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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Feb 26. 2022

J.D.샐린저 - <호밀밭의 파수꾼>


사람의 습관이라는 게 참으로 무서운 것 같다.


책을 읽을 때마다 기록을 남기고 감상을 남기곤 했었는데, 작년 연말과 올해 초를 지나면서 이런저런 핑계로 독서와 감상문 쓰는 것을 몇 번 건너뛰었다. 그러곤 다시 감상문을 실로 오랜만에 이렇게 앉아서 쓰려고 하니 머릿속이 텅 빈 듯하다. 늘 하던 것을 잊는 데는 단 며칠이면 충분하지만 잠깐 동안 안 하던 것을 다시 재개하는 데는 몇 십배의 시간과 품이 들어간다. 뇌의 한계인지, 몸의 본능인지. 나는 한계에는 너무 익숙하고 본능에는 지나치게 충실하다.


독서토론 모임 '책담'의 37번째 책으로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선정되었다. 아니, 누군가가 선정했다.


책 선정자는 "올해는 제목은 굉장히 많이 들었고 내용도 많이 들어서 내가 마치 읽었다고 착각이 들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을 골라 읽어보기로 했다"라고 말하면서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런 책 중 하나라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얘기는 수도 없이 들었지만 한 장의 책장 한번 넘긴 적 없는 책,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17살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변호사 아버지를 둔 부유한 집 자식이다. 가장 사랑하는 동생 앨리가 백혈병으로 죽고 단순하고 순수 소설을 쓰던 좋아하던 형 D.B는 변절(?)하여 헐리우드로 가버린 후 콜필드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분노와 저항으로 기성세대의 속물근성과 위선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하고 퇴학처분을 받은 콜필드는 겨울방학을 며칠 앞두고 학교 '펜시'를 떠나 뉴욕으로 떠난다. 뉴욕에서 2박 3일을 보내면서 나이트클럽도 가고 여자 친구도 만나고 이리저리 거리도 거닐면서 그 나이의 아이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속물적인 생활을 지독한 양의 술과 담배와 함께 보내게 된다. 어른들에게 실망과 염증을 느낀 콜필드는 서부로 떠나기로 하고 그전에 평소 존경하던 앤톨리니 선생님과 막내 동생 피비를 만나러 가는데...


같이 독서토론을 하는 A는 이 책을 대학생 시절에 이미 읽었다고 했다. 대단한 사람이다. A는 20대에 이 책을 읽었을 때 책 속에 나오는 어른들이 모두 다 싫었다고 했다. 콜필드가 낙제를 하고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던 스펜서 선생님,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식의 말투를 가진 뉴욕의 택시 기사 아저씨, 인사차 들렀던 콜필드가 존경하던 그러나 콜필드나 A가 생각하기에 뻔한 사설을 늘어놓던 엔톨리니 선생님까지. 요샛말로 '이런 꼰대들, 하는 소리란 늘 그 소리가 그 소리. 지겨워!'라고 생각하며 콜필드의 답답함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A는 이제 40대의 중년이 되었고 한 아이를 둔 엄마가 되었다. A는 지금 다시 읽으니 철없는 콜필드는 어찌하면 좋을까, 내 딸이 이런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호밀밭의 파수꾼> 속 주인공 콜필드는 21세기 우리의 눈으로 보더라도 인생 타락의 끝이 확연히 보이는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잣집 도련님 콜필드는 왜 스스로 위악을 표현하며 타락의 길을 걸으려 하였을까? 그것은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시절을 반추해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1년에 출간되었고 출간되자마자 고전의 반열에 올랐을 뿐 아니라 금서로 취급되기도 했다. 너무나 많은 청소년의 일탈 행위가 묘사되었기 때문이리라. 1951년은 우리나라도 아주 지독하리만큼 힘든 고난의 시기였다. 한국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땠을까?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를 이끈 후 승전국으로서 전 세계의 패권이 되었고 그 승리에 취하여 여러모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황금만능주의가 사회를 지배하였다. 동시에 사상적으로는 매카시 열풍이 일정도로 획일적인 부분이 전역에 퍼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콜필드의 눈에 비친 당시 미국 어른들의 모습은 곱게 자란 콜필드의 눈에도 용납이 되지 않을 정도였을 것이다.


