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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Jun 04. 2020

우리 집 식탁에는 시사(時事)가 있다

자녀와 대화하는 공간 - 우리 집 식탁

#딸

2013년 봄. 딸아이의 학교로 학부모 면담을 위해 선생님을 보러 갔다. 일 년에 한 번씩 의례히 하는 학부모 면담이었다. 맞벌이로 인해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학부모 면담 계획이 잡히면 나는 꼭 휴가를 내었다. 휴가 내기가 여의치 않으면 반차라도 써서 직접 선생님 얼굴을 보고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신경을 썼다. 그날도 웬만하면 가지 않는 아이 학교를 학부모 면담을 위해 방문하였던 것이었다. 


"어머니, XX 이는 또래에 비해서 역사와 시사에 대해 밝은 편인 것 같아요. 따로 역사 교육이나 신문 읽기 교육을 시키시나요? 사회 수업을 할 때면 자기 생각도 분명한 것 같고 적극적으로 의견 발표도 잘합니다. "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하여 선생님과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 가던 중 선생님께서 아이의 수업 태도를 이야기하면서 위와 같은 말을 꺼냈다. 따로 특별히 무엇을 해준 기억이 없었던 터라 '그렇나요? 선생님께서 잘 지도해주셔서 그렇겠지요.'라는 말을 남기며 학부모 상담을 마쳤다. 


#아들

2018년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입시의 한 복판에 서있었으므로 모의고사를 치고 점수를 받아올 때면 자율과 방임을 육아의 기본으로 삼은 나조차도 점수에 신경이 쓰이곤 했다. 어느 봄 모의고사에서 한국사 과목의 점수로 2등급을 받았다. 별로 어렵지 않았을 것 같았는데 아들이 한국사에서 2등급을 받아왔길래 한국사 정도는 1등급을 받아야 되지 않느냐,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웬만한 역사는 알아야 하지 않느냐, 절대 평가라 비교적 쉽게 출제되는 것 같던데 2등급은 아닌 것 같다는 식으로 말을 하였더니 아들은 발끈했다. 


"엄마, 문이과 통틀어서도 2등급이면 괜찮은 수준이야. 이과에서는 매우 잘한 거고. 이과생들이 역사를 얼마나 어려워하는데. 보통 4등급씩 나온다고. 이과생 치고 저처럼 1~2등급씩 받는 친구들 잘 없어."

나는 얼른 그러냐, 몰랐다, 우리 아들이 잘하네,라고 말하며 발 빠른 태세 전환을 시도했었다. 



이런 경우를 몇 번 겪으면서 아이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너희들이 역사나 시사에 대해 친구들보다 조금 더 많이 아는 편인가? 어때?"

"글쎄,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친구들하고 얘기해보면 역사, 그중에서도 현대사 그리고 뉴스에 나오는 시사 이슈에 대해서 조금 더 지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 둘은 내 물음에 둘 다 그럴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 나니 나는 궁금해졌다. 


"너희들이 조금 더 안다는 게 왜 그런 것 같니? 신문을 깊이 읽는 것도 아니고 역사책을 읽는 것 같지도 않더구먼. 신기하네."

내 물음에 아이들 둘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우리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가 식탁에서 밥 먹을 때, 자주 아니 늘 뉴스에 나오는 정치 이야기하고 평가도 하고 어느 대통령이 어떻네 어느 당은 어떻네,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느 왕이 어땠는 둥 어느 왕은 이랬다는 둥 하도 이야기를 하니까 자연스레 귀동냥이 된 거지 뭐. 맨날 정치 이야기해서 얼마나 싫었는데."

"그런데 어릴 때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재미없드만 그 얘기들이 학교에서 사회 시간이나 다른 수업에서 선생님들이 하시는 이야기랑 연결되는 부분이 나오니까 신기하드라. 기억도 나고. 지금은 들을 만 해."


우리 집 식탁


어찌 되었건 식탁이라는 공간은 가족 구성원을 일정 시간에 한 곳에 모이게 하는 장소이다. 밥을 먹으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 이것이 우리네 보통 가족들의 평범한 일상이다. 우리 조상님들은 옛적부터 '밥상머리'교육이라 하여 식사 예절, 생활 예절 등을 밥을 먹으면서 밥상 위에서 자식들에게 가르쳤고 자식들은 부모님의 말씀과 행동을 보면서 그것들을 익혀왔다. 

현대에는 옛날의 그 시절에 비해서 가족 사이에 대화가 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식탁에서 만큼은 서로 대화를 많이 시도하려 하고 있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족이 다 같이 모이는 식탁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우리는 식탁 위 대화의 소재로 시사(時事)를 종종 이용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남편과 나는 정치 성향이 같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집에서 뉴스를 볼 때 정치적 대립의 걱정 없이 정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때로는 심도 깊은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대화와 토론은 식탁에까지 이어지기가 다반수였다. 


12년전 우리 집 식탁에서는...


2008년 광복절에 '63주년 광복절 기념식 및 건국 60주년 경축식'을 거행하면서 건국절 논란이 시작되었다. 당시 정부에서 야기시킨 이 논란은 그 당시 사회에 한동안 계속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건국절 논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잘못된 점을 짚었으며 이것이 얼마나 역사를 왜곡하게 되는지에 대하여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이후 우리의 고통스러운 현대사와 이승만에 대해서 견해를 나누게 되었는데 아이들은 우리 부부의 대화를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다. 


우리가 나눈,  며칠 동안 계속되었던  대화 속에서 아이들은 모르는 것을 묻기도 했고 들었던 내용을 정리하여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생각건대, 그때에 우리 아이들은 역사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에 틀림이 없다. 부모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면서 공부라고 느끼기보다는 하나의 스토리로서 대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부라고 생각했다면 초등학생이 '건국절' '한국전쟁' '이승만' '분단' 등의 단어들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입에 착착 붙듯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대화가 우리 집 식탁에서는 자주 벌어졌다. 이것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며 단지 우리 부부가 시사에 관심이 많았던 탓이며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던 것을 식탁에서 그대로 한 것일 뿐이었다. 그랬기에 아마도 아이들도 큰 거부감이 없이 다 같이 대화 속으로 몰입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물론,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고 자신만의 세계가 만들어질 무렵부터는 식탁 위 시사가 줄어들기는 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은 오히려 20대의 시선으로 보는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시각과 관점을 서로 나누고 있다. 몇 년 전 우리 부부가 대한민국의 중심이었던 그때 우리가 대화를 끌었다면 지금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주도할 20대 청년의 목소리들이 우리 집 식탁 위 지분을 더 많이 차지하고 있다. 

나는 이 현상이 무척이나, 반갑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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