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홍의 <말뚝들>을 읽고
불행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고 장은 생각한 일이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불행하고, 가장 불행한 사람조차 끊임없이 불행하지만은 않으므로 호들갑 떨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사실 책의 첫 페이지 (11쪽)에 다 나와 있다.
은행에서 여신 심사를 담당하는 주인공 장은 평소 위와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소설 밖으로 나오면, 이것은 비단 장의 생각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도 너도 대부분의 우리도 소설 초반 장의 생각에 동의할 것이라도 생각하다. 우리는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말하며 행복을 가끔 억누르고(대부분은 인스타나 X나 입소문에 의거하여 자랑을 하지만), 불행에 호들갑 떨지 않으려고 한다. 그 또한 지나가면 잊힐 거라는 격언을 붙잡고서 말이다.
하지만 아주 심각한 불행이 나를 찾아온다면, 그 불행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면, 그때도 우리는 불행에 호들갑 떨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마침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이 찾아왔을 때 장은 불행이란 단어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데 한참이나 모자람을 깨달았다. 지난날의 견해가 오만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불행의 일부를 감경받는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장의 불행을 덜어 가려고 하지 않았다.
장은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납치를 당하고, 바지에 똥을 싸고, 회사에서 감사를 받고 휴직을 강요받고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우리나라에는 아무도 정체를 모르는 말뚝들이 나타난다. 말뚝들은 처음에 머리를 바닷속에 처박고 있다가 어느 순간 바로 서더니 바다에서부터 도시로 광장으로 사람들의 집으로 찾아온다.
말뚝들을 보면 사람들은 이유도 모르고 눈물을 흘린다. 말뚝을 안 보면 눈물이 그치며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정부는 계엄령을 발포하고 말뚝들을 처단하고 있다.
어느 날 장에게 사람들이 찾아와 묻는다. 말뚝들을 아냐고. 왜냐하면 1번 말뚝의 입에 장의 계좌번호가 적힌 장의 명함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장은 생각한다. 장의 명함을 건네준 그때를, 그 사람을. 그 1번 말뚝이 장의 집 거실에 찾아왔다.
그 사람은 몽골에서 온 테믈렌. 이름은 소설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야 등장한다. 테믈렌은 제련소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카드뮴에 중독되어 간부전으로 죽었다. 제련소에서는 테믈렌과 비슷한 이유로 많은 노동자들이 죽었다. 그들은 모두 말뚝이 되었다.
장이 테믈렌에게 빌려준 50만 원을 갚으라는 공지를 블라인드에 올리자 비슷한 사연들이 서로서로 컴피티션 하듯 올라온다. 누구는 건설 현장에서 죽었고 누구는 군대에서 죽었고 누구는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과로에 지친 택배기사의 차에 치여 죽었다. 그리고 아마도 누구는 배에서 죽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길에서 죽었을 것이며, 누구는 일하다가 과로로 죽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죽은 이를 아는 아무개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았다. 말뚝을 제거하려는 사람보다 말뚝으로 산화한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기억을 소환하는 속도도 빨랐다.
말뚝은 우리가 호들갑 떨지 말라고 했던 우리 이웃들의 불행이 외면당해서 생긴 한이다. 충분한 애도를 하지 못한 우리의 빚이다. 말뚝을 보면 흐르는 눈물은 미처 못한 애도의 자동 버튼이 눌러져 나오는 자기반성이다.
이 소설은 불행과 애도와 공감을 말뚝에 빗대어 때론 풍자하고 때론 해학스럽게 때론 가슴 깊은 곳에서 우리의 반성을 이끌어 내고 있다.
요 근래, 이렇게 격조 있게 유쾌하고 저릿하며 뭉클한 소설이 있었던가.
이 정도 불행이면 모두가 함께 나눠야 공평하지 않은가? 비록 내가 누군가의 불행을 나눠 가진 적이 없더라도 말이야. 그의 불행은 온전히 그의 것이기만 했다.
장은 테믈렌의 아들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김규승이었다. 규승이 물었다.
아저씨는 누구신데요?
장이 대답했다.
나는 장석원이야. 너희 아빠 친구야.
장석원 씨는 이제부터는 타인의 불행에 대하여 호들갑만 떨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 속에서 일어난 불행은 모두 함께 나눠야 공평하다는 것을,
불행은 온전히 그의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장은 자신에게 뜻밖에 찾아온 불행과 말뚝을 대면하면서 또 하나의 삶의 진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나를 덮쳤을 때,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르틴 니뭘러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