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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Dec 02. 2020

이윤기 -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20년 전 우리나라에 그리스 로마신화 열풍이 분 적이 있었다. 그 중심에 번역가 이윤기가 있었다.

동화 같은 신화를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 성인들이 신화를 읽게 한 장본인, 바로 이윤기이다.

나도 그 열풍에 같이 뛰어들어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1,2권을 사서 탐독하였다. 아쉽게도 수많은 헷갈리는 신들의 이름과 범람하여 한꺼번에 몰려드는 강물처럼 쏟아지는 신들의 사건들에 치여 후속 책들은 읽지 못했지만.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을 때 받은 느낌은, '이 사람 글 참 쉽게 쓴다'였다. 이후로 나는 이윤기가 소설이면서도 전문 번역가로 아주 유명한 사람인 것을 알았다.


작년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었다. 이윤기가 번역한 책이었다. 46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이 2권이나 되는 책이었는데 내용 또한 난해하여 서양 중세의 종교와 철학, 기호학, 시학이 책 속에 넘쳐나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책을 다 읽고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당시 나는 "뭔 번역을 좀 쉽게 하지. 이야기를 이해를 못 하겠잖아!"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집 앞에 알라딘 중고 서점이 있다. 우연히 그 앞을 지나가다 시간이 남아서 정말 오랜만에 실물 서점에 들어갔다. 책을 사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서점을 막 나오는 순간 이 책이 내 눈에 띄었다. 눈에 잘 띄는 노란 표지였다. 책값은 단돈 5천 원. 바로 책값을 지불하고 말았다.


책을 읽고 보니 이윤기가 <장미의 이름> 번역을 어렵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냥 책의 내용을 이해할 만큼의 수준이 안되었던 것임을 알았다. 스스로를 일어판을 한글로 번역한 60년대의 1세대와 영어판을 국어로 번역한 7-80년대사이의 중간인 1.5세대 번역가임을 자처했던 이윤기는 장미의 이름을 번역하기 위해서 철학 전공자가 아님에도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학, 철학과 무수한 철학의 개념을 일일이 찾았다. 또 그는 애초 원문인 이탈리아어가 아닌 영문판으로 번역을 했기 때문에 놓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노력에도 오독과 오역은 필수불가결하게 따라왔기에 2000년대 들어 그의 오독과 오역이 지적을 당하자 두말 않고 지적을 흡수하고 수정하여 더 나은 품질의 번역으로 다시 책을 출간하였다. 번역은 소설 창작을 두 번을 동시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장미의 이름>이 어려웠던 건 그의 번역이 부실함이 아니라 내가 중세의 종교와 철학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윤기도 처음에 그러했던 것처럼.


소설가이자 번역가였던 이윤기가 살아있을 때 썼던 글들을 모아 만든 책이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이다. 부제는 '땀과 자유로 범벅이 되게 써라!'.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했던 이윤기는 '조르바'와 <그리스인 조르바>를 썼던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세상에 둘도 없는 최고의 작품과 작가라고 칭송하였다. 카잔차키스가 묻힌 크레타 섬에 두 번이나 찾아가서 그의 무덤에 묵념할 정도로 좋아하였다. 그랬던 그가 '조르바'를 사랑하고 '조르바'와 카잔차키스가 숭배해 마지않았던 "자유"를 찬양하고 애정했다는 것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이다.


이 책은 글쓰기와 번역하기에 대해서 이윤기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과 글과 말로 나누었던 느낌들을 가벼운 필치로 써 내려간 책이다. 메모장과 연필 없이 나도 가볍게 읽어내려갔지만 두 가지 지점에서 나는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미국에 자리 잡은 뒤부터 번역 일을 줄였다. 내가 가장 힘써서 한 일은 '노는 일'이었다. 푹 놀았다. 노는 틈틈이 책 읽고, 영어 입말 배우고, 미국을 배웠다. 하지만 그것은 영어라는 특정 언어 배우기와 미국이라는 특정 국가 배우기가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에 새롭게 적응하는 방법 배우기였다. 나는 개인의 힘은 자기를 바꾸어보려는 의지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나는 바닥부터 박박 기었다.
-93쪽


이윤기는 나이 마흔다섯에 한국에서 안정적인 직업 잘나가는 번역가라는 신분을 걷어차고 스스로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뛰어들어갔다. "그는 문득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싶었다"라고 했다. 잘나가는 번역가로 남아있어도 되지만 그에게 글쓰기작업이라는 동반자를 있게 해준 소설과 소설 쓰기가 아직 내지 못한 숙제처럼 계속 뇌리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는 밀린 숙제를 내기 위해서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았다. 모두 다 그처럼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어쨌든 익숙한 것과 결별을 하여서 꿈꾸던 것을 이루었다. 밀린 숙제를 마침내 끝내고 제출한 것이다. 그렇게 완료한 밀린 숙제는 그가 미국에 있는 동안 동인문학상이라는 큰 상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그는 말했다.


물은 고여 있으면 썩는다. 흐르려면 바닥을 기어야 한다. 사람 또한 그렇다. 사람의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94쪽


나는 흐르는 물일까, 고여있는 물일까. 나는 바닥을 기고 있는 걸까, 아직 바닥에 도달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바닥을 무사히 지나온 것일까.

- 나는 이 부분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숱한 외국의 텍스트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이윤기는 어쩔 수 없이 우리말을 공부하고 우리말 어법에 맞게 쓰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런 그가 글을 읽거나 말을 들을 때 못 견뎌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게 쓰는 말과 글이었다. 요즘 우리가 흔히 쓰거나 들을 수 있는 표현들, 책에서 가져온 예를 들어보자면

"보여지는 것으로는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은데요."

"오늘은 00팀이 우세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의 말을 빌면, 위 표현은 잘못되었다. "보이는 것으로는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은데요.", "오늘은 00팀이 우세한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우리는 영어를 공부하면서 국어에 영어식 표현을 갖다 쓰다 보니 영어의 사역어법을 우리말에도 많이 쓰고 있다. "~보여지는 것은" "~되어진 것은"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하게 했다" 등이 그것인데 이것은 "~보이는 것은" "된 것은" "나는 ~을 했다"등으로 표현해야 맞는 것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에 있어서"같은 일본식 표현도 아직까지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나도 꽤나 많이 "~하게 되다" "보여진다" 등의 글을 말이 쓰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말을 할 때는 별로 그렇지 않은데 글을 쓸 때는 이런 어미의 표현을 더 많이 쓰고 있었다. 글자 수를 늘려보려는 꼼수가 버릇이 된 것일 수도 있겠고, 직접적으로 쓰는 위험을 줄이고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겸손해 보이는 효과가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고 난 후 이런 내가 글을 이런 어미로 마무리하는지 어떤지를 한 번 더 검토하곤 한다. (방금도 검토하게 되었다. 라고 썼다가 고쳤다. 이게 정확히 문법적으로 잘못된 건지 아닌지 다시 한번 알아보아야겠다.)


글을 많이 쓰고 싶고 잘 쓰고 싶어서 '글쓰기'에 관련한 책을 종종 읽는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는 주제 정하기, 소재 고르기, 비유, 묘사 등 글 쓰는 법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작가가 평소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갖고 있던 생각을 가벼운 수필로 쓴 책이다. 하지만 나는 마냥 가볍게 느껴지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조르바가 어렵고 춤추는 것은 더더욱 못하기 때문에 조르바를 춤추게 하기는커녕 춤 못 춘다고 조르바에게 역정이나 듣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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