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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Sep 18. 2020

우선 순위는 아이보다 엄마의 삶이여야 합니다

진정 자녀를 위한다면, 내 인생을 먼저 살피세요.

6개월 동안 30개의 글로 두 번째 매거진 <기억에 의존하여 쓴 철 지난 육아일기>를 꽉 채웠습니다. 

이제 마무리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하고 무엇을 쓸까 생각했을 때 망설임없이 떠오른 소재가 워킹맘으로서 내가 아이들을 키운, 비롯 서투르지만 척박한 워킹맘의 환경에서 아이들을 성인으로 별 사고없이 키운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대한민국 구석 구석을 훑어보면 어렵게 아이를 잘 키워낸 평범한 워킹맘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마는, 적어도 내 주변에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를 키울 당시에는 저 뿐이었습니다. 의논할 사람도 없었고 누구에게 맘놓고 하소연할 수도 없었습니다. 내가 그렇게하면 남자 상사든 여자 언니, 동료든 모두 "회사를 그만두면 되지. 누가 억지로 떠민 것도 아닌데 아이들을 그리 고생시키면서 뭐하로 힘들게 회사를 다니니? 신랑이 돈을 못 벌어다주는 것도 아닌데."라고 치부하며 내 고생을 호강에 받혀 요강에 X싸는 정도의 투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누구 탓도 못했고 제대로 된 넋두리도 못했습니다. 오롯이 제 속에서 삭이고 풀어내고 가끔 밖으로 표출하는 정도였습니다. 


어쨌든 세월을 흘렀고 나는 퇴사를 했고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어려운 와중에 그래도 두 가지 일 모두 다 썩 잘 해냈다는 자부심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이라는 숫자가 자꾸 무게가 늘어가는 것과 반비례해서 내 기억의 덩어리는 줄어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억 덩어리가 더 쪼그라들기 전에 쪼그라든 덩어리가 기억을 왜곡하기 전에 비록 내가 100% 노력을 한 건 아니지만 대한민국 워킹맘으로서 육아에 대한 썰을 풀어두고 싶었습니다. 이 글이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을수는 없을 것이고, 그도 아니면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해도 좋을 것입니다. 내 글이 조잡해서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저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라도 읽게 되어 내가 애쓴 것의 일부라도 그리고 그들이 커온 과정의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나는 이번에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렵니다. (낮은 필력으로 조잡한 스토리 텔링으로 만족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엄마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우리 아이들이 무탈하게 잘 커준데에는 곳곳에 많은 도움이 있었습니다. 친정 엄마의 헌신, 친정 아버지의 손주 사랑, 놀이방과 유치원 선생님의 돌봄, 학교 선생님들의 가르침. 

이 매거진을 쓰면서 찬찬히 생각해보니 이런 도움말고 조금 더 큰 무탈의 요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내 삶을 소중히 여기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힘들다는 핑계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본 우리 아이들의 엄마, 즉 부끄럽지만 나의 인생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둘째가 7살일 때 야간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회사 업무만으로도 벅차서 야근하기가 일쑤였는데 공부까지 하니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더 줄었습니다. 학교 과제를 하면서 시험 공부를 하면서 아이를 억지로 먼저 재우려고 했고 자지않는 아이와 함께 책상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때 아이는 나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엄만데 왜 공부를 왜? 공부가 재밌어?" 어떻게 말해야 아이가 저에게 관심을 쏟지 않고 공부만 하는 엄마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 생각한 끝에 나는 대답했습니다. "엄마는 공부가 재밌어. 이렇게 재미있는 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열심히 했을텐데 왜 이제야 공부를 시작했을까? 엄마만 재밌는 거 해서 미안해. 우리 xx이가 엄마 좀 이해해 주면 안될까? 나중에 우리 xx이가 재밌는 거 할 때 엄마도 이해해주고 기다려줄께." 조막만한 얼굴에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뜬 둘째는 내가 하는 말을 곰곰히 듣더니 방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 알겠어. 재밌는 거 열심히 해."


물론, 아이는 내 생명입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아무 의미가 없겠지요. 하지만 인생은 매번 최악을 놓고 겨룰 수는 없습니다. 평범한 가정과 평범한 일상을 떠올려 본다면, 엄마는 매번 아이가 최우선입니다. 맛난 것도 아이 먼저, 하루 일과도 아이 것 먼저, 옷을 사도 아이 것 먼저, 공부도 아이 공부 먼저. 그러다 보면 엄마의 인생은 사라지고 엄마에게는 아이만 남죠. 시간이 흘러 아이가 어른이 되면 엄마에게 무엇이 남을까요? 


저는 형편상 아이 먼저를 할 수도 없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어찌됐건 내 인생입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최우선은 내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일과 육아에서 내 우선은 내 일이었고, 아이 공부와 내 공부에서 우선은 내 공부였습니다. 이것이 자리를 잡다보니 아이들도 이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엄마는 엄마 것 먼저. 우리 것은 우리가 알아서"


이러한 기조로 생활을 하고 육아를 하다보니 우리 집은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 잘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은 이것이 제게는 섭섭한 일이 되곤 합니다.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하이틴 남여 주인공처럼 시크하게 구는 아이들이 남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쪄겠습니까? 따지고 본다면 남남이 아닐 건 또 아니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섭섭한 것이 나중에 구질구질하고 지겨워지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부족한 엄마였지만 아이들이 제 역할을 잘 하고 이만큼 커준것은 내 인생을 우선으로 둔 덕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 한창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최우선은 내 인생입니다. 아이 인생을 가꾸기보다 자신의 인생을 먼저 생각하고 가꾸세요.


큰 나무가 꼿꼿이 곧게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간다면 큰 나무 옆 작은 나무는 큰 나무를 따라 곧게 쭉쭉 뻗어나갑니다. 큰 나무가 하늘을 향하지 않고 옆의 작은 나무가 잘 크나 잘 따라오나만 신경쓴다면 크고 곧게 하늘로 뻗어나가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제 또다른 도전으로 내 인생을 살아보려고 합니다. 또 다른 큰 나무를 키워보려합니다. 

육아에 지치고 힘든 엄마들을 응원합니다. 더불어 새롭게 심은 내 인생 나무도 응원합니다. 

그 나무에 물을 주면서 '철 지난 육아일기'를 마칩니다. 




- 많이 부족한 매거진과 자잘한 글을 구독해주시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개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10월에는 다른 컨텐츠로 새 매거진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많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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