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홍월 Oct 20. 2021

엄마의 시장바구니는 '헤꼽'았다.

일곱 번째 경상도 말모이

-송신스럽다

몇 년 전 엄마랑 백화점에 갔습니다.  우리 엄마는 백화점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고향 소도시에는 백화점이 없기도 했거니와 고향의 오일장에서 엄마가 필요한 물건은 부족함 없이 싼 가격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백화점에 가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백화점은 엄마가 자주 가던 시장이나 점방보다 엄청 비싸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백화점에 가려는 엄두를 안 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엄마의 생신을 맞아 우리 세 자매는 엄마랑 백화점에 가서 쇼핑도 하고 백화점 구경도 하고 근처에서 맛난 것도 먹자고 계획을 세웠고, 그래서 엄마를 모시고 부산 시내 대형 백화점에 같이 갔습니다. 1층 화장품 매장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 3층을 지나 아마도 4층이었던 부인복 매장에서 우리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 매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을 때부터 엄마는 "아이고 어지러버라"를 연신 말하며 정신없다고 읊어대었습니다.

부인복 매장에서 가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습니다. 딸들은 엄마에게 "엄마, 이게 이쁘네. 이거 한번 입어봐" "언니야, 이거 색깔 참 예쁘네. 디자인도 엄마한테 어울릴 것 같제? 엄마, 이거도 한번 입어보자."라고 옆에서 엄마의 쇼핑을 거들었습니다. 엄마는 선뜻 옷을 집지도 입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매대에 가지런히 걸린 옷들이 엄마 맘에 드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엄마, 우리 저 집에 한번 가보까?"라고 엄마의 손을 이끌었습니다.  


두어 시간을 백화점 부인 옷 가게를 여기저기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옷을 입어보지도 않고 자꾸 그냥 가자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백화점의 비싼 가격 때문인가, 생각하고 "엄마, 돈 생각하지 말고 그냥 골라라."라고 했습니다. 백화점에 와서 쇼핑하는 시간 내내 못마땅한 듯한 표정을 짓던 엄마는 급기야 "내는 여기 못 있겠다. 갈란다."라고 하시더니 에스컬레이터를 찾아 나섰습니다. 우리는 "이게 머선 일이고?" 하며 할 수 없이 바로 앞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못 찾아 두리번거리던 엄마를 이끌고 백화점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화점을 나오고 나서 바깥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던 엄마는 큰소리로 말하셨습니다.


"아이고, 송신스러버라. 내는 다시는 백화점인가 천화점인가 하는 데는 못 오겠다!"

엄마의 역정 섞인 말에 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엄마는 시장도 송신스럽기는 똑같다 아이가? 와 백화점에서만 유별시리 글카노?"

"시장 카마 더 송신크마느. 시장은 그래도 사람이 정신을 채릴 수 있는데 여그 백화점은 세상 송신스러버가 사람 혼을 빼놓네. 바보 될까 봐 여~ 못 있겠다. 고마 가자!"


딸들은 백화점 옷을 포기했습니다. 대신 백화점 옷 가격만큼의 현금을 더 드렸지요. 엄마의 얼굴은 그 어느 생신 때보다 더 환해졌더랬습니다.


*송신스럽다: 정신없다. 어지럽다. 혼란스럽다, 라는 뜻을 가진 사투리. 전라도에서도 '송신스럽다'라는 말이 있다고는 하는데 경상도랑 같은 의미인지 다른 의미인지는 알 수 없네요.



-헤꼽다

장날입니다. 우리 고향마을 시장은 매 1일과 6일에 장이 섭니다. 일대에서는 제법 큰 장입니다. 돈 한 푼 없는 꼬마였지만 장날만 되면 기대감에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혹시나 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주전부리라도 사 올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파하고 운동장에서 고무줄놀이도 안 하고 일찍 집에 옵니다. 엄마는 시장에 가고 집에 없습니다. 나는 벽에 걸린 '추정당'이라는 글자가 굵은 명조체로 커다랗게 그려진 시계를 흘끗 보고는 집을 나섭니다. 시장 간 엄마가 집에 올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입니다. 골목 어귀에 미리 마중을 나갑니다. 혹시 내가 좋아하는 순대나 호떡을 사서 들고 오실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중학생, 고등학생이라 나보다 학교를 늦게 파하는 언니, 오빠들보다 먼저 한 점 쓰윽 해치울 수 있습니다. 흔적도 없이 말입니다.


저 멀리 엄마가 보입니다. 늘상 따뜻한 엄마이고 푸근한 엄마이지만 장날의 엄마만큼 보고 싶고 그리운 엄마는 없을 겁니다.

"엄마~~!"

백일 동안 엄마를 처음 보는 아이처럼 반가운 목소리를 하고 엄마에게 달려갑니다. 엄마의 양 손은 이것저것으로 한 짐 가득입니다. 나는 하늘을 날며 먹이를 찾아 땅을 쏘아보는 매처럼 엄마의 장바구니를 날카롭게, 그러나 빠르게 훑어봅니다. 한 손엔 장바구니가 들려있는데 무얼 그리 많이 샀는지 장바구니 배가 양쪽으로 불룩합니다. 죄다 파, 얼갈이, 시래기, 무 같은 겁니다. 다른 한 손에 든 건 커다란 까만 비닐 봉다리입니다. 까만 비닐 봉다리안에 조그만 새끼 까만 봉다리가 몇 개나 겹쳐 있습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까만 비닐 봉다리는 내 기대를 채워줄까요? 저버릴까요?


나는 좀 무거워 보이는 장바구니 한쪽을 빼앗듯 내 손에 쥡니다.

"야야, 니한테 무겁다. 이리 도고!"

엄마는 어린 딸이 힘쓰는 게 안쓰러운가 봅니다. 나는 "으-으/응-. 생각보다 헤꼽네. 내가 들게."라고 착한 딸 흉내를 냅니다. 엄마는 벌써 내 속을 훤히 꿰뚫어 보았나 봅니다.

"호떡 냄새를 맡았나? 순대 냄새를 맡았나? 어서 가자. 언니들 오기 전에 호떡 한 개 먼저 묵으라"

흐미~~ 이번 장날은 대박입니다. 호떡도 있고 순대도 있습니다. 살짝 무겁게 느껴지던 장바구니가 한결 더 '헤꼽게' 느껴져 손에 달랑거리며 들고 다니는 손지갑 같았습니다.


*헤꼽다: 가볍다, 는 의미의 사투리. 물건과 사람 모두에게 사용 가능하다.



이전 08화 우리 동네에서는 '오징어 게임'이 아니었다!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사투리 모으다가 추억이 같이 왔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