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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Feb 05. 2023

나이 오십과 오십견

지난 연말부터 어깨가 삐그덕거렸다. 코로나가 오면서 운동을 멈추게 되었는데 집합 금지가 풀렸는데도 운동을 다시 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의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 어느 학자는 매일 무언가를 하는 습관을 들이는데 66일이 걸린다고 하던데, 2020년 2월 이후 거의 천일이 지나고 나니, 운동은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대단한 과업이 되고 말았다.

천일을 지나는 동안 나는 어언 오십 줄이 넘은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다.


오십 줄 넘은 중년의 아줌마와 운동 부족을 사랑의 작대기처럼 연결을 해보면 몇 개의 만남이 나온다.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무릎 관절 통증, 오십견.

나는 이 중에서 오십견과 만났다.


지난가을즈음부터 웃옷을  갈아입을 때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왔다. 그때는 생각했다 아, 잠을 잘못 잤나 보다!

잠자리에서 자세를 신경 써서 잠을 자도 어깨는 삐그덕거렸다. 급기야는 머리를 감을 때도, 드라이기를 사용할 때도, 바닥에 물건을 집을 때도, 녹슬고 기름칠이 덜되어 이빨이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내 어깨는 팔과 연결된 부분이 어긋난 듯 팔을 들어 올릴 때마다 삐그덕거림과 함께 이를 악무는 통증이 찾아왔다.


한 번은 자리가 없는 지하철을 탔다. 한 손엔 책을 들고 있었고 어깨가 아픈 오른손은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지하철이 갑자기 끼익-하고 섰다. 몸이 휘청거리며 손잡이를 잡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어깨와 팔이 주욱 늘어났다. 원래는 부드러운 관절이 팽창을 해야 하는데 내 어깨는 그 기능을 상실했는가 보다. 순간 어깨에서부터 시작된 통증이 손가락 끝까지 찌릿하고 전해졌다. 팔에 힘이 빠졌다. 그만 손잡이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넘어질 뻔한 몸을 겨우 추슬렀다. 하지만 힘이 빠진 어깨와 팔은 감각이 돌아오기까지 몇 정거장을 더 가야 했다. 읽던 책은 가방에 넣어야 했다. 멀쩡한 왼팔이 손잡이를 잡아야 했다.


이렇게 살 순 없었다. 병원에 갔다. 정형외과와 재활의학을 같이 보는 곳이었다. 사진을 찍고 초음파를 했다.

"병명이 뭔가요?"

"회전근이 조금 찢어지긴 했지만, 더 심한 건 오십견입니다."

"오십견이요? 그건 나이 든 사람한테 주로 오는 거 아닌가요?"

"네 보통 환자분 나이부터 여성분이 많이 걸리지요." 

"원인이 뭔가요?"

"특정한 원인이 있는 건 아니구요, 나이 들면서 어쩔 수 없이 걸리는 거지요."

"아, 나이요?..."


젊은 의사는 내 어깨가 너무 많이 굳었다고 했다.

좀 더 빨리 오시지, 의사의 안타까워하는 말이 진료실에 떠돌았다.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도 어깨를 움직이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하면서 2주간 집중적으로 도수치료받기를 권유하였다.

커다란 주삿바늘이 내 오른쪽 어깨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나을 수만 있다면 이까짓 통증쯤이야. 나는 눈을 감고 입을 앙다물었다.


도수치료실엔 더 젊은 치료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워보세요"

어깨에 총상을 입은 군인처럼 어깨를 쥐고 조심스럽게 누웠다.

조심스러운 나와는 달리, 젊은 치료사는 그때부터 내 어깨와 팔을 떡이 되려고 누운 쌀반죽처럼 다루었다. 꾹 꾹 누르다가, 조물조물 주무르기도 하고,  길게 늘였다가, 이리저리 들어 올리기도 했다.

나는 부드러운 어깨를 위해 신음을 감추며 통증을 참았다. "아파도 계속 운동하셔야 해요." 이렇게 말하는 더 젊은 치료사는 이 아픔을 진짜로 알고서 저런 말을 할까?


낮은 신음만을 내뱉던 중, 갑자기 총 맞은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아악~!!!"

젊은 치료사가 내 팔을 위로 더 높이 올리려고 최선의 힘을 주고 꽉 눌렀다. 굳어버린 내 어깨는 젊은 힘을 강하게 거부했다. 그리고 젊은 힘에 힘껏 부응하려던 내 마음도 배신했다.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찔끔 삐져나온 눈물이 아니라 그야말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왈칵 쏟아진 눈물이었다.

내 몸인데, 내 몸 하나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하다니. 이게 나이 듦이라는 건가. 이게 바로 늙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번 해방된 눈물은 주책맞게 계속 자유를 누리려 하였다.


서러웠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나 정도면 아직 젊어 보인다며, 친구들끼리, 가족들끼리 서로 덕담을 주고받고 자신감을 내보이곤 했는데, 벌써 내 몸 하나 내 맘대로 못 부려먹는 신세가 되고 말다니!

서러운 것은, 어깨가 증명하는 것처럼 나는 이제 나이 오십이 넘은 중년의 아줌마이며, 이제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의욕은 아직 삼십 대의 그것 못지않은데 몸만 의욕과 열정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멍청한 몸 같으니라고. 주인이 계속 우쭐대고 열정을 드러낼 수 있게 충성을 다해야 하지 않니?


치료를 끝내고 눈물을 찍어 누르면서 어깨를 토닥거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깨가 많이 혹사당한 것 같았다. 젊은 의사는 오십견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발병이며, 나이 듦에 따른 병이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내 어깨는 과다 사용과 오용에 따른 발병인 것 같다. 그리고 운동을 게을리 한 어깨에 대한 애정 부족도 한몫 거든 게 틀림없었다.

내 오십견은 나이 오십과 상관없는 발병이라고, 과다 사용과 오용 그리고 애정 부족 때문에 생긴 순간적 현상이라고 굳이 스스로에게 다독이면서, 다음번 도수치료를 예약하고 병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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