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투리 에세이
올해는 남편이 회사에 다닌 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장기근속을 축하하고 장려하는 의미에서 근속 10년, 20년, 25년, 30년째 되는 해는 원래 있는 휴가 외에 추가로 휴가를 열흘 정도 더 준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추가 휴가가 주어지는 김에 코로나도 완화되었으니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다녀오자고 했다.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남편은 업무 일정 상 12월 성탄절 즈음이 장기 여행을 하기엔 가장 좋다고 하였다. 우리는 여행을 위해 같이 머리를 맞대었다.
남편: 북유럽 가고 싶다.
나: 그 추븐 겨울에 북유럽이 웬 말이고? 치아라.
남편: 프랑스나 스페인 함 더 가까?
나: 크리스마스에 뭐 하러 유럽을 가노? 가게 문도 다 닫고 사람들도 다 휴가 가고 암 것도 엄쓸 건데!
남편: 그라믄 방콕이나 베트남 어떻노? 보자, 연말 동남아 비행기 삯이 인당 100만 원 정도 하네.
나: 미칫나? 동남아를 그 돈 주고 가구로.
남편: 싱가폴 경유해가 베트남 외곽으로 가서 관광지 가믄 좀 싸다. 우짤래?
나: 연말에 편하게 휴양을 해야지 청춘도 아이고 경유 몇 군데씩 하자고? 되다. 힘들다.
나의 계속되는 딴지에 남편이 버럭 화를 내었다.
남편: 허벗다. 허벗어! 여행을 가자는 기가, 말자는 기가? 치아라 고마.
이렇게 연말 해외여행 계획은 잠정적으로 물 건너 갔다는 후문이다. ㅜㅜ
*허벗다: 망했다, 끝장 났다.는 의미를 가진 경상도 사투리. 허벗다와 "고마 치아뿌라!"는 거의 한 세트로 사용되는 편이다.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은 자율학습이 아니었다. 아프지 않다면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 야간자율학습, 즉 야자였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대학을 갈 거든 포기할 거든 간에 무조건 하는 것이 야자였다. 80년대 중 고등학교의 자율이란 이런 것이었다.
나와 내 친구 무리는 썩 모범생이 아니었다. 우리는 아주 가끔씩 눈치껏 야자 시간에 띵땅치고 학교 앞 분식집으로 헤쳐 모여 떡볶이나 라면 한 그릇 때리는 낙으로 야자를 버텼다.
그날 나는 저녁 도시락이 조금 부실했다. 야자가 시작됐는데 집중이 안 되는 거였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있는데 짝지가 말을 걸어왔다.
"홍월아, 배 출출 안 하나? 우리 요 앞 가게 가가 라면 한 그릇 안 할래?"
짝지의 말은 배고파 어슬렁거리던 호랑이에게 멧돼지 한 마리가 걸어오는 것 같은 기분의 말이었다. 나는 그날 야자를 째기로 결심했다.
나와 짝지는 같이 사라지면 담임에게 걸릴 수도 있으니 시간차를 두고 나가기로 하고 작전을 짰다.
1. 내가 먼저 가서 분식집에 라면 두 그릇을 시킨다.
2.라면이 다 끓어 나온다.
3. 내가 먼저 먹기 시작한다.
4. 내가 반쯤 먹을 시간에 짝지가 분식집으로 온다.
5. 같이 먹는다.
6. 짝지 라면이 반쯤 남았을 때 다 먹은 나는 교실로 돌아온다.
7. 라면을 다 먹은 짝지도 자리로 돌아온다.
이렇게 하면 같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5~7분 정도여서 담임에게 들키더라도 적당히 둘러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라면을 주문하고 초조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젓가락을 들고 단무지를 씹어댔다. 단무지를 세 개째 먹었을 때 라면 두 그릇이 나왔다.
'짝지가 어서 와야 되는데. 라면 다 부는데'
라고 생각하며 라면을 두 젓가락쯤 먹었을 때였다.
분식집 문이 탁하고 열리더니 짝지가 문 앞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니 빨리 와서 라면 무라. 거 서서 뭐하노?"
내가 말했다. 그때 짝지는 이렇게 말했다.
"가쓰나야, 니 라면 묵으러 여 온 거 담임한테 데등키따! 담임이 지금 당장 니 델꼬 오란다. 지금 바로 가면 화장실 청손데 라면 다 묵고 이따가 가믄 빠따 때릴거라드라. 고마 가자."
그날 나는 담임한테 야자짼 거 데등키갖고 라면을 반도 못 묵고 내 라면 값이랑 짝지 라면 값까지 물어주고 나와야 했다.
*데등키다: 들키다.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