콜필드는 어른들이 하는 모든 말과 행위들이 위선적이고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구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변호사인 아버지는 오히려 범법자들을 비호하고 그 후원자들로부터 돈을 받았다. 그 돈으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곳에 투자를 했다. 어린 시절 센트럴 파크의 호수에 있던 오리가 어디에서 겨울을 날지 걱정하던 콜필드에서 "그깟 오리가 무엇이 그리 중요하냐?" 택시 기사 아저씨는 콜필드에게 아직 어려서 현실을 모른다고 하였다. 학생들에게는 도움도 되지 않을 훈화 말씀을 늘어놓던 '펜시'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은 학교를 방문한 학부모들에게는 세상 가장 온화한 미소로 부자 학부모들과는 정성 어린 악수와 환대를 나누었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학부모들에게는 성의 없는 미소만 날릴 뿐이었다. 어른들에게는 진심이라는 것이 없어 보였다.


이 시기 하필 사춘기를 맞이한 콜필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타락의 방법을 저항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내 사춘기는 어떠했던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주 오래전 그때를 회상해보았다. 콜필드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나도 마찬가지로 어른들이 꼴같잖아 보였고 그들이 우스워 보였던 것 같다. 아주 조금 세상을 알았던 나는 마치 내가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생각했다. 조용필의 '창 밖의 여자' 한 곡을 알았을 뿐인데 배호나 펄시스터즈도 아는 것처럼 우쭐해서 다녔다. 어른들은 다 속물인 것 같았고 그들은 세상을 구하기에는 너무 늙은 것 같았다. 세상은 내가 구원해줘야 할 것만 같았다.


20살 대학 새내기인 우리가 세상의 고뇌를 다 짊어진 듯 세상을 향한 원망과 기성세대에 대한 비토를 토해냈을 때 예비역 선배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20대에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면 바보이지만 40대에도 마르크스주의자라면 더욱 바보이다." 나중에야 그 선배가 한 말이 아니라 어느 유명한 정치가가 한 말인 것을 알았지만, 어쨌든 20살 우리에게 그 말을 한 선배는 한심한 변절자처럼 여겨졌었다.


책담 모임 멤버인 A처럼 나도 10대나 20대에 이 소설을 읽었더라면 콜필드에 적확히 빙의하여 그의 심정에 공감하고 동감하며 어른들을 미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소설 속 콜필드의 3배쯤 더 많은 나이가 되어 버렸고, 콜필드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나, 일부 소설 속 어른들에게 더 심정적 동의가 가는 연배가 되어버렸다. 안타깝게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때로는 마음에도 없는 미소와 환대를 보여주는 쇼맨십도 필요하고 겨울철 오리가 어떻게 살아남든 어떻게 하면 내 가족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


콜필드는 순수문학을 하다가 미국 최대의 상업 자본이 판을 치는 헐리우드로 가서 이름 꽤나 날리는 시나리오 작가가 된 형 D.B,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아주 썩기 직전까지 진하게 익어버린 과일 같은 어른이 된 나는 형 D.B. 에게 안도감을 느낀다. 아, 다행이다.라고.


과거의 내 감정이 점차 소멸해가는 지금, 내 경험과 감정과 현실 인식을 제대로 전달해 줄 언어적 기술과 감동적인 화법을 구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엔톨리니 선생님이 콜필드에게 해준 말들이 가슴에 깊숙이 와닿았다. '아, 이런 말을 한다면 아마도 지금의 소년 소녀들의 가슴을 조금은 움직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학교 교육은 그 외에도 도움이 되지. 이것을 어느 정도까지 계속하면 자기 머리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야. 무엇이 자기 머리에 맞고 또 무엇이 자기 머리에 맞지 않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이야. 그리고 얼마 후에는 일정한 크기의 자기 머리에 어떤 종류의 사상을 활용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거다. 그리고 또 하나, 자기에게 맞지 않는 사상을 일일이 시험해보는 데 드는 막대한 시간을 절약해주지. 자신의 전정한 용량을 알게 되고 거기에 따라 자기 머리를 활용하게 되지."
-280쪽-

옛날 우리 선조들은 자신의 경험을 세월에 녹여내여 기막힌 속담들을 생산해내셨는데 이 말도 그중 하나이다.

"공부도 다 때가 있다."

10대나 20대에 읽었으면 더 좋았을 뻔 한 책을 지천명의 나이에 읽고 보니 공부뿐 아니라 문학도 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베스트셀러이고 우리나라에서도 10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고전 소설 2위를 기록하고 있다니 (1위는 '오만과 편견'이라고 한다) 여전히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다는 반증이겠지만 나는 지난 10년 동안 달성한 이 기록에 힘을 보태지 못하고 이제야 한 발짝 물러선 지극히 현실적인 감상만을 날릴 뿐이다.


그러나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어른들에게서 아직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겠다는 콜필드의 염원은 아무런 반대 없이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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