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사춘기, 아들 사춘기

by 홍월

사춘기 자녀를 둔 이웃들이 아들과 딸 두 아이 모두 성인이 된 지금의 나에게 단골로 하는 질문이 있다.

"아들 사춘기는 어땠어요? 그래도 딸은 좀 쉽죠?"

"딸 사춘기는 어떻든가요? 딸은 쉽다 하던데 저는 너무 힘들어요."


인생에 있어 시절이 크게 변화하는 시점인 사춘기와 갱년기는 그것을 겪는 아이들과 중년 여성들 그리고 그 가족들 모두에게 고난의 시기임이 틀림이 없다. 이미 그 시기를 지난 사람들에게는 힘들었던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겠지만 한창 변화의 시절을 지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시기일 것이다. 엄마들에게는 본인이 직접 겪어내야 하는 갱년기보다 자녀들의 중요한 시기를 정통으로 관통하고 있는 사춘기 기간이 어쩌면 더 힘들 수도 있다. 몸에 해로운 것을 알지만 잠깐의 안락을 위해 직접 흡연하는 사람들보다 몸에 해로운 담배를 전혀 의도치 않게 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간접 흡연자들의 고통이 아마도 더 큰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들이든 딸이든 빠르게는 초등학교 5학년경부터 시작하여 늦게는 고등학교 1~2학년까지 머물러있는 사춘기 기간의 아이를 둔 엄마들은 그들이 평소에 알던 아이가 아닌 전혀 다른 아이가 되어버린 자신의 자녀를 낯설어하고 심지어 무서워하기까지 한다.

"도대체 재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책에 있는 대로 해도 안되고. 야단을 쳐야 할지 그렇다고 마냥 내버려 둘 수도 없고요."


물론, 나도 똑같이 겪어 낸 일이다. 그래서 엄마들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하겠다.



여느 보통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두 아이들도 예외 없이 사춘기를 겪었다. 하나쯤은 예외가 있었어도 좋으련만, 이런 건 꼭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두 아이의 사춘기가 자못 달랐다. 나는 이것이 아들과 딸이라서 달랐던 건지, 첫째와 둘째라서 달랐던 건지, 이도 저도 아닌 그냥 각자가 타고난 성격 차이인지 지금도 100% 확실히 단언할 수는 없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아이의 사춘기가 확연히 달랐다는 점이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전부터 시작된 아들의 사춘기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중2병'으로 나타났다. 흔히들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 그 자체였다. 질풍노도는 중학교 2학년 내내 엄마인 나를 괴롭혔다. 아들의 사춘기는 방문을 잠그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짜증과 분노. 매일 아침 밥상에서 나는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아들의 짜증은 아침 밥상머리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반찬이 있으면 묵묵히 숟가락을 들지만 반찬이 맘에 안 든다 싶으면 15살 아이에게 걸맞지 않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밥숟가락을 한두 번 뜨다 마는 것이다. 그러곤 엄마의 밥상에 대해 한껏 분노를 쏟아내곤 하였다. 임금님 수라상을 차려놓고 임금님의 표정을 살피는 수라간 상궁도 이보다 더 하지는 않았으리라. 이 시기에 나는 바쁜 회사일에도 불구하고 요리책을 사다 모으고 요리 블로그를 탐색하고 잦은 장을 보러 다녔다. 내 요리 메뉴는 이 무렵 섭렵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노만 표출하는 것은 아니었다. 제 기분이 좋을랴치면 살살 웃기도 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마구마구 얘기하기도 해서 나는 '아, 나는 아이들과 소통이 되는 엄마인가 보다'라고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도 하였다. 하지만 아이의 기분은 수시로 UP & DOWN 되었기에 이내 출처모를 아들의 발산되는 아우라로 내 속은 썩어갔다.

그런 어느 날은 학교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한 번씩은 하는 심리 검사 같은 것에서 우리 아이가 '심각'단계가 나왔다는 것이다. 전화를 걸어왔던 상담 선생님은 아이의 우울 단계가 매우 극심하고 정서가 많이 불안한 상태이니 병원을 가보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회사에서 이 전화를 받았을 때 손을 덜덜 떨리고 심장은 벌렁벌렁거렸다. 컴퓨터 화면 속 숫자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이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돈 벌겠다고 종일 야근까지 하면서 회사에 앉아있는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서 병원으로 혹은 상담센터로 데리고 가야 하나 며칠을 고심했다. 그러다 정면 승부가 답이다라는 생각에 전화를 받은 3일 후쯤 귀가하는 아이와 거실에 마주 앉았다.


