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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Sep 10. 2020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부모-자식사이 대화의 자기주도적인 결말

“내가 알아서 할게.”


사춘기 이후로 우리 두 아이들이 부모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이다. 


아이들 시험기간이면 나와 아이들은 이런 대화를 나눴다.

“곧 기말고사인데 공부 좀 해야지?”

“어. 할 거야. 내가 알아서 할게.”


대학생이 되고 방학이면 나는 또 궁금해서 물어본다. 

“방학인데 알바를 하던 여행을 하던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지?”

“그래야지. 신경을 꺼주세요.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우리 집에는 수없이 많은 “내가 알아서 할게.”가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하면 해적왕 룰렛 게임에서 통 속에 숨어있던 해적왕이 칼을 맞고 갑자기 튀어나오듯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아들과 딸에게 물어보았다. “너희들은 왜 맨날 ‘알아서 할게’니? 엄마 아빠랑 미리 상의하면 좀 어때서?”


대답하던 아들과 딸의 언어는 달랐지만 바탕에 깔린 근본 이유는 거의 흡사했으니 그것은 이러하였다. 


주말부부였던 터라 아빠는 집에 없었고. 엄마는 늘 바빴지. 아주 어릴 때는 늘 바쁜 엄마가 당연할 줄 알았어. 그런데 중학생이 되어 주변을 둘러보니 당연한 게 당연한 것이 아니더라. 친구들은 작은 것 하나까지 엄마들이 챙겨주고 또 작은 것 하나조차 엄마한테 허락을 받더라. 우리 경우는 좀 달랐지. 대외적이고 큰 사항은 엄마랑 의논하고 허락을 구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개인적인 것은 그러지 않았지.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해서 해야겠다 싶으면 결정하고 실행했고 아니다 싶으면 포기했어. 엄마가 늘 옆에 있지 않았고 우리가 부르면 바로 달려올 수 도 없었으니까 그건 어쩌면 당연한 거였을 거야. 엄마는 말하곤 했잖아 ‘네 인생이니 네가 선택하라’고. 아마도 회사 일로 바빠서 그랬겠지만 우리가 뭘 하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우리 생활 하나하나 우리 머릿속 세세한 것 까지 알려고 하지 않았지. 엄마가 길을 보여주고 방법을 제시했다면 우리가 편하기야 했겠지만, 우린 처음부터 그걸 몰랐으니까. 엄마가 회사 일로 의도치 않게 우리를 ‘자율적으로’ 내버려 두는 사이, 우리는 우리 일을 ‘알아서 하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아. 



회사를 다닌답시고 ‘자율’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들을 어느 정도는 ‘방임’했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말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자율적인 양육 방식이 사춘기라는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을 만나 마침 그 지점에 서 있던 아이들의 입을 통해 우리 가족의 세상 속으로 들어왔다. 


이제 사춘기를 지나고 입시생을 거쳐 대한민국 법에서도 인정한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 집 부모와 자식 간의 오고 가는 대화 속에는 여전히 “내가 알아서 할게.”가 살아 활기가 넘치고 있다. 이제 아이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고 세우고 가꾸느라 몇 년 전 나보다 더 바쁘다. 나는 그사이 퇴사를 하였고 갱년기 즈음에 접어들었고 지금은 덜 바쁜 아니 안 바쁜 사람이 되었다. 오히려 지금은 내가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 투덜대는 엄마를 향해 아들과 딸이 한마디씩 한다. 

“엄마, 집에서 시간도 많은데 부동산 중개인 자격증이라도 공부해보는 게 어때?”

“공부는 무슨? 많이 수고했으니 아무 생각 말고 그냥 쉬어.”


이제는 내가 연습할 차례인가 보다. 

“얘들아, 신경을 좀 꺼주겠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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