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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Jun 08. 2020

콩잎 김치는 이제 어디서 먹어야 할까?

70‘~80’년대 우리나라 웬만한 가정들이 그랬듯이 우리 집도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밥상에서 한두 번 먹으면 없어지는 신선한 재료들로 된 반찬은 할머니 생신이나 아버지 생신 그리고 집안의 대들보인 오빠 생일 정도에만 구경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우리 집 밥상 위에는 한번 만들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장아찌, 김치 종류들이 많았다.


노란 콩잎 김치는 해마다 빠지지 않는 우리 집 단골 반찬이었다. 추석이 지나고 가을이 한껏 뽐낼  즈음 콩잎은 노랗게 물이 들었고 시장에 가면 한 손에 쥐어질 만큼씩 실로 묶어 팔았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가을이 되면 엄마는 노란 단풍 콩잎을 열 묶음 정도 넉넉히 사 가지고 오셨다.

많은 양의 단풍 콩잎을 큰 냄비에 푹푹 삶으면 우리 집은 온통 그 콤콤한 콩잎 구린내로 가득했다. 그 냄새를 표현하는 데는 ‘콤콤하다’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3년 넘게 묵힌 된장 냄새인 것 같기도 하고 옛 시절 집과 저만치 떨어져 있던 뒷간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며 산속 어디엔가 떨어진 나뭇잎이 햇빛을 제대로 못 보고 삭아 들어가는 냄새 같기도 했다. 콩잎 김치를 처음 접해본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이마를 찌푸리고 코를 막을 냄새이다. 마치 푹 삭힌 홍어를 처음 접해본 사람처럼.

하지만 나는 집 안에 서서히 퍼져 나는 그 ‘콤콤한’ 콩잎 삶는 냄새가 너무도 좋았다. 아마도 내일 밥상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콩잎 김치가 올라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콩잎 김치 담그는 법...


콩잎이 아주 연하게 삶아지고 나서 물기를 꼭 짜내고 나면 엄마와 언니와 내가 좁은 거실에 무릎을 맞대고 앉아 콩잎을 서너 장씩 잘 개벼서 한 손에 쥐어질 만큼 모아 실로 잘 묶어 두었다. 한 번에 김치로 담그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어서 김치로 담글 분량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조그만 옹기 항아리 속에 물과 함께 담그고 그 위를 반듯하고 묵직한 돌로 눌러주었다. 숨 쉬는 옹기 항아리가 꽉 차면 내 맘도 꽉 찼다.


그러고 나면 멸치젓을 끓인다. 엄마는 해마다 4월이면 가까운 기장으로 멸치젓을 사러 갔다. 엄마가 먹어본 멸치젓 중에 가장 실하고 달고(젓갈이 달다니! 나는 이해가 안 됐지만) 적당한 염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기장 멸치젓이라고 하시면서 김장용으로 쓸 것을 미리 준비하셨다. 그 젓갈을 꺼내 콩잎 김치를 담그기 위해 팔팔 끓였다. 다 끓여서 식힌 젓갈에 이제 양념을 할 차례이다.


마늘을 듬뿍 넣고 때깔 좋은 고춧가루도 넣고 깨소금도 적당히 넣고 참기름 토핑까지 넣고서 휘휘 저어주면 적당히 짜고 달큰한 양념 젓갈이 만들어졌다. 이제 잘 삶긴 콩잎을 서너 장씩만 떼서 그 위에 양념을 발라주면 된다. 삶아놓은 콩잎이 다 소진될 때까지 콩잎을 놓고 젓갈 양념을 바르고 또 콩잎을 얹고 양념을 바르고. 이런 작업을 한참을 하고 나면 제법 큰 플라스틱 용기에 콩잎 김치가 한가득 담겼다.


콩잎 김치. 사진 출처: https://www.10000recipe.com/recipe/6874116


다음 날 아침 밥상에 콩잎 김치가 반찬으로 올라왔다. 이때부터 콩잎 김치가 없어지는 내년 봄께 까지 반찬 때문에 남매들끼리 벌어지는 반찬 쟁취 투쟁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왜냐하면 나는 콩잎 김치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은 뚝딱 비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결혼을 하였다. 나는 직장 때문에 엄마에게 애도 맡기고 반찬도 맡겼다. 콩잎 김치는 매년 가을 엄마 손을 거쳐 우리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엄마의 건강한 몸을 자꾸 탐을 내어 앗아가 버리는 바람에 엄마는 예전처럼 콩잎 김치를 대용량으로 담글 수 없었다. 막내딸이 콩잎 김치를 너무도 좋아하니 시장에서 딱 세 묶음만 콩잎을 사서 삶고 개비고 기장 멸치젓을 끓였다. 그러고 나면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갈 만큼만 콩잎 김치가 완성되었다. 아들인 오빠와 살림 밑천인 언니만 예뻐한다고 투정을 부리곤 하던 막내인 나만 먹으라고 한통의 콩잎 김치를 정성을 다하여 만들어주셨다.


엎어진 그릇 때문에,


아이들이 예닐곱 살쯤 되었을 때다. 엄마는 그 해의 콩잎을 예쁜 노란색으로 만들어 김치를 담가 스테인리스 반찬통에 담아 주셨다. 퇴근 후 한 손에 아이 손을 잡고 한 손에 콩잎 김치를 들고 아파트 입구를 들어가는데 그만 뭔가에 걸려 넘어졌고 넘어지면서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콩잎 김치를 땅에 엎어버리고 말았다. “엄마야! 내 콩잎! 우짜노” 땅바닥에 고꾸라져있는 콩잎을 본 순간 나는 무릎이 까져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못 먹게 된 콩잎을 바라보며 야속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혹여나 성한 콩잎이 있을까 조심스레 찾아 다시 그릇에 담아보지만 성한 것을 찾기에 어둠은 이미 세상을 차지했고 세로로 엎어진 콩잎은 흙이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일 년 동안 콩잎을 못 먹을 생각을 하니 연신 눈물이 줄줄 흘렀다. 옆에서 아이는 “엄마, 많이 아프나?”라고 엄마의 무릎을 걱정했다. “찬아, 흑흑 엄마가 올해는 콩잎 김치를 못 먹게 됐다. 어떡하노!” 땅에 떨어진 콩잎을 계속 주워 담으면서 나는 엄마에게 투정 부리는 아이처럼 반찬투정을 내 아이 앞에서 하고 있었다.


내가 아주 처절하게 흐느끼는 모습을 아이가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했나 보다. 다음 날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가니 엄마는 어제 내가 땅에 흘린 분량만큼의 콩잎 김치를 다시 담가서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오늘은 땅에 흘리지 말고. 단디 챙기라.” 그 해의 콩잎 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맛이 있었고 오래도록 아껴 먹었다.


엄마는 이제 세월에 건강을 거의 뺏겨서 김치를 담글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콩잎 김치를 못 먹은 지 3년이 넘게 지났다. 그리고 지금은 고향이 아닌 콩잎 김치가 아주 낯선 동네, 충청도에 살고 있다. 올 가을에는 내가 콩잎 김치를 담아볼까? 엄마의 손맛보다 훨씬 못하고 비록 노오랗게 빛깔이 안 날지라도 이번에는 내가 만들어서 엄마에게 보내주어 볼까는 생각이 든다. 철없던 막내딸이 느지막한 나이에 만들어 보내주는 콩잎 김치를 보고 엄마는 나처럼 눈물은 안 흘리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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