"며칠 전 학교에서 이런 이런 전화가 왔던데, 엄마가 어떻게 얘길 꺼내야 할지 몰라서 며칠을 묵혀두었다. XX야, 많이 힘드니?"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꺼내는 나를 향해 아이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이의 말인즉, 담임 선생님(나이 오십이 넘으신 여자 선생님이었다)께서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을 문제아 취급하시길래 울컥하는 반항심에 심리검사지의 답을 일부러 안 좋게 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아들아이는 육체적 활동을 좋아하는 아이여서 학교에서도 잠깐의 틈이 있다면 친구들과 야구나 축구를 즐기는 아이였는데 왁자지껄하고 어수선한 중학교 2학년 남학생들의 모습이 담임 선생님 눈에는 차분하지 못하고 주의가 산만한 아이들로 비추어져 지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당신이 담임하는 반에 문제아와 불안한 아이가 많으니 한번 감당해보시라'는 감정이 불쑥 들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그 순간(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어찌나 졸았던지) 나는 어두운 지하 동굴에 갇혀있다가 동굴 밖 햇살 좋은 세상 밖으로 나온 느낌이었다. 그래, 사춘기는 그런 것이었다. 어쩌면 과도하게 예민할 필요도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날 나는 오랜만에 아들과 마주 보고 학교 생활 이야기, 친구 이야기를 들었고 또 내 회사 생활의 힘듬과 자녀 키우기와 회사일의 병행이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드라마처럼 이 날 이후로 우리 집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고 하면 참 좋았겠지만 다음 날도 다른 날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질풍노도의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이후로도 나는 친구, 지인, 선배, 심지어 사주명리 상담소까지 들락날락 거리며 아들의 사춘기를 슬기롭게 보내기 위한 방법을 계속 모색했다.

그러던 아들의 사춘기는 중학교 3학년이 되진 얼마 전 희한하게도 사라졌고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학업에 열중하였다.



딸아이의 사춘기는 아들과 정반대로 다가왔다.

아들의 사춘기가 숫자가 높은 헥토파스칼의 강력하게 휘몰아치는 대신 짧게 왔다 가는 태풍이었다면 딸의 사춘기는 찝찝함과 눅눅함과 끈적거리는 습기를 머금고는 지금처럼 50일 동안 내리는 장마처럼 다가왔다.


오빠가 폭풍 같은 사춘기를 보낼 때 "엄마, 걱정하지 마. 나는 사춘기와도 오빠처럼 막말은 안 할게."라고 하던 다정다감한 딸은 정말 막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말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말을 하지 않았다기보다 말로 표현을 하지 않았다. 아이의 얼굴은 불만으로 가득 차 있으나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뭐가 불만인지 전혀 말로 표현을 하지 않으니 아이와 대립할 수도 싸울 수도 없었다. 이유를 알아야 티격태격이라도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가족끼리 외식을 위해 메뉴를 정할 때, 아들은 삼겹살을 남편은 국밥은 나는 중국집을 말하면 딸은 거의 언제나 "아무거나. 난 상관없어."라고 했다. 딸을 제외하곤 남은 셋이서 자잘한 논쟁 끝에 삼겹살 집으로 가서 고기를 구우면 딸은 젓가락을 깨작거리면 고기를 몇 점만 먹고 말았다. 왜 안 먹느냐고 삼겹살을 고집한 아들이 동생에게 한 마디 하면 그제야 딸은 말했다. "아무거나 된다고 했지 삼겹살을 먹고 싶다고는 안 했잖아. 고기 별로 안 먹고 싶어서 그래. 다들 많이 먹어. 난 됐어."


가족 여행을 갔을 때도 어디로 여행 갈까 이리저리 얘기를 나누면 딸이 거의 대부분 "특별히 기고 싶은데 없으니 알아서들 해."라고 했다. 남편과 내가 여행지를 정해서 휴가를 다니면 아들은 그래도 이곳이 어떻네 저곳은 별로 네하며 나름 함께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딸은 이동하는 내내 차 안에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렸고 여행지를 둘러볼 때도 땅만 쳐다보거나 팔짱을 끼고 한자리에 앉아있거나 했고 어떤 때는 자기는 구경하기 싫어서 차 안이나 카페에 있을 테니 구경하고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가족이 같이 여행 왔으니 같이 구경 다니자고 하면, "내가 뭐 좋아서 온 데도 아니고 난 별로 구경하고 싶지도 않으니 엄마, 아빠, 오빠라도 잘 보고와. 난 쉬고 있을게."라고 하기 일쑤였다.

