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공모전 결과를 통보받았다. 본선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같이 준비한 멤버들은 크게 낙담하였다.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기에 당연한 일일 것이다. 거의 꼬박 두 달을 기획하고 조사하고 기획서를 쓰고 영상을 촬영했다.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 진출 15팀 중 9개 팀에게 시상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3등 상은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앞선 예측을 해보았다. 탈락이라는 공모전 결과를 받아 들었을 때 우리는 봄소풍을 한껏 기대했다가 비가 와서 교실에서 김밥을 먹게 된 아이들 같은 패배감과 허탈함을 맛보았다.
그런데 나는 팀원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낙담의 정도가 그들과 같지 않았다. 그저 '흠, 떨어졌군'하고 쓴 커피를 두어 잔 연달아 마셨을 뿐이었다. 나에게 2020년에 이런 실패와 불운이 너무 흔히 찾아왔기에 이번에도 연이은 불운 중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아마도 팀원들이 맞았던 이번 불운은 어쩌면 나 때문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실패로 이어지는 나의 연속된 불운의 하나라는 생각에 괜스레 미안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머릿속 줄어드는 뇌의 기억 세포를 최대한 가동해 기억 회로를 돌려보자니, 살면서 뭔가가 연속으로 잘 안되기는 올해가 제일인 것 같다. 코로나 때문이야,라고 애써 치부해보지만 자꾸만 드는 생각은 코로나 탓이 아닌 그저 내 운이 여기까지인가, 하는 것뿐이다.
# 퇴사를 하고 한동안 잘 쉬다가 새롭게 시작한 두 번째 직업은 여행과 관련된 것이었다. 웬만한 사람들이 다 그러하듯 나 또한 여행을 좋아했고 역사를 애정했기에 두 번째 직업은 아주 안성맞춤인 것 같았다. 처음으로 일을 한 건 2019년 12월 초. 신입인데도 12월은 성수기라 아주 적절한 워라밸을 유지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워라밸은 채 3개월을 이어가지 못했다. 예고 없이 전 세계를 바이러스의 혼돈 속으로 몰아넣은 코로나 19 때문이었다. 여행관련 직업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나는 타의로 인해 실직을 해야 했고 실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 역사를 좋아해서 공부를 하고 싶었고 역사콘텐츠로 활동을 하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좋아하는 일로써 직업을 삼고 돈을 버는 것, 모든 사람들의 로망이 아닌가. 두 번째 직업활동을 하는 와중에 역사콘텐츠를 배우는 곳에 등록을 했다. 교육을 마치면 역사체험교사와 역사 강사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해당 회사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고 활동에 따른 금전적 보상도 받을 수 있었다. 24회 차의 교육을 겨우 반 정도 진행했을 때 코로나가 찾아왔다. 1월과 2월 동안 교육을 마쳐야 했건만, 올해 초의 심각한 코로나 상황에 모든 것이 스톱되었다. 12회 차의 교육 내용을 거의 다 잊어버렸을 무렵 나머지 12 회 차의 교육이 재개되었고 어찌어찌하고 이런저런 수고 끝에 마침내 교육은 수료하였다. 견습과정을 거쳐야 체험교사로 활동이 가능한데 수업을 열 수가 없으니 견습을 할 수가 없다.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의사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견습활동이 가능하겠지, 내가 이렇게 애타게 개학을 기다려본 적이 있던가. 하지만 8.15 집회 사태가 터지고 전광목 목사와 사랑제일교회 사태가 커지면서 개학은 요원해졌다. 내 견습도 요원해졌다. 올해 안에 견습 활동을 마칠 수나 있을까?
# 체험교사 활동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 지역의 시민학교 강사에 지원을 했다. 그때가 2월. 2월 말에 소정의 교육을 거쳐 개학을 하면 초등학생들의 체험 교사로 일 년 동안 활동을 해야 했다. 하지만 역시 2월 기승을 부린 코로나 바이러스는 교육도 개학도 활동도 모두 올 스톱시켰다. 나도 덩달아 스톱되었다.
