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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May 26. 2022

다이허우잉 - <사람아 아, 사람아!>

21년 만이다. 이 책을 다시 손에 쥔 것이.


중국 현대 문학의 거장 다이허우잉의 역작 '사람아 아 사람아!'가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되어 출판된 것은 1991년,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이다.  1989년 소련이 붕괴되고 중공에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공산 국가의 문화들이 조금씩 국내에 소개되었는데 이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도 그중 하나였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대학가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필독서 목록에 올랐다. (대학가뿐만 아니라 일반 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도 나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졌다.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선물로 사주기도 하였다. 독서 토론의 단골 책이 되었다. 우리 동아리에서도 드디어 이 책으로 독서 토론을 진행하였다. 나는 선배들이 사라고 해서 이 책을 샀고 선배들이 읽어오라고 해서 읽어갔으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고 해서 감동받은 척 몇 마디를 한 것 같다.


분명 21년 전에 다 읽고 토론까지 한 책이었는데 세월이 한참 지난 뒤 다시 보니 연두색 책 표지만 기억이 날뿐 그 외의 것은 도무지 기억에 없다. 지금 내가 본 '사람아 아 사람아!'는 완전히 처음 대면한 새로운 책이었다. 1991년에 '사람아 아 사람아!'는 내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사람아 아 사람아!'는 중국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그것을 겪어낸 주인공과 주인공 주변 인물들의 신념, 이상, 우정, 사랑에 대하여 각각의 인물들 시점으로 쓴 다 인칭 소설이다. 주인공 쑨위에는 작가 다이허우잉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면 작가가 겪었던 많은 사실들이 소설 속에 녹아있다. 작가는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관계란 어떤 건지 고민을 많이 하였던 듯하다. 그러면서 사람에게서 상처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이런 작가의 고민과 사고가 소설을 통해서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쑨위에 - 여자 주인공. 대학 중문학부 총지부 서기.

허징후- 남자 주인공. 쑨위에를 사랑한다. 쑨위에와 대학동기

자오젼후안 - 쑨위에의 전 남편. 쑨위에의 친구이자 대학동기. 문화대혁명 당시 쑨위에를 비판하고 이혼

쉬허엉종 - 쑨위에의 대학 동기. 홀아비로 쑨위에와 결합을 꿈꾼다.

쑨한 - 쑨위에와 자오젼후안의 딸. 15살 소녀

씨리우 - 당위원회 서기. 전형적인 기득권

리이닝- 쑨위에의 이웃 여자. 이상보다 현실을 택함.

쳔위리 - 씨리우의 부인. 씨리우만큼 속물적인 인물

소설가 - 쑨위에의 대학 동기이자 소설가

요루어쉐이 - 쑨위에의 대학 동기

씨왕 - 씨리우의 아들이자 허징후를 존경함. 젊은 세대를 표상하는 인물

란씨앙 - 자오젼후안의 두 번째 부인.

뚱뚱보 왕 - 자오젼후안의 직장 상사이자 란씨앙의 정부


모두 다 대학 동기이자 친한 친구들이었는데 문화대혁명이라는 전무후무한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문화 획일주의 사상운동을 거치면서 인간애는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공격해야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친구는 온데간데없고 생존만이 남았다. 문화대혁명이 지나고 난 소설 당시 기준의 지금도 그 여파는 남아있어서 인간애는 사라지고 오로지 당의 지령, 당의 정신만 남았다. 과연 무엇인 인간 해방이며 노동 해방인가?

작가는 이런 강한 의문을 가졌고 그것이 소설로 승화되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대개 40년대에 태어나 6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문화대혁명이 한창 진행될 때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을 보냈으며 소설 속 현재인 80년에는 40대가 되었다. 이들은 한때 젊었을 때는 세월의 모진 풍파도 견디고 이기며 젊은 청춘을 불살랐지만 어느덧 그들의 말도 10대인 쑨한과 20대인 씨왕에게는 기성세대가 내뱉는 일설일 뿐이다.


허징후는 씨왕에게 '역사의 책임만 있을 뿐 역사의 부담은 없다'라며 고단했던 자신의 과거에 비해 그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씨왕은 "앞 세대는 다음 세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주었나요? 부모는 자식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주었습니까?"며 젊은이를 미완성의 인간으로 대하는 기성세대가 못마땅하다.


쑨한은 자신을 늘 '아직 어린 주제에'라고 생각하는 엄마를 향해 마음으로 일갈한다.

"책에는 오이씨를 뿌리면 오리가 나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난다고 씌어있었다. 나는 무엇을 뿌렸지? 아무것도 뿌리지 않았어. 어른을 따라서 걸어온 것뿐이야. 그런데도 내 바구니에는 벌써 쓴 오이들만 가득해. 너무 무거워서 들 수조차 없어. 그런데도 갑자기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는 거야. 마치 내가 역사에 대해 나쁜 짓이라도 한 것처럼."


나는 이 책을 이번에 새로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칭송해 마지않는 휴머니즘과 인간애보다 씨왕과 쑨한의 이 말들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 나는 벌써 역사에 책임도 있고 책임을 진 현재의 역사에 대하여 부담도 지고 있는 기성세대이지만 왜 자꾸 젊은이들이 애처롭게 느껴지고 그들에게 시선이 갈까? 내가 아직 미성숙되었나? 아니면 스스로 역사에 대하여 책임과 부담이 없다고 느끼고 있는가?


소설의 엔딩은 희망적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정치 현실을 보면 과연 씨왕과 쑨한은 그들 부모 세대를 향하여 고마움을 느낄 것인가? 원망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생활만 살아가고 있을까?


소설의 결말은 소설 속에서 끝나지만 현실의 역사는 끝이 없이 계속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다.

얼마 전 과거보다 더 후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역사의 책임을 지고 있는지, 역사의 부담을 안고 가는지, 씨와와 쑨한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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