠의 힘이다.


똥과자 만들러 밝은 날 다시 와볼까, 생각을 하며 어둠이 내린 골목을 벗어나고 있었다.



*어느 친절한 분이 댓글에서 진돌이와 다방구는 전혀 다른 게임이라고 설명해주셨다. 내 기억이 잘못된 건지 지역마다 게임이 달랐던건지 확실치가 않다. 몸싸움을  못했던 까닭에 진돌이에 참여를 많이 안했으니 내가 잘못알고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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