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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May 12. 2022

최인훈 - <광장>


대한민국의 대표 소설인데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기에 독서모임 책담 39회 차 도서로 선정하였다.


'광장'은 1960년에 나온 소설이다. 소설 '광장'은 해방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남과 북은 이미 38선이 그어져 있고 서로의 왕래는 자유롭지 못하다. 주인공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를 두고 아버지의 친구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대학생이자 고뇌하는 지식인이다.



이명준은 남한에는 밀실 뿐이며 북한에는 광장 뿐인 지금의 이 현실에 상당한 불만이 있다. 밀실의 남한은 정치는 부패해가고 경제는 자본의 노예로 전락해 있으며 문화는 사대를 하면서 평론가들은 비평을 위한 비평을 해대는, 그러면서 밀실에서는 상류층의 욕심과 욕망이 넘실대는 곳이다.


북한은 어떤가? 광장은 있으나 광장의 목소리는 없다. 온통 한 목소리 한 울음뿐이다. 밀실이 없어서 개인의 생각과 고뇌가 담보되지 않은 광장의 한 목소리는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인형극 속 인형들에 불과하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이명준은 행동하기보다는 단지 고뇌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이명준은 남한의 지하 공작실로 잡혀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고문에 나약해진 명준은 광장을 찾아 북한으로 떠난다. 하지만 북한은 명준도 익히 상상했듯이 '인민을 위한 민주주의'는 부재한 곳이었다. 왜 북한엘 왔을까, 후회하며 일상을 보내는 중 은혜라는 이름의 발레리나를 알게 되어 그녀를 만나는 낙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터진 6.25 전쟁. 그 전쟁에 종군 간호사로 온 은혜는 폭격으로 사망해 버리고 명준은 포로로 붙잡히고 만다.


전쟁 포로 송환 면접에서 명준은 아버지가 있는 북한도 아니고 원래 살던 남한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한다. 밀실만 넘치는 남한도 싫고 광장만 이글대는 북한도 싫었다. 남한의 장교와 북한의 장교가 서로 자기네 나라로 오라고 유혹을 하는데도 명준은 꿋꿋이 중립국을 선택하고 인도로 가는 배를 탄다.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인도로 가는 배 안에서도 다른 중립국을 선택한 포로들의 대표 격으로 선장과 면담하면서 가깝게 지내게 된 명준. 이런 명준을 다른 포로들은 명준이 혹여 다른 의견을 내는 건 아닌지, 제 혼자만 이득을 취하는 건 아닌지 의심을 한다. 명준은 또다시 경계에 서 있게 되었다.


배 안에서 계속 명준을 따라다니는 검은 그림자와 갈매기, 그것은 명준이 만들어 낸 허상과 착각이었지만 명준은 자신이 버린 은혜 같기만 하고 은혜의 뱃속에 있던 자신의 분신 같기만 하다.


밀실이든 광장이든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늘 경계에서 불안과 불만을 갖고 있던 명준, 인도로 가는 배 안에서도 처지는 마찬가지. 갈등하고 고뇌하던 명준은 자신만의 광장인 바다로 뛰어들며 스스로 자유를 선택하였다.



저자 최인훈은 28세의 나이에 이 소설을 써서 발표하였다. 그때의 28세는 지금의 39세쯤 될까?

작품을 읽어 보면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이 그야말로 명문이다. 아무리 신문기자라는 글팔이 직업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어찌 이리 쓰는 글귀마다 가슴을 울리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글귀를 영글 수 있을까! 감탄스럽고 무지하게 부럽다.


저자는 서문에서 60년의 뜨거운 시대상과 거리의 나부끼는 자유를 향한 갈망이 없었더라면 이 소설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4.19를 끝내고 대한민국은 이제 자유와 민주를 향한 발걸음만 있는 줄 알았다. 그때 이 소설이 발표된 것이었다. 불과 몇 달 뒤 군인들이 민중이 쟁취한 자유와 민주를 짓밟고 농락하고 마는데 간발의 차이로 소설의 발표가 늦어졌더라면 <광장>은 발표되기는커녕 작가는 아마 남영동 지하 대공분실에 끌려가서 간첩으로 감옥에 갔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작가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나이다.


소설에 묘사된 당시 남한의 밀실에 대한 부분.

정치-썩어빠진 정치권력은 더 많은 권력을 위해 밀실에서 야합하고 부패하고 민중을 바보로 만들고.

경제-한 푼이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해 사람을 속이고 가짜로 도배하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본의 노예가 되고.

문화-사대주의에 찌들어 잘난 것을 잘난 체하기 위해 제대로 된 비평은 없이 찢어 발리기 위한 말들만 난무하고.


이런 묘사들은 군인들 세상에서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것들이었기에 작가는 '운이 좋다'라고 나는 말하는 것이다. 시대의 좋은 운을 타고 나 한번 이미 출판된 것이라 어찌어찌 명맥을 이어 오늘날까지 수십 쇄를 거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설이 되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광장> 안의 이명준이 답답하였다. 남한의 밀실을 비판만 하였지 '거리의 나팔수'노릇은 하려고 하지 않았다. 정치권력들이 거리의 나팔수를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기에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변명을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행동하지 않고 말만 늘어놓는 전형적인 학삐리 같은 느낌이 들어 주인공을 지지할 수 없었다.


지난달 내가 이 책을 읽고 이 책에 대하여 토론할 즈음, 우리나라는 20대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었다.

저마다 지지하는 후보에 대하여 근거를 갖고 누군가는 설득을 시도하고 누군가는 험담을 시도했다. 평소에는 친한 사이인데도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반목하고 질시했다. 그 속에 나도 있었다.


몇 번 이야기하니 토론과 토의는 전혀 되지 않고 고성과 불통만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나는 자유와 민주가 이제 대한민국에서 제자리를 찾아갔고 쑥쑥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똑같은 크기의 부피만큼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이들도 많이 있었다. 몇 번의 이야기 끝에 나는 포기했다. 이제는 군인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프레임과 이데올로기에 사람들이 모두 자신만의 밀실에 갇혀 있는 모양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 그 군인들은-지금은 다른 모습일 테지만- 결국 성공한 것인가. 우리의 광장은 너무나 다른 목소리들로 가득하다.


오늘 대통력 취임식이 있었다.

밀실과 광장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오늘 이후로 다시 밀실이 더 많아질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스며든다.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슬픈 예감은 거의 들어맞더라.


오늘, <광장>을 쓰면서 이명준의 심정이, 아무것도 안 하면서 비평만 하던 이명준이 이해가 되려고 한다. 이런 오늘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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