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회사 다닐 때 출장 가서 외국 손님을 만날 일이 종종 있었다. 그들과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대화의 소재로 오르게 마련이었다. 서로가 "How old are you?"라며 묻고 나이를 주고받았다. 이때마다 나는 꼭 뒤에 사족을 붙이곤 했다. "I'm 00 years old and it's Korean age."
내가 대답을 이렇게 하면 상대방의 반응은 하나같이 똑같았는데 그 놀라는 표정을 봤었어야 한다.
"What? What's the Korean age? Do you have any special sytem for aging?"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대체 한국 나이가 뭔지, 만 나이로 하면 내가 몇 살인 건지, 도대체 왜 그렇게 하는지 질문이 연달아 나오곤 했다.
조선 말기 한국을 방문한 퍼시벌 로웰이라는 학자는 우리나라의 나이 계산법을 듣고는 '초자연적으로 나이를 먹는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니 나의 외국인 손님의 놀란 표정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Korean age에 대하여 세계는 일말의 지식도 없었다. 그래서 나이가 대화의 화두에 오르면 나는 꽤나 많은 질문을 받았다. 지금은 한국의 문화가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 글로벌 해져서 K-Culture, K-Idol, K-Drama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은 한국식 나이 문화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우리의 문화가 이렇게나 많이 알려졌다니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식 나이와 만 나이가 계산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동서양이 태아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동양은 태아를 생명으로 보고 뱃속 10달을 1살로 보고 있는 반면 서양은 태아가 세상 밖으로 나온 그 순간부터 생명으로 간주하여 태어나면 0살이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 중국, 베트남, 일본 심지어는 이슬람 국가들도 우리처럼 나이를 세었다.
그러던 것이 중국은 문화대혁명을, 일본은 메이지유신 무렵,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를 거치면서 연 나이 방식을 폐지하고 서양처럼 만 나이로 통일하여 쓰고 있다. 그래서 현재 세는 나이를 계산하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 1962년부터 모든 공식 나이를 만 나이로 쓸 것을 공포하였고 이후로 우리는 웬만한 서류에는 다 '만 00세'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관습이라는 게 참 무서워서 대통령이 공포까지 한 내용임에도 우리 국민들은 지금까지 서류에는 만 나이를 쓰지만 일상생활에서는 한국식 나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부터 만 나이를 쓰라고 지침을 했음에도 어기고 지금까지 잘 쓰던 한국식 나이가 오히려 요즘 들어 생활에 불편을 야기한다며 이런저런 불평이 나오고 있다. 2018년에는 청와대 국민청원사이트에 만 나이를 쓰자고 청원이 올라올 정도였다. 실제로 한국리서치가 2021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민의 70%가 만 나이를 사용하는 것에 찬성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20대 대통령 인수 위원회는 인수위를 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 나이'로 사회적 법적 나이를 통일하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발표까지 하였다. 만 나이가 인수위 초기부터 발표할 만한 그리 급한 일이었는지 조금 아리송했지만.
중학생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이 때문에 문득 궁금증이 인 나는 엄마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 우리는 와 태어나면 바로 1살이고? 외국에는 태어나면 0살이라 카든데!"
"외국에는 얼라가 태어나믄 0살인강? 쑤앙(참) 쌍놈들 아이가! 뱃속에서 다 커가 나오는 얼라가 와 0살이고?"
"숫자 세알릴 때(셀 때) 0 1 2 3 이렇게 한다 아이가. 그래서 시작이 0부터 해야 되는 거 아이가?"
"아무것도 없던 기 씨앗이 되고 그 씨앗이 에미 양분을 빨아 묵고 쑥쑥 커서 거진 1년을 채워가 나오는데 그기 우찌 0살이고? 1살로 치주야지!(쳐 주어야지). 뱃속에서 꼬물꼬물 꿈직 거리면서 '내 여 있다'카는데 그것도 목숨이라 1살이라 해야지."
이때 나는 국민학교도 못 나온 엄마가 부처님처럼 큰 사람 같았다.
결혼해서 임신을 하고 임신육아 백과를 보았다. 태아의 성장과정을 설명해놓은 데 보면 태아는 9달 270일을 뱃속에 있다고 되어 있었다. 나는 분명히 열 달 엄마 뱃속에서 아이가 자란다고 알고 있는데 모두 270일란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9 months라고 한다. 우리는 왜 열 달이라고 할까? 태어나면 왜 1살이 될까? 궁금증이 또 일었다.
