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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Oct 01. 2021

박완서 - <엄마의 말뚝>

‘어머니의 함자는 몸 기己 자, 잘 숙宿 자여서...’


엄마의 말뚝 3편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가졌던 어떤 기시감에 확실한 근거를 갖게 되었다. 우리 엄마의 함자도 기숙이었다. 우리 엄마의 숙자는 맑을 숙淑이긴 했지만.


‘엄마’라는 단어는 참 얄궂다. 엄마 앞에서 ‘엄마’하고 엄마를 부를 때는 그저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에 지나지 않지만, 결혼하고 엄마와 떨어져 있는 내 삶의 공간에서 엄마를 생각하며 나지막이 ‘엄마’라는 단어를 내뱉을 때면 어느덧 눈가에 물이 고인다. 사실은 ‘엄마’라는 말은 입 모양만 벌릴 뿐 소리가 되어 나오지도 못할 정도로 그 단어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가슴 먹먹함은 내가 엄마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서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엉킨 실타래처럼 여러 감정이 얽혀있다. 애정, 미움, 증오, 욕구 등의 감정들이 한 놈 한 놈이 교대로 내 가슴의 호수 안에 잠겨있다가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또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내려가곤 한다.


엄마의 말뚝 1편에서 박완서 작가의 엄마는 잘생기고 똑똑한 아들을 출세시키고 하나뿐인 딸을 신여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서울 사대문 안에 집을 마련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남의 집살이라는 설움에서 벗어나고 맹자의 엄마처럼 자녀 교육을 위해서 “비록 문 밖이지만 기어코 서울에 말뚝을 박았다.”


여느 엄마보다 억척스러우면서도 곱게 자식을 키워내고 인생을 살아냈던 박 작가의 엄마는 세월이 흘러 엄마의 말뚝 2편에서는 80이 훌쩍 넘은 노인이 되어 그만 엉덩이와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너무 많은 나이 탓이었을까? 수술과 입원을 하는 동안 박 작가 엄마의 가슴 깊은 오지에 뿌리내리고 있었던 원한과 저주와 미움이 노인네 특유의 치매성 질환으로 나타났다. 박완서 작가는 가슴으로 통곡했다. 박 작가 엄마가 노인성 치매 현상으로 보여준 것은 그가 말뚝을 박은 서울 현저동 꼭대기 집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비록 그 집에서 있었던 일이 시대적 비극 때문에 생긴 개인이 온전히 감당하기 힘든 특수한 곤경이었지만 그 집이 엄마가 생각하는 신뢰할 수 있는 은신처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라고 박완서 작가는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엄마의 말뚝을 읽기 시작할 무렵이 우리 엄마가 허리와 엉덩이를 다쳐 병원을 입원을 즈음이었다. 박 작가의 엄마와 비슷한 나이가 된 우리 엄마도 그 나이 무렵의 노인들이 대개 그러하듯 하체에 힘이 없어서 화장실을 가다가 넘어졌는데 부실한 뼈들이 엄마 몸의 육중한 무게를 감당해내지 못하고 스스로 항복을 선언해 버린 것이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나는 소식을 듣고도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지만 가까이 사는 언니와 오빠는 엄마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간병을 하고 잡다한 대소사를 처리했다.


평소에는 엄마의 안녕을 알기 위한 전화조차 드문드문하던 나도 엄마가 허리에 금이 가 수술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묻게 되었다. 엄마 옆에서 자주 자리를 지키는 큰 언니가 전화를 받는 일이 많았다. 오늘 엄마의 상태는 어떠냐고 물었을 때 큰 언니는 대답했다.

“엄마가 자꾸 나보고 친정 조카딸이라 한다. 그러면서 오빠 어디 갔냐고 왜 오빠는 안 오냐고 하면서 오빠만 찾네. 우리 엄마는 한결같이 아들뿐이네.”


