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님에게, 어제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의 마지막 장을 덮었습니다. 실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책 내용이 자꾸 줄어들어서 책장을 넘기는 손이 자꾸 떨렸습니다. 빨리 줄거리를 알고 싶고 끝까지 다 읽고 싶지만 읽을 분량이 줄어들어서 슬픈 느낌, 아시죠? 더불어 안타까운 제 마음을 제 뇌와 손이 알맞게 표현할 능력이 충분치 않다는 슬픔이 또 나를 덮치네요. 이래 저래 우울하네요.
하지만, 들꽃님에게 오늘 내 이런 우울감을 투정 부리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에요.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고 글을 씁니다.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을 알게 해 주어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이 책은 2020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넘버 1이 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오죽하면 제가 책의 주인공인 줄리엣 흉내를 내어 이런 서간체 글을 다 쓰기까지 할까요? 실은 저는 오글거리는 것을 못 견뎌해서 평소의 나라면 이렇게 쓰지 못할 텐데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을 다 읽고는 서간체의 글을 쓰지 않고는 책을 다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처음에 책 제목을 들었을 때는 건지 감자 껍질이라고 해서 - 감자 껍질 말린 것으로 만든 파이라는 말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건지가 섬 이름이었네요! 세상은 참, 아니 살면 살수록 '나는 참 너무도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건지 섬만 하더라도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 아니겠어요? 반백년을 살면서 나름 좀 배운 사람이고 책 좀 읽은 사람인 척 행세를 하기도 했는데 정말 부끄러웠어요. '정말 겸손하게 행동해야지!'하고 다짐하지만 이 다짐이 그리 오래갈 것 같진 않아서 걱정되기도 하네요.
이 책의 저자 메리 앤 셰퍼에 대해 궁금해졌어요. 저자는 7년에 걸쳐 이 책을 썼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책이 저자의 유일한 작품이라죠? 우연한 기회에 건지 섬을 알게 되고 자료를 수집하였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면서 7년을 거쳐 이야기를 완성했다는데, 저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저자가 존경스럽기도 하고 한 작품을 7년씩이나 다듬어야 하는 작가의 신세에 무섭기도 해요. 왜냐하면 저는 금방 성과를 보아야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하나의 아야기에 꽂히면 그것만 생각하고 빨리 쓰고 깊은 고민도 없이 마무리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랬다가 칭찬을 덜 받으면 금세 풀이 죽어서 혼자 방구석을 긁고 있고요. 구상부터 마무리까지 꼼꼼히 7년을 한다?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을 알게 되어서 행복했지만 그래서 한편으로 조금 우울했어요. 자신감도 없어지구요. 책을 보면 작가가 7년씩이나 걸린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주요 등장인물만 15명 정도 되잖아요? 근데 그 사람들 모두 다 내 주변에서 한 번쯤은 만난 실재하는 사람들 같아요. 캐릭터가 하나같이 다 살아있구요, 인물들 마다 개인 역사가 다 있잖아요? 캐릭터 창조에만 3년은 걸릴 것 같아요. 그리고 책에서 다루어진 책들도 그래요. 이렇게 자유자재로 다루려면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할 것 같은데,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요? 물론 저자는 책을 쓰려는 목적만으로 책에 나온 도서를 읽지는 않겠지요. 도서관과 서점에서 일하면서 꾸준히 많은 책들을 읽고 저자만의 기억저장 장치 속에 보관을 해두고 있었을 테지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는데 은근한 로맨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손끝이 짜릿해져 왔어요. 어릴 때 하이틴 로맨스를 많이 읽어서 그럴까요? 아님 순정만화를 너무 많이 봤을까요? 고백하지면 저는 로맨스가 좋아요. 특히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에서 나오는 것 같은 은근하고 약간은 눈치채지 못하는 그런 로맨스가 더 끌려요. 그래서 이 책이 더 제게 감동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한동안은 모든 글을 서간체로 쓰고 싶어 질 것 같아요. 남 흉내만 내어서는 안 되는데, 지금 이 문체도 줄리엣의 것이라는 거 혹시 눈치채셨나요? 그랬더라도 그냥 모른 체 해주세요. 칭찬도 부족한데 비평부터 받으면 또 슬플 것 같아요. 아무튼,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을 만나게 해 준 데에 대해 다시금 감사를 드리며 이만 두서없는 글을 마칠게요. 햇살이 너무 좋아요. 빨리 같이 얼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