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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Feb 19. 2020

서평 - <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이 책을 먼저 읽은 친구가 말했다. 

"프랑스판 82년생 김지영이야"

나는 생각했다. '선진국인 프랑스라 해도 여성이 느끼는 여성의 삶은 별반 차이가 없나보지? 이런 책이 히트하고 좋은 평판을 받은 걸 보면.'


책을 다 읽은 지금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82년생 김지여의 탈을 쓸 뻔한 장르 소설쪽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작가인 레일라 슬리마니는 아이, 보모, 엄마의 삼각 관계를 두고 공포라는 감정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프랑스 평단도 이런 작가의 의도에 공감했는지 이 작품은 2016년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미리암은 앞날이 창창한 변호사였으나 결혼과 두 번의 임신, 출산으로 인해 경력을 포기하고 전업 주부로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며 스스로를 갉아먹으로 살아간다. 남편 폴은 음악작업을 하는 상업예술가로 가정을 사랑하는 다정한 남편이지만 너저분한 가정과 찌들어가는 미리암을 보는 것이 힘겨워 집에 일찍 들어가는 것을 꺼려하는 가장이다. 여기까지는 딱 82년생 김지영이다.


경제적 어려움과 찌들어가는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둘은 루이즈라는 보모를 고용한다. 루이즈가 집 안에 들어온 첫 날부터 미리암과 폴의 인생은 구질구질한 일상에서 산뜻한 여피족으로 변화에 성공하게 된다. 보모로 고용된 루이즈는 밀라와 아당의 육아, 보육, 건강에 완벽하게 책임질 뿐만 아니라 청소, 요리, 정리정돈까지 완벽한 메리 포핀스를 구현해낸다. 그런 루이즈덕분에 미리암과 폴은 제 2의 신혼을 만끽하며 아이는 믿고 맡길만한 루이즈에 의지하면서 오롯이 자신들의 경력을 위주로 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루이즈가 달라지고 있다. 월급은 또박또박 받아가지만 생활은 늘 궁핍한 것 같고 살이 마르고 있고 가끔은 미리암 흉내를 내는 것 같고 밀라와 아당의 실제 엄마가 미리암이 아닌 루이즈인 것 같이 행동도 하고 뭔지 모르게 의뭉스럽고 불안을 가지게 만든다. 자기 집에 가는 것을 꺼리며 미리암의 침대에서 눕기도 하고 미리암의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그녀의 화장품 향수를 쓰기도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영화 '위험한 독신녀'가 떠오르며 이 소설의 장르가 사회비판분야에서 스릴러로 넘어가는가 보다 생각했다. 나쁘지 않다. 나는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 분야를 좋아한다.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루이즈의 이런 행동에 대한 배경 설명을 위해서인지 루이즈의 어린 시절 이야기기가 회상된다. 그녀의 과거, 그녀가 왜 이런 성마른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왜 아이에 집착하는지 등에 대한 것을 독자는 루이즈의 회상으로 인해 어느 정도 납득을 해간다. 하지만 소설의 전개는 왠지 불안해지고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다. 아니, 일어날 것을 알고 있다. 왜냐면, 소설의 첫머리에 "아이가 죽었다"라는 다소 파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처음부터 독자들은 알 수 있다. 루이즈가 그저 선하고 좋은 보모가 아님을 그녀로 인해 한 아이가 죽게됨을 그리하여 미리암과 폴은 필시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임을.


그래서 어찌 보면 이 소설은 왜 루이즈가 아이를 죽였는지를 사건 발생 이전 시점부터 돌아가서 그 시작과 전개를 보여주는 소설이라 하겠다. 하지만 소설은 루이즈가 어떻게 아이를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인 장면과 이유는 제외되어 버렸다. 그래서 독자는 유아 살인 사건에 대하여 내막을 짐작을 하지만 결정적인 단서와 이유를 제시하기는 어렵다. 

제일 마지막 장에 가서는 이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니나 도르발 경감이 등장한다. 범인도 명확한 이 사건을 그냥 종결할 수도 있지만 도르발 경감은 뭔지 모를 찝찝함으로 사건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수사하고자 한다. 이유도 명확히 알고 싶고 루이즈라는 인물의 내막도 캐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사실 도르발 경감이 나오는 부분은 전체 292페이지 중 겨우 11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여자 수사 경감이 차지하는 역할은 꽤 크다. 아마 책의 첫 부분부터 이 소설은 내레이션하고 끌고 가는 사람이 바로 이 도르발 경감일 것 같다는 생각을 마지막 챕터 도르발 경감이 등장하고서야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때부터 이 소설은 추리 소설로 장르를 바꾸었고 나는 넬레 노어하우스의 <산 자와 죽은 자>를 연상하며 읽었다. 넬레 노어하우스의 추리소설은 여느 추리 소설이 그렇듯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수사반장이 쫓아가면서 진행되지만 <달콤한 노래>는 그 순서가 도치되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 점이 그런데 참 신선하다. 왜냐면 독자는 처음부터 살인사건의 존재를 알고 범인을 알고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시종일관 독자의 흥미를 끌고 다음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공쿠르상까지 받을 만한 작품인지는 모르겠다. 요새는 장르소설도 문학상을 받는다면 그럴수도 있겠다. 나는 <달콤한 노래>를 '위험한 독신녀'나 '산 자와 죽은 자' 혹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같은 추리 추적 소설로 보아 지기 때문이다. 

하긴 뭐 그런 상 받는 게 중요하겠나, 재미있다는 것이 나에겐 중요할 뿐이다. 책을 쥐고 놓지 않고 한 5시간을 들여 책 한권 떼고 싶다면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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