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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Apr 25. 2023

부부의 대화에는 중재가 필요할까요?

작년 10월 20일까지 내 폰은 갤럭시 S8기종이었고 나는 가장 저렴한 한 달 3.5기가의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 달에 3.5기가 데이터는 아끼면 월말에 아주 조금 데이터가 남을 수도 있었지만 대개는 월급날 전날 통장 잔고처럼 아슬아슬했다. 

남편은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매달 1일에 나와 딸에게 각각 2기가씩 데이터를 나누어 주었다. 덕분에 나는 거의 S8을 쓰는 5년 동안 한 달에 5.5기가의 데이터로 살 수 있었고, 그건 딸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10월 22일 새 휴대폰을 샀다. 내 폰의 새 기종은 갤럭시 ZFlip4이었고 5G 통신을 쓰는 것이었다. 폰을 바꾸면서 6개월 동안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사용하게 되었다. 나는 데이터를 펑펑 쓰게 되었고, 남편은 매달 2기가의 데이터를 주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홀가분해진 6개월이었다. 


데이터 펑펑 쓰던 6개월의 기간이 끝이 났다. 데이터 걱정 없이 계속 펑펑 쓰고 싶지만, 가계를 생각해선 그러면 안 되었다. 나는 요금제를 변경하였다. 한 달에 3기가를 쓸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요금제로 말이다. 


공교롭게도 4년째 같은 스마트폰을 쓰던 딸아이도 그저께 새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딸아이도 한 달 3.5기가의 저렴 요금제를 쓰다가 6개월 동안 무제한 데이터 프리미엄 요금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딸이 휴대폰의 메모리를 옮기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야, 이제 데이터 딸한테 보내지 말고 나한테 보내."

"왜?"

남편이 물었다.

"이제 내한테 옛날처럼 다시 데이터 보내야지. 나 데이터 조금밖에 없으니까."

남편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왜? 나 당신한테 데이터 옛날에는 보냈는데, 지금은 안 보내잖아?"

"지금은 비싼 요금제니까 그렇고, 이제는 다시 보내야지."

"아니, 지금은 안 보는데, 옛~날에 보냈고. 지금 또 왜?"

"옛날에 싼 요금제였을 땐, 당신이 매달 내한테 2기가씩 보냈잖아?"

"난 딸애한테만 데이터 보냈는데?"

"내가 폰 바꾸고는 내한테는 데이터 안 보냈고 딸애한테만 보냈지. 근데 이젠 다시 내한테도 줘야지!"

"난 당신한테 옛~날에 보내고 안 보낸 지 한참인데..."


이때 나는 그만 꼭지가 돌아버려서 고함을 꽥하고 질렀다. 

"아니, 왜 말귀를 못 알아듣나? 옛날에 싼 요금제일 때 데이터 내한테 줬듯이, 이제부터 다시 내한테 데이터 매달 보내라고. 이 말이 그렇게 어렵나?"


남편은 남편대로 화를 내게 돌려주었다. 

"아니, 나는 옛날에 너한테 데이터 주고, 안 준지 꽤 되어서 지금 안 주고 있다는 거 말하는 데 왜 화부터 내? 뻑하면 화내고 말이야."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던 딸아이가 "부모님들, 왜 이러시나요?"라면서 교통정리를 하였다. 

"아빠는 나랑 엄마한테 매달 2기가를 줬어. 그런데 엄마가 작년 10월에 폰을 바꾸면서 아빠가 나한테만 데이터를 줬어. 그런데 6개월이 지나서 엄마 요금제가 바뀌었어. 그래서 아빠가 다시 엄마한테 데이터를 줘야 해. 대신 나한테는 줄 필요 없어. 왜? 나는 어제부터 새 폰에 새 무제한 요금제니까."


"맞네~. 니처럼 요목조목 잘 차분히 얘기하면 될 것을, 엄마는 말 몇 마디에 저렇게 화부터 낸다. 저 화를 어쩔 거야!"

남편의 한마디가 뜨거운 분노로 뚜껑 열린 내 머리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 나는 평정심을 잃고 또 큰소리를 내었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게 누군데? 지금 데이터를 달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당신은 자꾸 무슨 옛날에, 옛날에 그딴 얘기를 하고 있으면서. 내가 말하려는 요점을 파악을 못하고 자꾸 딴소리를 먼저 했잖아, 당신이!"


더 이상 남편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다간, 딸아이가 새 휴대폰을 산 기분 좋은 날에 뭐 하나 깨져도 깨지겠다 싶어서 나는 자리를 피했다. 등 뒤에서 남편의 말소리가 들렸다. 

"네 엄마가 갱년기라 요새 맨날 화가 온몸에 차 있다. 우리가 이해하자."


이런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 대화 중에 내 말의 요지를 파악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로 대화의 끝이 큰소리로 마무리되는. 그때마다 나는 '이 양반이랑 말할 때는 녹음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녹음 파일을 들려주고 길 가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제 말이 뭔가 잘못됐나요?

우리 남편은 왜 말귀를 못 알아먹을까요?

아니면, 우리 둘 다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

.

누가 잘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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