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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Mar 25. 2022

기 드 모파상 - <의자 고치는 여자>


모파상이라는 유명한 소설가에게 '의자 고치는 여자'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모파상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게 '목걸이'밖에 없었다. 장편으로는 '여자의 일생'이라는 우리나라 아침드라마 같은 막장 이야기를 가진 소설이 유명하지만 애석하게도 완역본으로 읽어본 적은 없다. 


'목걸이'와 '여자의 일생' 모두 국민학교 5학년 무렵 학급 문고에 꽂혀있던 만화책을 본 것이 다였다. 줄거리에 급급한 어색한 그림체였다. 하지만 '여자의 일생'이 주는 막장급 스토리는 막 2차 성징의 서막을 준비하는 국민학교 5학년 여학생에게 어떤 자극을 주었음에는 틀림이 없었다. 나는 모파상에게 어떤 편견을 갖게 되었다. 



요즘에는 책모임 '책담'이 아니면 책을 읽지 않는 것 같다. '의자 고치는 여자'도 책담의 3월 선정 책이었다. '의자 고치는 여자'는 겨우 11페이지짜리 단편이다. 

'의자 고치는 여자'속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그저 의자 고치는 여자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난 남자아이를 사랑하게 되어 죽을 때까지 55년간을 그 남자만을 짝사랑한다. 그 남자 이름은 슈케. 슈케는 커서 약국의 약사가 되었다. 의자 고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부모 밑에서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교육도 받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부모가 죽은 후 주인공도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아 의자 고치는 여자가 되었다. 자신의 직업으로 인해 번 돈을 의자 고치는 여자는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고 족족히 모았다. 늘 슈케만 바라보고 슈케를 사랑하는 것을 사는 즐거움으로 느끼며 그렇게 살았다. 의자 고치는 여인은 자신의 전 재산 2300프랑을 유산으로 슈케에게 남기며 세상을 떠났다. 의자 고치는 여자를 혐오하던 슈케는 유산 2300프랑 이야기를 듣더니 돈과 여인이 남긴 마차는 당연한 듯 챙겼다. 반면 그녀가 남긴 다른 유산, 큰 개와 말은 외면한 채. 


단편 소설은 읽을수록 매력이 넘친다. 장편과는 다른 묘미가 있다. 장편이 주인공의 생각과 상념으로 작가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어찌 보면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삶에 대한 철학과 사고를 다지는 쪽이라면, 단편은 상황과 줄거리와 몇 가지 단어들로 에둘러 인생을 표현하는 쪽이다. 장편은 마치 한 권의 두꺼운 철학책을 읽은 것처럼 머리가 묵직하고 꽉꽉 채워져서 왠지 모를 충만함을 느끼게 된다. 단편은 장편의 긴긴 이야기를 한 몇 페이지 안에 욱여넣어서 줄거리만으로는 장편 한 권에 못지않지만 그 안에 작가의 생각이나 상념은 배제되고 철저히 상황과 줄거리와 묘사만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단 몇 페이지만으로 독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때로는 키득거리게 하고 가끔은 독자들의 뒤통수를 때리는지, 단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편만 읽는다고 하더니 장편 선호자였던 나도 그들의 취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동의의 작음 몸짓은 모파상의 '의자 고치는 여자'를 포함한 그의 단편선을 읽으면서 더욱 격해졌다. 

이 작품은 2020년에 연극으로도 각색이 되어 절찬리에 상연을 했다고 한다. 연극을 보지는 못했지만 연극 상연시간 90분에 상연 후 관객과의 토론이 있었는데 토론 시간이 거의 2시간이었다고 하니, 작품에 대한 개개인의 해석과 참견이 그만큼 다양했다는 증거 이리라. 


55년간 한 남자만을 , 아니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 의자 고치는 여자가 한 행위가 과연 사랑이기는 한 걸까? 의자 고치는 여자가 아니라 '의자 고치는 남자'였더래도 우리는 같은 느낌을 가졌을까? 작가는 왜 의자를 고치는 직업을 선택했으며 왜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을까? 


11페이지짜리 짧은 소설에 이런저런 의견과 토론이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연극을 보러 간 관객이나 책담에 함께 한 우리나 각자 생각이 있고 할 말은 많고 주장도 다양한 것은 마찬가지.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토론에 정답은 없고 해답이 있을 리도 만무하지만 토론의 두 시간은 지적 호기심과 말하고 싶은 욕구와 타인으로부터의 공감을 얻어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내가 빌린 책은 모파상의 단편 63편이 실린 아주 두꺼운 책이었다. 모파상은 살아생전에 약 300여 편의 단편을 남겼다고 한다. 63편은 그가 남긴 것 중 20%에 해당하는 것으로 액기스인 작품만 모아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수십 개의 짧은 소설이 그렇게나 다양하고 각양각색이다. 이 작품들은 사랑이야기, 공포와 환상 이야기, 전쟁의 경험당, 사회 상류층의 위선에 대한 풍자 등 한 작가 썼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다양하고 스펙트럼이 넓은 이야기들이다. 도대체 이 작가의 경험과 사고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기 드 모포상 단편선의 목차


여담 하나, 모파상은 남자인데도 여자가 주인공이거나 여자가 나오는 사랑이야기가 아주 많다. 그리고 18세기 문란했던 프랑스의 귀족이나 상류층의 밤 문화와 성생활 이야기가 소재로 많이 쓰였다. 표현이 은밀하고 주고받는 대사가 때론 노골적이긴 하나 대놓고 '난 야합네'라는 건 없는데 지하철에서 모파상의 사랑 이야기나 외도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주변의 시선에 눈치를 보고 내 몸이 국민학교 5학년 그때처럼 움찔해지곤 했다. '야한 것'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늙어버림을 탓해야 하나? 아직 청춘인 듯한 내 감성에 감사해야 하나? 


소설은 상상력을 동원한다. 영상이나 그림이 아니어도 충분히 야해질 수 있고 생각의 나래를 저만치 펼 수도 있다. 그러니 여러분, 소설을 읽자! 말초적이었던 우리 뇌와 몸이 더 은근해짐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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