확진자 수가 잦아든 7월 교육은 진행되었다. 비대면 줌으로. 교육을 담당한 곳에서는 9월 새 학기에는 체험교사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9월이 되었고 개학은 미뤄졌다. 시민학교 체험교사는 나와 인연이 안 될 운명인가 보다.
# 2월 어느 날 이메일이 왔다. 어느 회사의 좋은 포지션에 나를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여느 때처럼 잡포털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나의 경력과 맞는 채용 공고가 있어 지원을 했더니 며칠 후 바로 연락이 온 것이다. 바싹 메말라 납작하게 엎드린 풍선에 급히 바람을 넣은 빵빵해진 듯 나도 두 볼과 양쪽 폐에 바람이 잔뜩 들어갔다.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보러 갔다. 원래 해당 회사의 면접은 한 번만 본다는데 이번에는 한 번이 더 추가되었다고 했다. 나는 다른 면접자와 달리 두 번의 면접을 보았다. 그래서였나? 결과는 탈락이었다. 내가 많은 점이 부족해서였겠지만, 내 차례가 되자 저만치 있던 불운이 갑자기 내게로 다가와 내 옆에서 나에게 '얼레리 꼴레리'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 5월 어느 날, 마감 시간 2시간 50분을 남긴 채용 공고를 보고 급하게 지원을 했는데 서류 합격을 통보받았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나는 이제 분위기가 반전되려나 하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반전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필기시험은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시험이었고 난이도 역시 내가 쉬이 범접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5월이 반쯤 지난날 나는 역시나 또 한 번 '귀하는 불합격'이라는 문자를 받았다.(이것에 대하여 나는 '아쉽지만, 귀하는 불합격'이라는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도 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번은 불운 탓이라기보단 내 실력의 부족 탓이라고. 운칠기삼의 기운은 아무나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지 슬펐다.
그리고 어제 또 한 번의 탈락이라는 불운이 있었다. 이번에는 나 혼자가 아닌 팀의 탈락이었다. 수상자 리스트에 우리 이름이 없음을 확인한 후 나를 제외한 두 명의 팀원들은 못내 아쉬워했다. 우리 스스로 만족한 영상이었고 결과물이었기에 제출하면서 내심 일등의 기대까지 한 탓이었다.
나는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성공의 역사를 쓴 적이 없기에 만약에 이번 공모전에서 합격의 기쁨을 누린다면 이것은 100% 팀원들의 노고이며 남은 2020년은 다른 개인적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설레발을 쳐보았다.
따라서 공모전 탈락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든 처음 생각은 내 탓이다. 였다. 내 불운의 기운으로 열심히 우리 두 명의 팀원들의 노고까지 어둠의 기운을 가지게 된 것만 같았다.
어찌 올해 지금껏 내가 겪은 불운이 이것뿐이겠나 마는 더 이상 나열하지 않는 것은 나도 더 이상 초라해지기는 싫은 지켜내야 할 자존심이 있기때문이며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불운의 기운에서 보호하고자 함이다.
석 달 하고 보름 정도밖에 남지 않은 2020년 경자년 쥐의 해 코로나의 해.
나는 이 기간 동안 반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시국과 함께 운명의 수레바퀴 안에서 이대로 돌아갈지 시간이 흘러봐야겠지만 어찌 자꾸 나만 불운하고 일이 꼬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누군가는 이 따위가 무슨 불운이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도 아니요 건강상의 문제도 아니요 큰돈을 투기나 보증으로 날린 것도 아니니 이 정도를 불운의 연속이라 말하는 너는 호강에 겨운 소리나 하는 유치한 아이나 다름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다른 이의 피 흘리는 상처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법이라는 옛말을 끌어와 치기 어린 내 투정과 상심을 변호하면 나는 이기적인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