그때 내 궁금증을 풀어준 책이 있었다. 어떤 여자 산부인과 의자 선생님이 쓴 책이었는데 아쉽게도 제목과 저자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을 하는 게 신기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태아의 나이를 셀 때는 기준부터가 서양과 다르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착상되고 생리가 있어야 할 생리 예정일부터 임신일을 카운팅하고 그때부터면 270일 전후에 출산을 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부부가 합방을 한 그날부터 임신을 카운팅한단다. 합방을 하고 정자와 난자가 만나고 수정되기까지 약 3일, 수정을 하고 나팔관을 지나 자궁에 도착하여 착상을 하기까지 약 7일, 대충 보름 정도를 여유 날짜로 둔다고 하는데 이 기간까지 넉넉하게 고려해서 임신은 열 달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생아의 백일잔치를 챙기는 것도 거의 우리나라가 유일한데 이 백일잔치 또한 기가 막힌 생명 존중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이가 태어나서 백일째 되는 날이 아이가 착상된 지 일 년이 되는 날이라서 한마디로 아이가 착상된 후 1년째 되는 첫 번째 생일잔치를 하는 것이 바로 백일잔치라는 것이었다. 착상부터 출산이 대략 270일+100일이면 370일이다. 이 기간은 일 년 365일과 아주 유사하다. 이 책에 씌여진 이 이야기를 읽고서 나는 태어나서 먹는 1살의 나이와 백일잔치의 의미가 아주 남다르게 느껴졌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태교를 아주 중요시하였다. 뱃속의 아이도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엄마와 탯줄로 바로 연결된 생명체라서 자녀 양육을 뱃속에서부터 시작을 한 것이었다.
태교의 중요성을 알고 어느 사대부 여성이 펴낸 책이 있다. 이름하여 <태교신기>. 이 책을 펴낸 사람은 조선 후기 여성으로서 실학도 공부하여 당대의 선비들에게도 칭송을 받은 사주당 이씨라는 여성인데 사주당 이씨가 펴낸 <태교신기>는 세계 최초의 태교 전문서적이다.
뱃속의 자식과 어머니는 혈맥이 붙어 이어졌으니 (어머니가) 기쁘며 성내는 것이 자식의 성품이 되고...
-태교신기 4장-
<태교신기>에서는 스승의 십 년 가르침보다 어미의 열 달 기름이 더 낫고 어미의 열 달 기름보다 아버지의 정심(正心)만 못하다. 고 했다. <태교신기>는 어머니의 일방적 희생을 강조하지 않고 아버지의 올바른 마음가짐 몸가짐에 전 가족 구성원의 몸가짐 마음가짐과 산부에 대한 배려를 더욱 강조하였다. 가부장적인 조선사회에서 새로운 태교의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고도 할 수 있는 책이었다.
우리는 예부터 태아의 생명에 대하여 깊이 고찰하였고 그래서 태교라는 개념도 탄생시켜 발전시켜 왔다. 최근 일부에서는 태교가 그저 똑똑한 아이를 낳기 위한 억지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는 것으로 오인되어 태교는 필요 없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태교를 그저 좋은 것만을 취하는 것으로 잘못 와전된 것이 아닐까 한다.
오히려 지금 서양에서는 태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여러 연구가 진행되어 왔는데 1997년 미국의 피츠버그 대학팀에서는 "인간의 지능지수를 결정하는 데 유전자의 역할을 48%이고 태내 환경이 나머지 52%를 차지한다"를 연구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 연구는 자궁 내 환경에 영향을 주는 충분한 영양공급, 편안한 마음, 유해 물질 차단 등이 선천적인 IQ 지수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하였다.
미국 국립어린이병원이나 영국의 에든버러 대학에서는 임신 중 어머니의 스트레스가 태아의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얼마 전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들 서양의 연구들은 이제서야 태교가 중요하며 엄마의 뱃속에 있는 태아도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 것이다.
요즘 논의되고 있는 한국식 나이와 만 나이 논쟁은 바쁜 현대 사회에 익숙하고 사는 데 더 효율적인 것을 생각하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옛 문화 중에는 전통도 있고 인습도 있는데 편리와 효율을 우선시하면 한국식 나이도 인습이라고 생각될 수 있을 것 같다.
혹자는 전 세계에서 한국만 이런 방식으로 나이를 센다. 글로벌하지 않다. 헷갈린다. 나이에 따른 사회적 낭비가 있다.는 근거를 댄다. 하지만 한국만 이런 방식을 쓰는 게 한국식 나이를 버릴 이유는 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생명을 존중하는 독특한 우리 문화를 지금의 K-Culture처럼 다른 문화에 전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그들이 이유를 알면 먼저 존중을 할지도 모른다.
출장에서 만난 외국 손님에게 한국식 나이 세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을 때 대부분의 반응은 신비롭다, 놀랍다, 설득력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문화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고루하고 빛바랜 방식일 수도 있으나 알고 나면 서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잘 살아오지 않았는가? 일상생활에서 한국식 나이 만 나이 때문에 뭐 그리 크게 손해나고 불편하였을까. 세상에는 그것보다 더 불편하고 개선해야 할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가 더 많은데.
구식이라고 뭐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한국식 나이가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