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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Nov 18. 2024

내가 좋아하는 가을

가을이 불러 온 스무살의 추억

갑자기 쌀쌀해졌다. 날씨예보를 보니 오늘 낮 최고기온은 6도. 최저기온은 -1도.

폴리에스테르 충전재를 가득 채운, 작년 겨울에 산 아이보리색 파카를 꺼내 입었다. 가을을 제대로 만끽하지도 못했는데 겨울이 찾아왔다.


이번 가을은 이상했다. 10월 여행 절정기에도 나뭇잎의 색은 메말랐다. 화려한 형형색색이 아니라 한 대 얻어맞은 파란 멍자국이 시간이 갈수록 누르댕댕하다 못해 거무죽죽한 것 같은 그런 색감이었다. 기후온난화인지, 되살아난 빙하기인지 모를 이상 기후 탓이라고들 한다. 예전엔 단풍이 쨍-! 한 느낌이었다면 요새는 픽-하는 느낌이다. 아, 부족한 표현력으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다. 슬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주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을색을 보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 뒷길에는 왕복 8차선의 큰 도로가 있다. 차들은 씽씽 달리는 반면 사람은 별로 다니지 않는 그런 길이다. 길 양 옆으로 가로수가 일정 간격으로 줄지어 있다. 봄과 여름에는 그게 무슨 나무인지 알지 못했다. 작년 가을에도 나무를 자세히 볼 일이 없었다. 그쪽 길로 잘 다닐 일이 없었다.


지난주, 머리 커트를 하려고 길을 나섰다. 새로 개척한 미용실이다. 집에서 걸어서 5분. 예의 그 큰 도로를 건너 조금만 가면 되었다. 길을 접어들었다. 인도와 자전거 도로 옆에 서 있는 가로수가 보였다. 아니, 보인 게 아니라 눈에 저절로 띄었다. 그렇게나 예쁜 노란색과 성숙한 갈색을 띠고 있는 데 그 색깔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이 아닌 거다.


이제 보니, 아파트 뒷길에 있던 가로수는 은행나무였다. 그것도 아주 커다란 은행나무. 나는 그 사실을 이사 온 지 이 년이 넘은 오늘에야 깨달았다. 세상을 다닐 때 거리를 안 보고 도대체 무엇을 보고 다니는 걸까?

은행나무 사이  이름을 모르는 키 큰 나무들이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존재감 있는 나무들의 잎들은 세상을 살아보고 자식도 낳아보고 역경도 겪어 본 여자 같은 색을 가지고 있다. 쨍-! 하진 않지만, 하-! 하게 되는 색이다.


서정주라는 시인은 가을 국화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은 꽃'이라고 했는데, 이제 보니 길 가에 서 있는 은행나무와 이름 모를 가로수가 국화꽃보다 한층 더 '젊음을 아쉬워하고 세월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노오란 은행나무는 봄 여름 내내 푸르게 기염을 토했겠지만, 나는 그 나무를 느끼지 못했다. 이 가을, 은행나뭇잎은 바스라지고 푸른색은 노오랗게 색이 바랬다. 색이 바랜 은행나무는 그제야 그의 존재감을 나에게 드러내었다. 짧게나마 드러낸 존재감이지만, 눈길 한번 주게 되고 감사를 한번 받게 되고 탄성을 내지를 수 있는 색바램이라면, 은행나무의 색바램과 늙어감(?)은 충분히 그 가치가 있다.


봄과 꽃을 좋아했던 나는, 언제부터 가을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건 아마도 짝사랑의 아픔을 겪고나서부터였을 것이다. 아니, 확실하다. 그때부터였다.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동아리 선배를 좋아했다. 키도 크고 아주 잘 생긴 남자였다. 그는 동아리 모든 여학생들이 꿈꾸는 대상이었다.

나는 내 짝사랑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모두가 좋아하는 그를 나도 좋아한다니, 자존심도 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내 짝사랑이 들켰는데 선택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것일 거다. 스무 살은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내지르기도 하는 용감한 나이지만, 어떤 때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부끄러워하고 유치해지는 나이이기도 하니까. 지나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동아리 여학생들은 아마도 다들 짐작하고 있었을 것 같다. 모두가 다 그 선배를 좋아하고 있다고. 내 마음도 나만 몰랐지 아마 다들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갔다. 선배는 때가 되어 군대엘 갔다. 한 번 고백도 못해보고 짝사랑이 해프닝처럼 끝나나 보다, 했다. 그. 런. 데!


붉게 물들었던 단풍나무잎도 하나둘씩 떨어지고 이름 모를 나뭇잎들도 옅은 갈색을 띠면서 하나둘씩 기력을 소진하여 떨어지고 오직 학생회관 앞 아주 커다란 은행나무만이 온통 하늘을 노오랗게 물들이고 있던 11월의 어느 날, 동아리에서 절친했던 정 모양이 군대 간 그 선배랑 사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지배, 평소에 전혀 티를 안 내더니, 그 선배를 좋아하고 있었다고!


나는 배신감과 패배감이 동시에 들었다. 거기에 부러움이 식빵 위에 발라진 딸기잼처럼 더해지더니 식빵의 맛을 좌우하듯, 배신감과 패배감을 부러움으로 물들였다.

모두가 그 선배를 좋아하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던가.

정 모양의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아마 그때 내 얼굴은 심히 일그러져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배우가 되었어야 했다.


그 가을, 상심한 내 마음을 달래주었던 건 학생회관 앞에  밝은 노란색으로 든든하게 서 있던 은행나무였고, 캠퍼스 곳곳에 서 있던, 바람이 불면 제 멋대로 공중에 흩날리던 갈색과 붉은색의 나뭇잎들이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가을의 쨍한 하늘이 어떤 때는 노오랗게 물들어 나를 응원하였고 바람 부는 날에는 알록달록 나뭇잎들이 내 상심을 흔들어 저 멀리로 날려 보내주었다.

그 가을, 나는 혼자 할 일도 없이 캠퍼스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녔다. 나뭇잎들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는 스무 살 그 가을부터 11월 중반의 가을을 사랑하게 되었다.


일상에 치여 돌아보지 못했던 주변은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머리를 다 하고 나와서 5분이면 집에 가는데도 부질없이 은행나무가 노오랗게 물든 그 거리를 왔다 갔다 했다. 나에게 질투와 패배감을 안겨주었던 그 커플들은 다행히도(!)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헤어졌다. 지나고 보니, 키 크고 잘 생긴 그 선배는 상상 속 남자였지 현실의 멋진 남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정 모양의 실패도 내 짝사랑의 실패도 결과적으로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경험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인생을 풍부하게 한다. 쓸쓸하고 스산한 가을, 스무 살의 나는 그래도 빛이 났었을 거다.

문득, 학생회관 앞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고 싶다. 은행나무는 아직 그대로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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