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은 - <시프트> 고통을 옮기는 자, 를 읽고
독후감을 남기진 않았지만 작년에 조예은 작가의 <칵테일, 러브, 좀비>를 읽었다.
아주 얇은 단편소설 모음집이었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책 한 권을 떼고 싶어 골랐다.
그런데 소설집 속 다섯 작품에 모두 반했다. 이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어야지, 마음먹어 놓고선 한동안 잊고 있었다.
지난주 주말 빌릴 책도 딱히 없었는데 남편을 따라 도서관엘 갔다. 나도 뭔가 하나 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고른 책이 조예은의 <시프트>였다. 아니, 정확히는 제목이 <시프트, 고통을 옮기는 자>이다.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창이라는 형사는 10년 전에 사이비 교주를 통해 누나의 불치병을 고쳤으나 교통사고로 누나는 죽고 살아남은 조카 채린이가 누나의 불치병을 물려받는다. 이창은 다시 한번 사이비교주를 찾아 채린이의 병을 고치고 싶어 한다. 이창의 관할 경찰서에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사건의 범인으로 생각되는 사람이 사이비교주의 아들인 것 같다. 이창은 그를 찾아 나선다.
쌍둥이 형제 찬과 란은 사이비교주에게 팔려왔다. 찬에게는 사람의 고통이나 병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능력이 있다. 사이비교주는 이것을 알게 되고 찬을 이용해 돈벌이를 한다. 사이비교주는 찬과 란의 착한 마음을 이용해 환자의 병을 고쳐주고 돈을 받고, 환자의 병은 어린이들을 납치하여 병을 옮긴다. 사이비교주는 동생 란을 이용하여 찬이 딴마음을 못 먹게 협박한다. 어쩔 수 없이 병을 옮기는 찬. 찬은 자신 때문에 어린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 어느 날 찬과 란은 교주에게서 도망을 가기로 했는데 실행에 옮기다 찬이 죽게 되고 찬의 능력은 동생 란에게로 옮겨 간다.
형 덕분에 목숨을 건지고 능력을 갖게 된 란. 이창의 수사가 시작되며 이창과 란은 살인 사건으로 인해 조우하게 된다. 살인 사건 조사를 받는 중 교주들이 다시 란을 찾아내어 찾아오는데......
이후의 이야기와 결말은 스포일러 방지 차원에서 그만 쓰겠다.
이 작품은 조예은 작가가 27살에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2017년 작품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누군가의 병을 손만 대고 있어도 낫게 해 줄 수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해 보았을 것이다. 나도 어릴 때는 이런 기발한 상상을 많이 한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였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차가운 현실에 상상력은 얼어 버리고 이성만 남아 이해득실을 자꾸 따지는 어른이 되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래 나도 한때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손을 대면 병을 낫게 하는 게 아니라 병을 옮긴다는 상상을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한마디로 참신한 소재를 생각해 낸 젊은 작가에게 반한 거다.
작가의 초기 작품이라 그런지, 구성은 내가 최근에 읽은 <칵테일, 러브, 좀비>보다 훨씬 느슨하다.
필력도 주인공의 감정에 오롯이 녹아들고 주변 풍경과 작은 표정 변화까지도 느낄 수 있었던 <칵테일, 러브, 좀비>에 비해서 헐겁다.
그래서인지, 결말은 생각하던 대로 흘러갔고 결말의 묘사는 덜 긴박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상상력이 존재하고 소설에는 온갖 상상과 생각을 펼쳐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조금 미흡해도 이런 작품들이 많이 많이 나오고, 사람들이 많이 많이 읽어서 우리 문학이 다양한 소재로 쓰였으면 한다. 이 소설은 딱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조금의 살을 더 보태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