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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Mar 19. 2023

쌀뜨물을 받으면서

어릴 적 겨울반찬에 대한 추억

주말이 시작되는 아침, 밥을 했다. 주말 내내 먹을 거라 제법 많은 양의 쌀을 밥솥에 부었다. 보통이라면 쌀과 잡곡쌀을 섞어 밥을 짓지만, 때마침 잡곡이 똑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실로 오랜만에 뽀얀 햅쌀만을 가지고 밥을 지었다. 

사람이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물로 먼저 헹구고 들어가듯이, 메마른 하얀 쌀을 먼저 얕트막하게 물에 담가 초벌로 쌀을 일렁일렁거리며 씻겼다. 그러곤 촉촉하니 젖은 쌀을 손으로 빡빡 문때 가며 때를 벗기듯 쌀을 씻겼다. 어느새 밥솥에는 쌀에서 새어 나온 우유 같은 뽀얀 물이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밥솥에 물을 더 받았다. 뽀얗게 삐져나온 물은 이제 막걸리 같고 하얀 매일 우유 같은 색을 띠었다. 쌀뜨물이 된 것이다. 

잡곡 때문에 시커머리한 쌀뜨물만 보다가 막걸리 같은 뽀얀 쌀뜨물을 보니, 어린 시절 겨울철 우리 집에서 단골로 끓여 먹던 국이 생각이 났다. 국 이름은 '뜨물'이었다. 

 



"내일 아침 국은 뭐꼬?"

할머니가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는 얕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글케요, 국 끼릴 만한 기 없는데. 어무이, 시락국 또 끼릴까요?"

"시락국? 어제오늘 연속으로 안 뭇뜨나? 국 끼릴끼 음나?"


겨울철엔 반찬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요즘처럼 계절 가리지 않고 온갖 야채며, 과일들이 아무 데서 사던 시절도 아니었다. 겨울 반찬은 정해져 있었다. 

초겨울 일찌감치부터 해놓은 김장김치, 커다란 무를 듬성듬성 자른 동치미, 곱창 김 한 속, 생생한 파래로 만든 파래무침, 널어놓은 무청시래기, 배추시래기로 끓인 시락된장국은 우리 집 단골 겨울 반찬이었다. 먹을 것 없던 시절이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단조로운 반찬이라도 우리 집 식구들은 불평이 없이 묵묵히 밥 한 공기씩을 뚝딱 비워냈다. 

아니, 비워냈다는 표현은 잘못 됐다. 이렇게 단조로운 식재료를 가지고 아주 맛깔나게 요리를 한 엄마 덕분에 우리 집 식구들은 아주 맛있게 식사를 챙겼다. 


하지만 가끔은 새로운 반찬을 원할 때도 물론 있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아주 곤욕이었으리라. 나도 엄마가 되고 주부가 되고 보니, 삼시 세끼 밥상 차리는 노동이 그 어느 가사노동보다 고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겨울에는 꼭 국물이 있어야 했다. 할머니가 살아계시기도 해서이지만, 아버지도 뜨끈한 국물을 한 사발 들이켜셔야 하루의 고된 노동을 견딜 수 있었나 보다. 두 분은 겨울 아침에는 꼭 국물을 주문하였다. 

시래기와 단배추와 신김치로 번갈아 된장국을 끓여대다가 만드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 지겨워지면 우리 엄마는 '뜨물'을 만들어 국으로 내었다. 겨울 밥상에 '뜨물'이 국으로 나오면 식구들도 지겨운 시락국 대신 새로운 아이템이 밥상에 올라오니 즐거워하며 '뜨물'을 한 술씩 떴다. "어~ 구수하다!"라고 한 마디씩을 하면서. 


여기서 말하는 '뜨물'이란 바로 쌀뜨물을 말하는 것이다. 