엄마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며 아들이나 딸이나, 첫째나 막내나 다 소중하고 귀한 자식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가 나는 천대하는 것 같고 아들만 귀히 여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에 어느 날 내가 대놓고 엄마한테 “엄마는 나나 언니들보다 오빠가 제일 좋지? 맞지?”라고 물어본 날이었다. 그날 내 물음에 엄마는 모범답안으로 말했지만 말보다 더 확실한 몸짓과 눈짓이 주는 신호를 온몸으로 느낀 나는 엄마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제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 작가의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여 있을 때 현저동 꼭대기 집을 떠올린 것처럼 엄마의 은신처는 아마도 오빠였기에 병원에 입원해있는 우리 엄마는 엄마의 밑바닥에 있던 사랑과 자유와 편안함의 대상인 오빠에 대한 그리움을 희미한 노인성 치매 증상으로 드러냈다. 나는 우리 엄마가 뿌리내린 말뚝은 오빠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첫아들을 낳았을 때 엄마는 안도했었지만 그 밑으로 딸 셋을 내리 낳자 처음에는 고된 시집살이를 실감했고 두 번째에는 강도 높은 시집살이를 당연하게 생각했으며 마지막에 나를 낳았을 때는 보따리를 싸서 친정행을 결심하기까지 했다. 아주 한참을 우리는 아들은 천국이요 딸은 지옥인 세상에서 살아왔었다. 이런 세상에서 엄마의 말뚝이 하나뿐인 아들인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철들고 머리로 상황과 각 개인의 처지를 생각하고 이해하고 난 후의 일일 뿐이며, 과거의 나는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이해하며 판단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일차원적이었다. 어떤 혜택이 오빠에게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되면 나는 오빠를 질투했고 엄마를 미워했다. 어린이 영양제인 원기소를 오빠만 먹었을 때나, 오빠는 갈치 온 토막을 먹고 우리에게는 부스러기들이 남겨졌을 때 혹은 집안 대소사에 오빠는 논의에 참여하고 우리는 곧 출가외인이 될 거라는 이유로 당연히 제외되곤 할 때 나는 감히 근거를 대지 못하는 반발심과 질투를 교묘히 포장하고 은밀히 내 안으로 감춰두었었다. 이렇게 잘 숨겨둔 내 밑바닥 애증은 어른이 되고 나서 가끔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는데 어른이 된 후 오히려 나는 감정을 숨기는데 은밀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솔직해지고 했다.


“엄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저 아들, 아들. 세상에 오빠밖에 없지? 멀더라도 퇴원하면 집으로 엄마 보러 갈까 했더니 안 가도 되겠네. 오빠만 옆에 있으면 되지 뭐. 오빠더러 어서 오라고 해. 보고 싶다고. 그럼 효자 오빠는 한달음에 달려올걸?”

희미하게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하고 있는 엄마에게 막내딸은 엄마에 대한 원망과 애증을 나이 오십 줄씩이나 돼가지고 투정으로 내보이고 있었다.


내가 ’ 엄마의 말뚝‘을 1,2,3편까지 다 읽고 또 한 번 더 새겨보며 읽는 짧은 사이 엄마는 무사히 퇴원을 했다. 엄마의 정신적 말뚝인 오빠가 이제는 육체적인 말뚝까지 되어 옆에서 엄마를 수시로 돌보고 있다. 가까이 있지도 않고 실질적 도움도 못 주면서 나는 아직도 유아기적 감상에 치여 틈틈이 엄마에게 원망과 애증을 보였다가 감췄다가 하고 있다.


기己자와 숙宿자가 적힌 무덤가에 세워진 엄마의 말뚝(비석)을 보면서 박완서 작가는 당신의 어머니가 차갑고 깔끔한 분이어서 한 번도 곰살궂게 군 적이 없었는데도 엄마의 말뚝에 적힌 그 이름이 자신에게 부드럽고 나직이 속삭이며 위무한다고 했다.


나중에 진짜 진짜 한참 나중에, 우리 엄마 이름인 기氣자와 숙淑자가 적힌 엄마의 말뚝 앞에서 불효가 이리 아프고 이별이 그리 고된 것이라는 후회를 남기지 않고 박완서 작가처럼 어머니의 부드러운 속삭임을 느끼려면 원망과 애증을 내 맘속 오지 저 끝에 잘 묻어두고 연민과 감사와 사랑만을 잘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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