남은 세 식구는 의도치 않게 딸애의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런 딸의 태도에 대해 지적을 하면 딸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니, 내가 뭐라고 했어? 여행은 같이 왔지만 관광은 하기 싫다고. 그러니까 다들 즐기시라고요. 나는 구경 안 해도 괜찮다고요. 내가 뭐 화라도 냈어? 가만있는 나보고 왜 그래?"


사춘기라 딸애와 싸우지 않고 일단은 지켜보자는 의미에서 이런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더라도 우리는 딸애의 뜻을 대부분 존중해주었다. 그러다 내가 도저히 화가 치밀에 못 견딜 때면 나는 아이를 붙잡아놓고 다그쳤다.

"도대체 뭐가 문제니?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해. 뭐가 싫다. 이거는 못하겠다. 안 하겠다고. 이래도 뚱, 저래도 뚱.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될지 모르겠다. 도대체 왜 그러니? 엄마가 뭘 어떻게 해줄까?"

대부분 의견을 구하고 허락하던 내가 참다못해 아이를 다그치면 아이는 그때부터 말도 없이 닭똥 같은 눈물만 내보였다. 그러며 엄마 마음은 또 찢어지게 마련이다.

"나도 모르겠어. 나도 왜 이렇게 밖에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다 싫어. 다 싫은데 싫다고 하면 엄마가 슬퍼할 것 같고. 엄마 슬픈 거 보는 건, 나도 따라 괴롭고. 나도 뭘 해야 내가 기분 좋을지 모르겠다고!"


이런 딸아이도 아들의 사춘기와 마찬가지로 감정과 기분이 요동치기는 매 한 가지였다. 친구와 좋은 일이 있거나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기쁜 일이 생겼을 때는 아이가 하늘로 날아갈 듯 행복해해서 그럴 때면 나는 '사춘기란 무엇인가. 개나 주는 것인가. 우리 딸이 저리 행복해하는데 사춘기가 지나갔나 보다'라고 생각이 들곤 했다.

딸의 사춘기 기간 동안 딸아이가 가장 행복해할 때가 내 생각엔 아이돌 덕질할 때였던 것 같다.

딸의 행복한 순간을 더 늘여주고 그 모습을 오래도록 보려고 나도 딸을 따라 아이돌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어쩔 때는 내가 더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엄마가 아이돌을 좋아하고 공부를 하니 딸애는 이것저것 나에게 가르쳐주면서 뿌듯해하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여파로 지금도 나는 웬만한 아이돌을 다 꿰차고 있다.)


딸아이는 이렇게 감정을 많이 표현하지 않으면서 지지부진한 사춘기를 3~4년 정도 보낸 것 같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차라리 아들처럼 짧게 휘몰아치는 사춘기가 더 낫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긴 시간 동안 딸아이의 표정을 살피고 기분을 돌아보고 하는 것 자체가 나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소위 '진이 빠졌다'고나 할까? 아무튼 딸은 '막말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켰다. 표현을 안 해서 문제였지만.


이웃들이 사춘기 자녀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자주 본다. 딸은 딸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그런데 그네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딸 사춘기는 내 경우와 많이 비슷한 것 같다. 표현이 진하지 않고 다그치면 잘 울고 일희일비의 폭이 큰 것까지. 이런 경우 엄마는 어떻게 리액션해야 할지 난감하다. 야단치자니 어긋날 것 같고 지켜보자니 저 행동이 습관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늘 노심초사다.


아들의 경우에는 아이의 성격 따라 다양한 양태를 보이는 것 같다. 어떤 집 아이는 우리 아들과 유사한 태풍이고 어떤 집은 우리 딸처럼 표현하지 않고 어떤 집은 무한한 게으름으로 반항을 하기도 하는 듯하다. 어떤 경우든 엄마는 피폐해진다. 아이들의 기분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매일 여러 번 왕복 여행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힘든 자녀의 사춘기. 요즘 코로나로 외부활동이 뜸하니 아이들과 지옥 여행을 경험하는 엄마들이 더 많다.

하지만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고 건너뛴다고 해서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 것이 아닌 것이 사춘기라고 생각한다. 남들 하는 때에 사춘기를 경험하지 않으면 뒤늦게 인생의 방황과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하기도 한다. 인생의 대부분 것들은 다 때가 있게 마련이니까.


인생 공부하는 냥 도 닦는 마음으로 애정을 갖고 한 발짝 멀리서 지켜보다 적절한 타이밍에 필요한 간섭을 한다면 우리 아이들도 엄마들도 모두에게 끝내는 푸르른 여름날이 오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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