하연 쌀을 빨래 치대듯 빡빡 치대서 하얀 물이 나올 때까지 치댄다. 쌀 부피만큼의 물을 부어서 곰국이나 막걸리보다도 더 뽀얀 흰 국물이 만들어지면 그 물을 냄비에 따라낸다. 이렇게 만든 쌀뜨물은 농도가 아주 진하다. 진한 쌀뜨물 원액에 냄비가 가득 찰 만큼 물 더 부어 온 가족이 먹을 만큼 분량의 만든다. 쌀뜨물이 든 냄비를 팔팔 끓인다. 다 끓인 쌀뜨물을 국그릇을 담아 밥과 함께 상에 낸다. 우리는 이렇게 끓여 낸 국물을 '뜨물' 혹은 '뜬물'이라고 했다. 


별것 아닌 하얀 쌀뜨물인데도 국물을 한 입 가져가 마시면 구수하고 고소하고 시원한 맛이 입 안에 퍼졌다. 기름기가 없는, 깊이 우려낸 사골곰국 같은 맛이었다. 그래서 아침에 엄마가 '뜨물'국을 끓이고 있으면 그 구수한 냄새에 나도 모르게 부엌에 들어가 코를 큼큼거리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오늘은 '뜨물'이가? 맛있겠다!"

그러면 엄마는 '뜨물'이 맞다며, 밥을 많이 하고 있는 힘껏 쌀을 치대서 오늘은 '뜨물'이 더 맛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진짜로, 엄마가 더 힘이 많이 줘서 쌀을 치대서 만든 '뜨물'은 훨씬 더 고소하고 깊은 맛이 있었다. 


어린 나는 공장 폐수가 흘러나와 섞인 고향의 하천에 섞여버린 색 같은 시락국보다 뽀얗고 고소한 '뜨물'이 훨씬 더 맛있었고 반가웠다. 어른들은 시락국을 더 좋아했지만 나는 된장의 구수함을 알기엔 혀가 덜 여물었던 국민학교 저학년의 나이었다. 

'뜨물'국은 한참을 더 먹었다가 아마 할머니가 돌아 기시고 나서부터인가 차츰 우리 집 밥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뜨물'국이 할머니 취향이었는지, 그냥 세월이 흘러 살림살이가 나아져서 다른 재료를 더 구할 수 있게 되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한동안 나도 '뜨물'국을 잊어져 갔다. 



나는 70~8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 일반 가정 대부분이 '뜨물'을 국으로 먹을 줄로 생각했다. 

한참 세월이 지나 취직을 하고 제법 경력이 쌓이고 난 후 회사 사람들과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옛날 음식, 추억의 먹거리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나는 "'뜨물'도 참 맛있었잖아요? 난 참 좋아했는데."라고 말했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정말 단 한 명도 빼먹지 않고 모든 사람이-일제히 나를 보면서 말했다. 

"뜨물이 뭔데? 그런 것도 있었나?"

나는 쌀뜨물국 이야기를 하였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이-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더 많았다-입 모아 한결같이 말했다. 

"에이, 그거는 아니다. 아무리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 해도, 쌀뜨물까지 국으로 먹었단 말은 처음 들어본다. 자네 기억이 뭔가 잘못된 거 아니가? 우린 못 믿겠는데. 그럴 리가 없다. 머리 털나고 처음 듣는다."


내가 아무리 우리 집은 '뜨물'을 국으로 먹었고, 아주 맛있었고, 자주 먹었다고 해도 그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했고, 내 기억이 왜곡되었을 거라고 충고했으며, 그 어떤 사람이나 매체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며 나를 음해하였다. 나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부족한 사실 고증과 설득력 없는 언변과 고집부리지 못하는 성격으로 인하여 "그래, 없었다고 칩시다!"라며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뽀얀 쌀뜨물을 보면서 온갖 기억이 한꺼번에 소환되었다. 

이것이 조금씩 늙어가는 건가? 어떤 물건이나 상황을 대면할 때면 자꾸 엣 생각이 난다. 잃어버렸던 추억이 살아나니 반갑기도 하고, 자꾸만 살아나는 옛 기억에 나이 듦을 실감하니 외면하고 싶기도 하다. 


오늘 아침 받은 쌀뜨물은 김치찌개 만드는 육수로 썼다. 나 말고 우리 집에는 '뜨물'을 국으로 알고 먹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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