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로봇 '모바일 알로하' 뉴스를 보고
지난 4일 구글 딥마인드 연구원이기도 한 스탠퍼드 대학 AI연구팀에서 하나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름하여 모바일 알로하 로봇.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관련한 뉴스를 월요일에 일제히 보도하였다.
보도된 뉴스에 따르면, 로봇 알로하는 세탁기를 돌릴 줄 알고, 요리도 할 줄 알며, 옷을 개고 베갯잇을 정리하고 화장실 청소도 할 줄 알았다. 사람 얼굴에 난 수염을 깎을 수도 있었고, 애완견과 놀아주는 것도 할 줄 알았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모바일 알로하'는 처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로봇의 가격대는 약 $32,000, 우리 돈으론 약 4천2백만 원 정도라고 했다. 물론 이 가격은 살 수 있는 금액이 아니라, 제작비라고 하니 실제 구입 금액은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미 원가(?)가 공개되었으니 많은 마진을 붙이진 못할 것이다.
오늘 아침에 이 로봇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로봇의 연구진들은 알로하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소스를 공개하였다고 한다. 공개한 내용들은, 설계도, 부품 구매처, 훈련방법 등이다. 즉, 마음이 있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바로 로봇을 만들 수 있다는 거다.
내가 더 놀랐던 것은, 이 로봇은 20번에서 50번 정도의 훈련만 받으면 거의 웬만한 일들은 85% 수준까지 해낼 수 있다는 거다.
"설거지 하나 시키자고, 설거지 동작을 50번이나 시키고 있느니, 차라리 내가 하고 만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알로하 로봇의 학습은 한 개의 로봇에게 일일이 50번을 다 시키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이 한 번의 훈련을 시키고, 또 다른 사람이 한 번의 훈련을 시키고, 또 다른 사람이 한 번의 훈련을 시키고....
이렇게 해서 오십 명의 다른 사람이 오십 개의 로봇에게 각자 한 번씩만 훈련을 시키고, 이 자료들을 모아서 로봇에게 전달하면 오십 명(?)의 알로하 로봇은 오십 번의 훈련을 받는 것과 똑같아진다고 한다.
예를 들면, 나는 내 로봇에게 수학을 공부시키고, 내 친구 A는 그의 로봇에게 영어를 공부시키고, 다른 친구 B는 국어를 공부시키고, C는 화학을 공부시키자. 이런 식으로 하나의 과목을 각자의 로봇에게 공부를 시킨 뒤, 학습한 데이터를 각 로봇에게 모두 전달하면, 로봇은 단 시간 안에 전 과목을 공부하여 매번 전교 1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전교 1등이 여러 로봇이라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모바일 알로하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니, 대부분 세상 좋아졌다는 반응이 많다.
'가사 노동에서 빨리 해방되고 싶어요. 언제 상용화되나요?'
'이제 늙어서 혼자 살기 편해지겠다.'
'저출산 걱정할 필요 없네. 노동이 줄어드니까'
그런데, 나는 이 로봇을 보니 걱정부터 든다. 왜냐고? 로봇이 일을 너무 잘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로봇이 섬세한 손놀림까지는 힘들 것이라는 편견을 와장창 깨버리고, '알로하'는 점퍼의 지퍼까지 잠글 줄 안다. 속도도 지금까지 그 여느 로봇보다 빠르다.
걱정이 드는 또 다른 이유는 인간이 어느 정도 훈련을 시키면 '알로하'는 스스로 판단해서 작업의 융통성까지 발휘를 한다는 데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블레이드 러너> 같은 SF영화에서나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로봇이 있었지 실생활에서는 여전히 요원하다고 생각되고 있었는데, 왠지 나를 안심시키던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이 무너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로하'의 모든 제작 소스가 공개되었다. 이제 이것으로 돈을 좀 벌어보려는, 혹은 생산 원가(노동력이나 임금)를 줄여보려는 수많은 개인이나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알로하'를 조만간 이리저리 시도해 볼 것이다. '알로하'는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여러 경험과 훈련들이 축적될 것이다. '알로하'의 작업 역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해질 것이고, '알로하'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단가 역시 타의추종을 불허할 만큼 줄어들 것이다.
그거 아는가? '알로하'를 만든 연구팀들은 처음부터 노동은 로봇에게 맡기고 인간이 이제 보다 고차원적인 것을 하자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수학을 싫어하고 영어도 기피했던 우리 딸은 그나마 국어가 좋다는 이유로, 문과를 지망했고, 당연히 대학도 문과로 진학했다. 대학을 다닐 때,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했으면 좋았으련만, 하필 코로나 학번이어서 2년 반을 집에서 대학 생활을 하였다. 대외활동도, 인턴도 알바도 할 수가 없었던 불운한 학번이었다.
아무 생각이 없는 줄 알았던 딸은 혹시나 취업에 도움이 될까 해서 ICT 무슨무슨 테크놀로지라는 학과에 복수전공을 신청하였다 코로나가 종식되자, 혹시나 한 줄 스펙이 되어줄까 해서 온갖 데 서포터즈와 봉사활동을 신청하였다. 열 군데 신청하면 다행히 한 두 군데는 합격하여 비는 시간 틈틈이 대외활동을 하였다.
서포터즈를 하는 기업(혹은 제품)을 위한 블로그를 기록하고, 영상을 제작/편집하고, 이를 위한 팀미팅을 하고 기획 회의를 한다.
때로는, 대학생들을 서포터즈라는 미명하에 뽑아서 기업의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을 순진한 대학생들에게 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서포터즈에게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뽑아내기 위해서 되지도 않는 서포터즈를 실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업의 진심은 알 길이 없지만, 한때 기업에 몸 담았던 나로서는 그들의 속내가 슬쩍 보이기는 것 같다.
딸은 적어도 내가 볼 때는 이런저런 활동들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딸아이는 이 정도를 하면 월급은 적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 (구체적으로 부모에게 말은 하진 않지만) 아니, 적어도 그저 꿈만 꾸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내가 20대였을 때보다도 더 열심히 자신의 미래를 위해 살고 있는 아이를 보며 부모인 나도, 딸이 졸업하면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 중 작은 것 하나라도 하게 되기를 소원하고 있다.
딸의 꿈과 나의 소원은, 그러나 평소에도 낙관적인 것인 아니었다. 요즘 시대 자녀의 취업은 50대 부모들의 가장 큰 화두이다. 그것도 문과생들에겐 더욱더 그렇다.
취업을 위한 역량을 더 키워보려고 딸은 이제 곧 교환학생을 떠난다.
출국을 며칠 앞두고 '알로하' 로봇 뉴스를 보니, 과연 문과생 우리 딸이 몇 년 뒤 졸업을 하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빠른 속도로 온갖 데에서 온갖 능력을 학습한 '알로하'는 몇 년 전 알파고가 바둑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무직 노동과 콘텐츠 제작/마케팅 기획/제작(딸의 희망 부문) 분야에서 자리를 차지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졸업을 했는데, 낮은 원가와 빠른 생산성을 원하는 기업은 '알로하'를 고용해 버리고, 어중띤 문과생 우리 딸은 다시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배우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스탠퍼드 연구팀은 이제 인간은 더욱 고차원적인 어떤 것을 하기를 원하며 '알로하'를 개발했는데, 가까운 미래 우리 자녀는 고차원은커녕, 겨우(?) 밥벌이에나 연연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 이런 생각이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미래의 걱정을 걱정하는 쓸데없는 일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