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협상과 설득의 방법
워킹맘들은 아이를 키울 때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침에 등원이나 등교를 할 때 정성이 가득한 식사를 하며 아이와 대화를 나눌 여유도 없고 하원이나 하교 후 엄마가 없는 집에서 혼자 외로이 지낼 아이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기 일쑤이다. 혹시 모를 사고와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조바심은 미안한 마음에 붙는 이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워킹맘들은 아이들의 요구에 있어서 전업맘들보다 좀 더 관대한 편이라 할 수 있다.
간식이나 저녁으로 좀 더 좋은 음식을 사 먹겠다고 돈을 더 달라고 하면 밥을 직접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에 달라는 돈보다 조금 더 얹어 주기도 한다. 2G 폰이면 충분할지도 모르는데 성능 좋은 최신 휴대폰을 먼저 손에 쥐는 것도 어쩌면 일하는 엄마가 가지는 아이에 대한 보상심리일지도 모르겠다. 어린이날이나 아이의 생일이면 아이가 요구하는 웬만한 선물은-누가 봐도 터무니없지 않다면-되도록 사주려고 한다.
돈이 넉넉하지 않기도 했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물질적인 것과 요구하는 것에 쉽게 허용되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그랬듯이 우리 아이들도 정도의 결핍을 느끼는 사람이길 바랬다.
우리 집에는 기본적인 용돈과 생활 규칙이 있었다. 엄마 없는 집에서 안전하게 생활하기 위해서 그리고 양육해주시는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덜 피곤하게 해 드리기 위해서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을 어려서부터 만들어왔다. 이 규칙들 외에 추가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꼭 해야만 하는 근거와 이유를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을 들어야 했고 이 근거들은 엄마인 나를 충분히 납득시키고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의 추가 용돈이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여러 개의 소원을 성취하려던 아이들은 설득의 근거가 빈약하고 논리도 정연하지 않아서 번번이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그러던 것이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그럴싸한 이유와 반박하기 애매한 논리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들은 야구를 많이 좋아했다. 틈만 나면 캐치볼을 했고 싸구려 야구공을 여러 개 사기도 했다. 아들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인가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무렵, 아이는 7만 원짜리 야구 글러브를 사달라고 했다. 무려 7만 원짜리를! 당연히 아이는 엄마가 7만 원짜리 야구 글러브를 사주어야 하는 타당한 이유 다섯 가지를 말해야만 했다. 아들은 나름대로 준비한 근거를 열과 성을 다해 브리핑했다.
“엄마가 새 글러브를 사주어야 하는 이유를 지금부터 말할 테니 잘 들어봐. 첫째, 7만 원짜리 글러브는 시세로 볼 때 절대 비싼 편이 아니야. 훨씬 더 비싼 것이 많으나 나름 적절한 선에서 우리의 가계를 생각하여 타협을 본 가격대야. 의심되면 직접 인터넷을 검색해보세요. 둘째 중학생쯤 되면 애처럼 고무공과 손으로 야구를 하기보다는 진짜 야구공과 글러브로 제대로 된 운동을 해야 체력과 근력이 제대로 길러져. 그러면 아프지도 않고 병원에도 안 가게 되겠지. 셋째는 중학생이나 됐는데도 유치한 운동 물품을 갖고 있으면 친구들 사이에서 딱 놀림감이 되기 쉽고 그러면 자신감을 잃은 채 사춘기를 보내게 될 것이야. 자신감 없는 태도로 학교생활을 한다면 선생님의 근심을 살 것이고 그러면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를 하겠지. 그러면 엄마는 회사에서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얼마나 걱정되겠어!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넷째 이유, 튼튼한 몸에서 강인한 정신력이 나오듯 7만 원짜리 새 글러브로 야구를 하면 내가 막 성적을 올리고 싶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 확실해. 확실하다고.”
마지막 설득의 근거는 정말이지 엄마로서 거부하기 힘든 어려운 유혹적인 이유였다. 나는 7만 원짜리 야구 글러브를 사주고야 말았다.
설득과 근거를 바탕으로 한 부모-자식 간의 협상은 용돈과 물건 구매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적용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딸은 부산 시내에 가서 쇼핑을 안 하는 사람은 학교에서 자기밖에 없다며 툴툴거리곤 했다. 여름 방학이 되자 딸애는 나에게 협상을 시도해왔다. 방학 중 하루는 친구들과 부산 시내 쇼핑을 다녀오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여자아이들끼리 시외버스를 타고 외출하는 것이 불안했던 나는 당연히 반대부터 하였다. 이에 발끈하며 딸아이는 따져 물었다.
“요구사항이 있을 때 타당한 근거를 들어 엄마를 설득시키라면서 왜 엄마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반대부터 해? 부산에 다녀오는 것이 엄청나게 잘못되고 틀린 행동은 아니잖아? 엄마부터 자신이 정한 규칙과 논리에 안 맞는 거 아니야? 엄마가 그러면 나도 이제부터 규칙을 지킬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듣고 보니 딸아이의 말이 틀린 것이 없었고 나도 마땅히 반박할 논리도 빈약했다. 그래서 딸애가 조곤조곤 제시하는 이유를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가까운 친구 중에 서면 시내에 안 가본 사람은 나밖에 없어. 민정이도 은지도 윤정이도 소연이도 전부 몇 번이나 부산에 가서 쇼핑도 하고 멀티방도 가서 놀다 오곤 했어. 세상이 무서우니 엄마가 뭘 걱정하는지 알겠는데, 다른 친구들이 여러 번 다녀봤으니까 버스 시간을 놓치거나 버스를 잘못 탈 이유도 없고 친구들이랑 같이 있으니 나쁜 사람들이 접근하지도 않아. 행여 길을 잃거나 뭐가 잘못돼도 나는 없는 스마트폰을 친구들은 갖고 있으므로 검색을 하든지 엄마에게 전화를 하면 되잖아. 친구들끼리 모여 노는데 나만 엄마 때문에 자꾸 빠져서 친한 친구가 없어지면 어떡해? 그리고 평소 엄마는 새로운 경험과 시도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으면서 이런 것도 반대하면 그건 엄마의 모순이 아니냔 말이야. 앞뒤가 안 맞잖아.”
나는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아이의 시외 외출을 허락했고 물론 아이는 아무 탈없이 귀가를 하였다.
두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나이가 더 들고 그에 맞게 배움이 더 커지면서 설득하는 논리는 내가 따라잡지 못할 만큼 쫀쫀하게 구성되어갔다. 두 아이 모두 대학생이 된 지금은 지식의 양으로 보면 나보다 아이들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논리와 논쟁을 할 때 오히려 내가 더 빈약한 지경이 되었다.
어떤 이슈로 논쟁이 이루어지거나 설득할 일이 생길 때 엄마에 대한 배려 없이 근거와 논리로 꼼꼼히 따지는 아이들을 볼 때 기특하다는 생각보다는 ‘이것들이 엄마한테’라며 섭섭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너희는 엄마한테 하나하나 따지고 이기면 좋니? 엄마 섭섭해”
“엄마가 우리를 이렇게 키웠으면서 섭섭하다면 어떻게 해? 그러면 어릴 때부터 근거를 대라, 설득을 시켜라, 그렇게 안 했어야지.”
일 하는 엄마로서 엄마 없이도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자립적으로 행동하도록 한다는 게 지금은 약간의 섭섭함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길게 보고 크게 본다면 지금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그들의 세상을 살아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것이 내 섭섭함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이유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