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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Mar 20. 2020

책 읽지 않는 우리 아이

아이들 독서 습관 들이기의 어려움


독서가 좋은 습관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책은 좋은 것' '독서는 좋은 습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 된다'는 등의 격언 혹은 잔소리를 듣고 자랐다. 부모님에게서든 선생님에게서든. 그렇지만 우리는 읽을 책을 지금에 비해서 그리 풍부한 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다. 


어느덧 우리 세대가 부모가 되고 우리가 들었던 독서와 책에 대한 격언과 잔소리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이 들어야 할 몫이 되었다. 500년전이든 100년전이든 40년전이든 10년전이든 혹은 지금 이 순간 2020년이든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려고 부단한 노력을 한다. 책과 친해지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고안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가장 쉬운 방법들 중 하나가 집안에 책을 들이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 성장 단계에 맞게 프뢰벨, 삼성출판사, 금성출판사, 몬테소리 등 다양한 놀이책, 촉감책, 교구들이 시판되었다. 새 것은 비싸니 중고도서 매장을 이용하여 전집을 사들였다. 집안에 책을 들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방문하고 고르고 구입하여 차에 싣고 오면 그만이었다. 유아 시기에 보던 책들은 놀이책, 촉감책 같은 교구 느낌의 책이었기 때문에 부모가 읽어 주기보다는 갖고 노는 정도였기에 부모가 해야 할 일에서 어렵다고 생각한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책을 읽어주는 것인데, 이 단계에서부터 나는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5세 전후가 되니 놀이책, 촉감책으로 노는 것은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아이들은 유아가 아닌 소아 혹은 아동의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지금부터는 아이들에게 글줄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들의 귀에 엄마와 아빠가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이면서 정서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엄마가 책을 자주 읽어주지 않으니 지네끼리 책을 펼쳐 들곤 했다.


글자가 큰 짧고 두꺼운 종이책을 샀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이제 책 읽어줄 시간이다. 

아이들이 좀 더 어렸을 때는 몸으로 놀아달라는 요구가 많아서 힘들었는데 이제는 몸으로 놀기에다 플러스 자기 전까지 책을 읽어주어야 하는 목소리 노동까지 더해졌다. 

사실, 나는 회사에서 하루 종일 말을 하면서 지냈다. 당시에 영업관리팀에서 근무를 하였는데 고객한테서 오는 전화 응대, 다른 팀과의 전화 회의, 면담 회의 등으로 거의 하루 종일 말을 해야한 했다. 그래서 집에 오면 입을 좀 닫고 침묵으로 지내고픈 욕망이 들끓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있나!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눈이 초롱초롱한 아이 둘이 실컷 놀고 잘 때까지 책을 읽어달라고 책을 서너권씩 들고와서 이불 위에 척 눕는데 말이다. 

아이들 책은 마음에 든 책이 있으면 같은 책을 몇 번이고 읽어달라고도 했고 다른 종류의 책을 너덧 개씩을 아예 갖고 와서 순서대로 계속 읽기를 요구했다. 


나는 내가 컨디션이 좋을 때면 동화구연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책을 재미나게 읽어주었으나 보통 피곤에 찌든 날이 많았으므로 고등학교 시간 국어책 읽듯 무미건조하게 읽어 주었다. 그마저도 아이들은 좋아라했다. 

그러다가 꾀가 생겨 CD에 동화가 전문 성우의 목소리로 녹음된 이야기CD를 사서 내 목소리 대신 잠자리에서 CD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전문 성우의 세련된 목서리는 한두번 듣더니 싫다고 하고 재미없는 내 목소리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했다.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많은 교육자들이 말하지만, 어릴 때 책을 많이 접해보거나 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이 커서도 책을 좋아한다고 한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는 것은 본인이 스스로 책을 읽는 것도 해당이 되지만 그것보다는 부모가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책을 읽어주는 것이 정서적으로도 안정되고 책과 더욱 더 친해지기에 좋은 방법이라도 하였다. 그런 교육 이론들은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실천. 교육학자의 말대로 실천하기에 나는 매일 너무 피곤한 엄마였다. 5살 정도까지 책을 읽어주는 둥 마는 둥 책을 읽어주다가 아이들이 글을 깨우치고 나서는 거의 읽어 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핑계는 '우리 아이들은 글을 빨리 깨우쳐서 읽어줄 필요가 없어요. 지네들이 알아서 잘 읽는데요 뭐'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내 친구나 아이들 친구 엄마들 중 대다수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엄마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더라. 내 기억에 주변에서 내가 가장 빨리 엄마 책읽기를 뗀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서도 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소홀했다. 대신에 원래 책 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피곤함을 책읽기로 달래곤 했는데(물론 당시 읽었던 주된 책은 스트레스 풀이용 장르문학서였다. 그거라도 읽는 게 어딘가?) 구실은 또 있었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첫 번째는 비록 많이 못했지만 내가 책 읽는 모습을 거의 매일 보여주었으니 우리 아이들은 원래 책은 이렇게 가까이 하는 거라고 깨달을 거라고 변명을 하고 했다. (실제로 나는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몇 안되는 우리 아이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10년쯤 지났다. 

우리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된 후 아이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니 우리 아이들은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학교에서 의무로 읽어야 하는 책이면 읽었지만 진심으로 좋아서 책을 읽고 서점에 가서 책을 이것 저것 고르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책을 많이 읽어야 해. 그래야 이해도 빠르고 공부도 잘 하게되고. 상식도 넓어지고 교양도 쌓이고. 너희들은 책을 너무 안 읽는구나. 걱정이야."라고 말이라도 할라치면 아이들 둘 다 "엄마, 책 읽을 시간이 없어요. 학교 숙제도 해야하고 학원 숙제도 해야하고 게임도 해야하고 만화도 봐야하고. 독서아니라도 할 일이 많아서 책까지 갈 여유가 없네요."라고 대답하기 일쑤였다. 


다 커서 잔소리를 한들 무슨 소용이랴. 그 나이때의 청소년들에게 부모의 '책 좀 읽어라'는 이미 잔소리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버린 시점일텐데.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되었으면 이런 핑계가 무색하리라. 

나는 느꼈다.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아이들과 책을 가까이 하는데에 무리가 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직접 부모의 목소리로 서투나마 한참을 오랜 기간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고 읽어주고 교감을 하는 것이 책고 친해지는 데에는 가장 효과가 있다는 것을. 실제로 나와는 달리 책을 꾸준히 읽어준 집의 아이들은 책을 우리 아이들보다 더 좋아하였다. 

물론 이런 열 개도 안되는 경우의 수로 흔한 일반화를 하면 안되겠지만, 나는 직장에서 여자 후배들이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할때면 힘들더라도 어릴 때 꼭 엄마가 직접 책을 읽어주라고 조언해 주었다. 절대 후회안 할거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글쎄,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성인이 되어서 내가 아이들을 키울 나이 즈음 되었을 때, 그들이 나처럼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라도 책을 늘 가까이 있고 늘 읽는 것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보아왔으니 어릴 때 읽지 않았더라도 좀 더 나이가 들어 더 어른이 되어서라도 뒤늦은 독서삼매경에 빠질 것이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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