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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Jul 06. 2020

카드깡도 아닌 '문상'깡

내 자녀 용돈 교육법

우리 집 냉장고 문에는 컬처랜드 문화상품권 만 원짜리 두 장이 두 달째 붙어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내가 득템 한 것이었는데 곧바로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식구들 중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가지고 가겠거니 생각하여 냉장고 문 앞에 붙여 두었었다.


코로나19로 얼굴 보기가 힘들었던 군대 간 아들이 지난 주말 오랜만에 외박을 나왔다.  아들은 냉장고에 고이 모셔져 있던 문화상품권을 보더니 "이거 주인 없으면 나 해도 돼?"하고 물었다. 먼저 쓰는 사람이 임자지.라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군인 아들은 문상을 제 지갑 속으로 재빨리 챙겨 넣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딸애가 뭔가가 생각이 났다는 듯 마시던 물 잔을 식탁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예전에 우리 어릴 땐 엄마가 문화상품권'깡'도 하고 했는데. 우리는 그게 좋은 건 줄 알고 엄마가 '깡'을 해주면 오히려 웬 떡이냐, 했네. 지금 생각하면 엄만 순 도둑놈같애."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10여 년 전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는 활동을 잘했거나 칭찬스티커를 많이 모았거나 하면 학교나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오천 원짜리 문화상품권을 상품으로 주곤 했다. 문화상품권으로 서점에서 책도 살 수 있고 온라인게임에서 캐시로 교환할 수도 있고 영화도 볼 수 있다. 추가로 지불하는 것이 없이 오천 원만으로 사용하기에는 온라인 게임이 가장 유용하였으나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아쉽게도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일주일에 2시간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문화상품권을 온라인 게임에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폭넓은 사용이 가능한 현금을 선호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이들에게 '문상'깡을 제안했다.


'문상'깡이 뭐냐 하면 오천 원짜리 문화상품권을 엄마에게 팔면 나는 교환수수료 10%를 떼고 현금을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즉 종종 받아오던 오천 원짜리 문화상품권을 나에게 팔면 나는 10%를 수수료로 떼고 현금 4천5백 원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문화상품권을 받고도 마냥 기뻐하지 않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로서는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는 방법이기도 했고 용돈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용돈을 제공하는 적절한 구실이기도 했으며 공짜로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일종의 경제 교육의 효과를 노릴 수도 있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이때부터 두 아이들은 문화상품권=현금이라는 인식을 하며 문화상품권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서 제법 열심히 생활하는 듯했다. 학교에서는 칭찬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솔선수범해서 선생님 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우유급식 당번을 자처하기도 했다. 학원 선생님으로부터는 시키지도 않은 쓰레기 줍기나 책상 정리하기 등을 했다는 증언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무슨 무슨 퀴즈대회나 쪽지 시험 같은 행사가 열리면 상을 탈 수 있는 최하 등수에라도 오르기 위해 욕심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애써 모은 문화상품권을 고이고이 간직했다가 한꺼번에 현금으로 바꿔달라며 여러 장을 들고 나에게로 왔다. 학년이 더 높았던 아들은 4만 원 정도의 상품권을 모아 왔고 초등 저학년이었던 딸은 2만 5천 원 정도의 상품권을 모아 왔다.

이미지출처:https://postfiles.pstatic.net/MjAxOTAzMjBfNDMg/MDAxNTUzMDU1NjEzNTA0.vS8w61RNlNDNcO_zcqmZ8UAi8p


"엄마, 이거 현금으로 바꿔주세요!!!"


"엄마, 이거 현금으로 바꿔주세요!!!"

두 아이들은 내 앞에서 여느 때와는 다르게 한껏 올라간 목소리톤과 호랑이가 사냥할 때 내뿜는 듯한 맑고 투명한 안광을 가진채 내게 말했다. 하지만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상품권을 꼭 쥔 두 손과 내 앞에 서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더없이 공손해 보였다.  

"음~ 차니는 합해서 4만 원이니까 10%인 4천 원을 공제하고 현금 3만 6천 원을 주면 되고 하니는 상품권이 2만 5천 원이니깐 10% 2천5백 원을 떼고 엄마가 2만 2천5백 원을 주면 되겠네! 맞지?"


보너스를 현금으로 탄 직장인들 마냥 아이들은 두 손에 지폐 다발 -당시 아이들에게는 다발로 보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 을 어들고 말했다.

"하니 니는 이걸로 뭐할 건데? 나는 이번에 유희왕 카드 사야지!"

"나는 문방구에 봐 둔 인형이랑 스티커가 있어. 일단 그거부터 살 거야."

여러 번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보너스(?)의 용처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환한 웃음을 남매는 서로 교환하였다.


문상'깡'을 한 6만 5천 원어치 문화상품권은 실에 내게도 딱히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교환한 문화상품권을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매할 때나 사용하곤 하였는데 문화상품권이 필요했다기보다 아이들에게 돈의 소중함, 가치의 교환,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이라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더불어 돈을 주더라도 이유 없이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대가로써 지불하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어둠의 경제 세상에서 흔히 쓰이는 '깡' 교환법을 시행했던 것이었다.

아이들이 문화상품권을 현금으로 선뜻 바꿔주는 엄마에게 깊은 애정과 고마움을 가진 것은 나에겐 덤이었다.


냉장고에 붙어있던 문화상품권을 지갑에 넣으면서 동생의 말을 듣던 아들이 말했다.

"중고등 시절에는 엄마의 문상'깡' 행태를 보고 자식한테 10%나 수수료를 떼어먹는 무정한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었어. 그런데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른다면 나도 엄마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내 자식에게 그렇게 할 것 같아. 나는 그게 썩 좋은 용돈 교육, 경제 교육이라고 이제는 생각하거든"


팩트 폭행을 해대던 좌뇌 성향 아들의 이 말은 내게 뿌듯하고 기분 좋은 주말을 선물해주었다.


자녀 교육은 대개 즉각적인 보상과 인정을 받기가 어렵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특히 엄마들은 그래서 늘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을 참아가며 스스로 세운 원칙을 오랫동안 지키다 오늘 나처럼 긴 세월만에 인정을 받을 수도 있기에 엄마들이 오늘의 불안을 또 참아내는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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