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월 Oct 21. 2021

네 얼굴을 '까래빈' 녀석이 누구냐?

여덟 번째 경상도 말모이

-전신에 빼간지

여느 시장들이 다 그렇듯이 우리 동네 시장에도 맛있는 먹거리들로 넘쳐났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양 옆으로 도열해있는 상점들부터 길거리 빈틈을 가득 메운 좌판들까지 김이 폴폴 나는 맛있는 먹거리로 가득 찼다. 오일장만큼은 아니지만 무신 날에도 시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사러 왔다. 나도 그 대열에 종종 합류하곤 하였다. 


내가 시장에서 제일 좋아하는 먹거리는 돼지족발이었다. 떡집을 지나 정육점을 지나치면 즉석오뎅 파는 집이 나오는데 족발을 파는 집은 오뎅집 바로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족발집에는 오천 원부터 이만 원까지 족발을 사이즈와 가격대별로 포장을 해 진열을 해놓고 있었고 간장 빛깔에 물든 커다란 돼지족 수십 개는 매대 뒤편에 켜켜이 쌓여있었다. 이 돼지족들은 사람들이 즉석에서 썰어달라고 하면 썰어서 팔곤 했다. 


퇴근 버스를 내리면 시장 앞에 정차하였다. 시장 앞에 내려서 시장을 지나치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가는 것은 전문 노름꾼이 경마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과 같다. 나는 버스를 타고 퇴근한 날이면 어김없이 시장 족발집엘 들렀다. 내가 주로 산 것은 제일 작은 사이즈, 오천 원짜리였다. 엄마랑 둘이  먹으려면 오천 원짜리 작은 팩  하나면 충분했다. 윤기가 좌르르 흘러 보이는 건강한 돼지 발이 내 눈과 뇌와 위를 사정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본능을 충실히 따른 나는 제일 작은 족발을 한 팩 사들고 집으로 왔다. 


해가 저물기 전 집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고 엄마가 말했다. 

"오늘은 우얀일로 이리 일찍 집에 왔노?"

"간만에 엄마캉 소주에 족발 좀 뜯을라고 그랬지!" 

까만 봉다리를 풀었다. 작은 개다리소반을 펼치고 그 위에 족발 팩을 풀고 새우젓과 와사비를 푼 간장을 종지에 담았다. 엄마와 나는 제일 위에 펼쳐진 고기를 집었다.


오랜만에 먹으니 맛나다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모녀끼리 쓴 소주도 한 잔씩 나누어 마셨다. 우리는 웃음 띤 저녁을 나누고 있었다. 어느덧 맨 위 칸에 깔린 고기를 깨끗이 비웠다. 윗줄 밑에 깔린 것은 고기보단 온통 뼈였으면 뼈 옆에는 약간의 살점이 붙어 있을  뿐이다. 나는 순살보다는 뼈 쪽을 좋아하는데, 엄마는 아니었다. 

"뭐꼬?  전신에 빼간지뿐이네. 묵을 것도 없네. 이거 얼매주고 샀노? 오천 원? 담부턴 사 오지 마라. 빼간지뿐이라 파이다."


겨우 오천 원짜리 족발은 살보단 뼈가 많았다. 나는 그래도 즐겁게 뼈를 잡고 뜯으며 남은 한 손에 소주잔을 기울였다. 엄마는 식은 밥은 전자레인지에 데우러 부엌으로 나가고 있었다. 


*전신에 빼간지: "온통/전부 뼈뿐이네"라는 경상도 사투리. 전신에는 온통, 모조리, 전부의 뜻이고 빼간지는 뼈를 말한다. 


- 까래비다

"니 오데서 이리 까래비가 왔노? 엉? 누가 니를 이리 까래비드냔 말이다!"


학교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손녀를 반가이 맞이하던 할머니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기함을 하시며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할매는 손주 손녀 중에서 내가 제일로 좋다고 하였다. 그래서 맨날 나보고 "아이고 우리 강쉐이. 요래 이쁜 게 오데서 왔능공?"하며 숨겨둔 눈깔사탕을 나만 몰래 주곤 했다. 나는 할머니가 나한테 역정 내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할머니가 그날은 내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오자마자 화부터 내시니, 나는 내가 뭘 잘못해서 할머니가 나를 야단치시는 건 줄 알았다. 


나는 혹시라도 할머니한테 한 대 맞을까 걱정이 되어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아무도 안 까래빘다.할매, 와 그라는데?"

내 말이 못 미더웠는지 할머니는 앉은자리에서 일어나시며 밖을 나서려고 하였다. 

"니가 바른말을 못 하는 거를 보이 어데 억수로 못된 머시마가 그랬는갑제? 가자. 핵교로. 누고? 내 금마 혼꾸녕을 내 줄끼다."


이쁜 손녀 얼굴에 긁힌 자국을 보고 할머니는 단단히 역정이 나셨다. 버선발로 툇마루를 내려와 댓돌에서 하얀 고무신을 찾아대는 할머니를 나는 뒤에서 부여잡으며 나는 재빨리 할머니를 달랬다. 

"할매 아이다. 진짜로 아이다. 내가 그랬다. 내가 아까 얼굴 간지러버서 만졌는데 손톱에 손톱 까시가 있었는갑드라. 거기에 긁힌 기다."


몇 분여의 실랑이 끝에야 할머니는 "니 참말이가? 참말로 니가 그랬나? 언 놈이 그랜기 아이고?"라며 혹시 내가 덩치 큰 남자아이들이 무서워서 거짓부렁을 하는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듯 내 기색을 살폈다. 

우리 할매는 제일 어여쁜 막내 손녀 얼굴에 혹여 흉터라도 생길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우리 할매는 막내 손녀가 꼭 '미스코리아'에 나갈 거라고 생각하셨다. 당신 눈엔 막내 손녀의 미모가 이 바닥 제일이었고 당연히 미스코리아 감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손자는 남궁 원이었고 손녀는 김지미였다. 우리 집에선 할머니가 이 믿음을 제일로 크게 가지고 계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는 집에서 떠받들던 별당 아기씨에서 온갖 심부름해다 나르는 언년이 신세가 되어버렸다. 할매가 보고 싶다.


* 까래비다: 할퀴다.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시장바구니는 '헤꼽'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